안녕하세요? 강은진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는 해외 취업을 결심하게 된 배경 및 준비/구직 과정을 소개해 드렸는데요, 이번 포스팅에서는 지난 2달 동안의 놀라운 아이치이 구직 과정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1. 중드 덕후, 아이치이의 한국어 서비스를 발견하다!
저는 초등학생 때 김용의 <영웅문> 소설을 읽고, <포청천>과 <황제의 딸>을 보면서 자랐습니다. 5년 전부터는 중국 드라마에 빠지면서, 중국어 공부를 시작하였고, HSK 4~6급을 따기도 했습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미 웨이브/티빙/넷플릭스에서 볼만한 건 다 섭렵한 상태라, 새로운 OTT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OTT 서비스 앱들을 다운로드받아서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는지, 퀄리티는 어떤지, 어떤 작품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죠.
그중에서도 아이치이는 중국 대륙용 앱(QQ, 위챗 등으로 로그인)과 별도로 인터내셔널 버전의 앱을 작년 6월에 출시한 상태였습니다.
- 중국용 : https://www.iqiyi.com/
- 글로벌용 : https://www.iq.com/
글로벌 서비스는 이메일/휴대폰 번호/페이스북&구글 계정으로 로그인해서 쓸 수 있고, 가입하면 한달 동안 VIP 기능을 무료로 쓸 수 있다고 하길래 5/14(목)부터 가입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2. 한국 시장을 소중히 여기는 iQIYI에 반하다!
중국의 OTT 앱들은 한국의 월정액 서비스들과 달리, 광고를 시청하면 드라마·영화·예능·애니메이션 콘텐츠를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광고를 스킵하거나, 블루레이 화질(1080P)로 보거나, VIP 한정 콘텐츠를 보거나 다운로드하려면 유료로 결제해야 합니다. 대신 월간 요금이 몇천 원 대로 저렴합니다.
신작 프로그램이 중국과 같은 시간에 공개되기 때문에 국내의 어느 서비스보다도 업로드가 빠릅니다. 하루에 2개씩 공개되어서, 전체 화수가 50~60회에 이르더라도 한 달 내에는 다 볼 수 있어서 몰아보기에도 좋습니다. (매달 신작이 수십 개씩 나오니 가능한 시스템이죠;)
아이치이는 중국의 3개 IT 기업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중 하나인 ‘중국의 구글’ Baidu의 계열사로, 2020년 포춘지 선정 중국 500대 기업 중 333위의 회사입니다.
중국 내에서 텐센트 비디오와 함께 가장 많은 외국 작품을 수입하고 있습니다. 아이치이는 <별에서 온 그대>와 <태양의 후예>를 방영하며 중국 내 한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켰고, 최근엔 로컬 팀을 세팅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로 한국 시장을 중요시합니다.
흔히 ‘중국의 넷플릭스’로 소개되곤 하지만, 아이치이는 ‘중국의 온라인 디즈니’가 되고 싶어 합니다. 2018~2019년에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회사에 선정되었을 정도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을 중요시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거인이 되려 합니다.
하지만 한국인 유저이자 전(前) 모바일 앱 내 홈 담당자로서, 그 당시에는 기계 번역의 비중이 높았던 부자연스러운 자막이나 앱 내 문구 등 개선하고 싶은 부분이 눈에 띄었고, 계속 아쉬움도 쌓여갔습니다. “나한테 맡기면 정말 열심히 바꿀 텐데…”하고 말이죠.
3. 타임라인 순으로 본 아이치이 구직 과정
위와 같이 아이치이VIP 회원으로서의 기대와 아쉬움이 더해지던 중, 링크드인에서 우연히 아래의 채용 공고를 발견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9월 2일부터 아이치이에서 일하게 되었죠. (이후는 너무 길어서 시간순으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5/28(목) 채용공고 발견 및 링크드인 간편 지원
- 베이징에서 올라온 채용공고로, Remote도 가능한 것으로 보였음 (Remote Operation team, 나중에 알고 보니 중국어로는 远程(Remote)运营中心였음)
- 영어와 한국어는 기본, 중국어 가능한 사람·인터넷 및 OTT 회사 출신·소셜미디어 운영 경험자를 우대
- 아이치이 VIP 회원 가입 2주 후, 링크드인에서 채용광고를 보고 꼭 하고 싶다는 생각에 곧바로 간편 지원(Easy apply)함
- 메일로 간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링크드인 내에서 확인하는 기능이었음. 사실 중국 본토의 HR담당자들은 링크드인을 자주 확인하기 어려워서 확인을 못 할 수도 있음. 그러니 되도록 회사 채용 사이트로 직접 지원하거나 이메일로 지원할 것. (같은 기능으로 지원한 트립닷컴 국내 포지션은 바로 다음 날에 연락 옴)
7/9(목) 아이치이 측 한국어 앱 담당자 컨택
- 아이치이 VIP 회원 가입 2달 후, 네이버 중드 카페에 올라온 ‘피드백할 유저 모집’글을 보고 카카오톡으로 중국인 담당자 컨택. 영어로 말을 걸면서 이전에 지원했었다고 함. (원래 알던 분이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 앱을 이용해 보고 피드백을 주고 싶은데, 주말까지 PPT로 정리해서 동료들과 함께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함.
- 중국인인지 물어보고, 중국어 할 수 있는지 물어보니 그렇다고 해서 중국어로 대화 시작.
- 베이징에 와서 일해보지 않겠냐고 하길래, 그럴 의향이 있다고 함.
7/10(금) 인사팀에서 내 이력서를 못 봤다며 이력서를 같이 전달해달라고 함
- 중국에 있는 기업에 지원할 때 링크드인 간편 지원 기능은 담당자가 확인하기 어려우니, 쓰지 말자고 생각함
7/13(월) 앱 개선안을 영문 PPT로 정리해 영문이력서와 함께 메일로 발송
- 총 15가지 개선사항을 Background/Problem/Solution으로 정리해서 전달
- 문서 시작 부분에는 간단한 프로필 및 자기 소개 추가
- 총 36페이지짜리 문서였음. 구글 메일에 첨부하면 자동으로 구글 드라이브 링크로 전환되면서 중국에서 열리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니, 바이두 클라우드에 올려서 전달
7/14(화)
- 베이징에서 전화가 와서 면접 일정을 잡기로 하고, HR 담당자를 위챗에 추가.
7/17(목) 1차 면접(실무진) 진행
- 영어로 면접 진행
- 실무 위주의 질문과 베이징 근무 가능한지 등 확인
- 한국에서의 마케팅 아이디어를 간단히 정리해서 제출하는 과제를 받음
7/27(월) 마케팅 아이디어를 영문 PPT로 정리하여 위챗으로 전달 (총 17페이지 분량)
7/28(화) HR 담당자로부터 전화로 연락받고, 2차 면접을 진행하기로 함
8/5(수) 2차 면접(부문장) 진행
- 자기 소개를 하고 나서, 이전에 보낸 앱 개선안이 어땠는지 먼저 질문함. 마케팅/개발 부서에 전달했을 정도로 좋았다고 하심.
- 한국 시장 및 한국인 팬들에 대한 질문 위주였음.
- 중국 드라마에 관련된 일부 질문은 중국어로 답변했는데, 덕후라 중국어로도 말할 수 있는 내용이었음 (너무 신나게 얘기했음;;;)
8/13(목) 전화로 최종 합격 통보 및 연봉 협상 시작
8/27(목) 최종 계약서 사인 완료
4. 아이치이에서의 근무 시작을 앞두고
입사가 결정되고 2.5주 정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장마에 태풍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마음 편히 놀지는 못하고 집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원래는 베이징에서 근무해야 하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올해는 재택근무를 하고, 내년부터 베이징으로 가서 일하기로 했습니다. 베이징에만 사무실이 4곳인데(중국 다른 지역 및 해외에도 있음), 제가 근무할 곳은 소위 ‘베이징의 이태원’이라 불리는 산리툰 근처네요. 월세가 90~100만 원씩 들겠지만, 왕징(코리아타운)·베이징역·수도 공항이 가까운 걸 위안으로 삼는 중입니다.
직함은 ‘Senior (Content) Operations Specialist’입니다. HR 담당자분이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셔서 채용 과정에서도 한국어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어 편했습니다. 이메일이 아닌 위챗으로 연락하다 보니 궁금하면 바로바로 물어보고 답변을 받을 수도 있었죠.
채용과 관련된 내부 의사 결정 속도도 매우 빨라서, 이력서 보낸 바로 다음 날에 면접을 잡자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과제를 제출한 다음 날에 2차 면접이 진행될 거라는 연락도 받았죠. 그야말로 아이치이의 기업 문화인 ‘简单想简单做(Keep it simple)’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업무하기 전부터 여러 한국인 유저 중 한 명으로서 피드백을 주거나, 의견을 주면서 직원들과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대화를 시작할 때 쿠션 문장(예 : I hope your day is going well)으로 시작하는 영어와 달리, “Hi Mika”하고 말 걸고 곧바로 본론을 얘기할 수 있었죠. 커뮤니케이션 속도는 더욱 빨랐고, 편하게 대해 주신다는 인상도 남았습니다.
이렇게 낸 아이디어와 의견은 월요일에 전달한 게 수요일에 앱에 반영되었습니다. 그 정도로 의사 결정 및 반영이 빠르고, 유저들의 의견을 소중히 여긴다는 것도 알 수 있었습니다.
여담으로 저는 ‘퇴직하면 디즈니랜드에서 취미로 미키 마우스 사진 찍어서 올리고 싶다’고 할 정도로 디즈니 팬입니다. 그런데 제 이력서를 전달해주신 분도 디즈니 출신이고, 작년에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공식 팬클럽인 D23의 팬 행사인 D23 Expo에도 참가하셨다고 해서 놀라운 인연이라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입사할 수 있게 되었네요. 그분이 저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신다고 하니,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차 면접 때 미래의 상사로부터 ‘베이징에 왔을 때 중국인 동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들었기에, 중국어 공부는 계속 놓지 못 할 거 같습니다. (지금은 메신저나 메일로는 중국어로 이야기하는 게 가능하지만, 듣기는 들을 수는 있되 이해하지 못하는(听不懂) 난감한 상황입니다. 다행히 사내 공용어는 영어라고 하네요^^)
제가 가고 싶었던 직장의 조건은 아래와 같았는데요, 가족들은 합격 소식을 듣고 딱 원하던 회사에 들어갔다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 4개 국어(한/일/영/중) 능력을 활용해서 일하고 싶다
- 다른 나라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
- 아시아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빵을 싫어함)
- 취업비자 발급 가능한 회사
- 기왕이면 내가 애용하는 앱/서비스였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어제 발견한 문구가 마음에 들어 이걸로 마무리하려 합니다.
Difficulty creates opportunity.
원문: Inspired by M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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