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게시판에 오를 때마다 3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항상 열띤 토론의 주제가 되는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바로 야구 경기에서 감정을 표출하는 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
야구계에는 수많은 불문율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사인을 훔치지 말 것, 점수차가 크게 난 경기에서 도루를 하지 말 것. 그리고 큰 타구를 날린 뒤 공을 지나치게 오래 쳐다보거나, 배트를 함부러 던지지 말 것 등. 이러한 불문율은 야구의 역사와 함께 생겨나고 함께 했습니다. 규정으로 정해지진 않았지만, 불문율들을 지키지 않으면 같은 동료에게서도 좋은 대접을 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앞서 열거한 규칙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방의 감정을 존중하라’는 내용이 그 배경으로 깔려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스포츠에선 찾아보기 힘든 야구계, 특히 메이저리그에서 유난히 강조되는 독특한 점입니다. 축구, 농구, 미식축구, 배구와 같은 다른 구기종목에서 득점 이후 기쁨을 표하는 장면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팬들과 짜릿한 감정을 공유하고 동료들과 유대감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이는 나쁜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어떤 감독들은 더욱 적극적인 세레모니를 권장하기도 합니다. 구기종목 외에 여타 스포츠에서도 격한 기쁨을 드러내는 일은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메이저리그에선 이런 기쁨의 표출이 역사적으로 ‘예의 없는’ 행위로 여겨져 왔습니다. 실점한 상대, 특히 투수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단 이유에서입니다. 상대 선수도 같은 리그에서 일하는 사람이기에 동업자 정신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문율은 팬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과도한 감정 표출로 상대의 불만을 산 선수는 팬들에게 먼저 비판받는 경우도 흔해졌습니다.
미국에서 야구 외에 다른 스포츠도 많은 인기를 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이런 상황이 미국 스포츠계에서 일반적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특히 세레모니가 일상인 농구 같은 스포츠를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야구 외 다른 종목을 즐겨 보시는 분들은 충분히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과연 한국의 ‘빠던’이 비정상인 것인가
작년부터 국내에서 언론의 화제가 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해외수출(?)’된 한국 프로야구의 명장면, ‘빠따(배트) 던지기’ 줄여서 ‘빠던’입니다.
전준우의 배트던지기는 파울을 홈런으로 오판해 벌어진 해프닝이었지만, 올해까지 연이어 수출된 배트를 던지는 장면들을 보면 실제 홈런장면인 경우도 꽤 많습니다. 미국 현지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격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몇몇 네티즌 입장에서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그것이 긍정적인 호감이든, 부정적인 비호감이든 간에요.
다른 의미에서 전설이 된 전준우의 빠던(…)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내 야구 팬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홈런 세레모니와 배트 던지기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메이저리그의 불문율에 따라야 하는지, 아니면 역으로 메이저리그가 과한 제재를 가하는 것인지. 이는 좀처럼 합의를 보기 어려운, 아니 애초에 합의를 볼 수 없는 개인의 취향에 가까운 문제입니다. 규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미국 현지에서도 이런 세레모니에 대해 양쪽으로 시선이 갈리고 있습니다.
여하튼 국내에선 이런 세레모니를 좋게 받아들이는 시선이 많은 편이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내야석에서 행해지는 축제에 가까운 응원이 야구장의 명물로 남아있을 수 있었겠죠. 같은 종목에서 한국-미국에서 피부색만큼이나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동업자 정신이 실종됐기에 이런 세레모니가 주구장창 나오는 것일까요? 그렇게 쉽게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국 야구계는 다들 아시다시피 한다리만 건너면 서로 알 수 있는 좁은 인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다 아는 사이’인 선수들이 프로가 되면서, 학생 시절의 선후배 관계가 20세 이상 차이나는 프로 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곤 합니다. ‘동업자’ 이상으로 끈끈한 선후배 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다는 생각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동업자 정신이 모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간간이 일어나는 ‘빈볼 사태’에서도 여실히 드러납니다. 얼마전 LG의 정찬헌 선수와 한화의 정근우 선수간에 ‘보복구 사태’가 있었을 때도, 팬들의 비난은 대개 ‘선후배간 예의 실종’ ‘동업자 정신 실종’을 이유로 한 것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당시 이병규 선수도 정근우 선수에게 ‘동업자 정신을 망각한 과도한 태클을 했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국도 이러면 큰일 납니다.
결국 모든 것의 원인은 동업자 정신, 선후배간 예의였던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동업자 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야구의 홈런-삼진 세레모니가 상대에 대한 존중이 없기 때문에 행해진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해 보입니다.
이런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어디서 오는지, 이유 하나만을 들어 설명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 야구 이상으로 한국 남성들이 많이 즐기는 축구계의 문화(일상화된 세레모니)가 반영된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미국에선 농구, 미식축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문화는 그들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단지 다른 종목의 영향 때문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문화적 차이일 수도, 역사적 차이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됐든 피부색깔만큼 이는 ‘다른’ 문제지 ‘틀린’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라고 말하기도 어렵겠네요.
‘야구 본토’의 불문율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이와 관련해 가장 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된 것은 역시 카를로스 고메즈와 게릿 콜의 충돌입니다. ‘배트 던지기’는 아니지만, 타구를 바라보는 행위가 문제가 됐습니다.
카를로스 고메즈(밀워키)와 게릿 콜(피츠버그)의 충돌에서 비롯된 벤치클리어링
위 영상에도 나와있지만, 당시 상황을 다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1) 카를로스 고메즈가 게릿 콜의 타구를 받아치고, 홈런이라고 생각해 공을 쳐다봤습니다.
2) 그러나 그 공은 담장을 넘지 못하고, 천천히 걸어가던 고메즈는 급히 질주해 3루까지 도달합니다.
3) ‘3루타인데도 공을 한참 쳐다본’것에 화가 난 게릿 콜이 고메즈에게 말싸움을 걸었습니다.
4) 고메즈와 콜이 서로 물러서지 않고, 결국 벤치클리어링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큰 화제로 이어졌고, 벤치클리어링에 연루된 고메즈는 3경기 출장 정지라는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같이 싸움을 시작한 콜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는 ‘싸움은 콜과 고메즈가 같이 했지만, 고메즈가 공을 쳐다봄으로써 모든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는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바라보는 미국 현지인들의 시선도 징계의 결과와 같았을까요? 100% 그랬다고 하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ESPN의 데이빗 쇼엔필드는 이 사건에 대한 칼럼(링크)에서 ‘고메즈는 퇴장받을만 했다’는 제목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이 칼럼에 달린 댓글들 중 가장 많이 Like를 받은 의견은 ‘콜에게도 책임이 있다. 쇼엔필드, 왜 콜에게만 면죄부를 주는가!’란 비판이었습니다. 고메즈를 감싸는 것은 아니지만, 세레모니를 행한 그에게 100% 잘못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비단 댓글에서만 이런 의견이 드러난 것은 아닙니다. 아래는 이 사건에 대한 팬들의 의견을 물은 ESPN의 투표 결과입니다(2014-05-16 캡처).
첫번째 투표 결과(오른쪽 위)는 칼럼에 달린 댓글처럼, 고메즈 한쪽만을 비난할 수 없다는 시선도 상당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공을 바라본 고메즈를 탓하는 의견도 1/3이지만, 오히려 콜을 비판하는 시선이 그보다 더 많습니다.
두번째 투표 결과(왼쪽 위) 역시 ‘불문율’과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여전히 강한 의견 표출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23%입니다. 그러나 ‘강한 의견표출’이나 ‘과도한 세레모니’에 대한 기준이 불분명한 것처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역시 제각각입니다. 심지어 세레모니에 대해 거부감이 없다는 극단적인 의견은 불문율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주문한(23%) 사람들보다 14%나 많습니다.
세번째 투표 결과(왼쪽 아래)는 그래도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시선이 아직은 보수적인 편이란 것을 시사합니다. 50%나 ‘강한 의견 표출은 좋지 않다’는 의견을 표했습니다. ‘고메즈가 좋다’는 보기가 있음에도 이를 선택했다는 것은, 무엇이 이유가 됐던 간에 고메즈의 행위를 좋게 보긴 어렵단 뜻입니다.
주어진 보기를 좋게 해석하면 ‘세레모니는 괜찮지만, 예의는 지켜야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보수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고메즈란 선수가 싫진 않지만, 저런 세레모니는 잘못된 것이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보기의 문구가 애매한 만큼 어느쪽으로 해석할지는 의견이 분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2번째, 3번째 결과가 시사하는 바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레모니에 대한 시선이 마냥 부정적인 것도, 그렇다고 마냥 긍정적인 것도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메이저리그와 미국 팬들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도 세레모니에 대한 생각이 무조건적인 ‘반대’는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사한 주제에 대한 과거 설문이 없어 비교해볼 순 없지만, 야구계의 불문율이 현대에도 절대적인 지지를 얻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메이저리그의 변화, 그리고 미래의 야구 문화는?
이 문제에 대해 FOX스포츠의 존 모로시는 상당히 급진적인 칼럼을 내놓았습니다(물론 기존 관행에 비해 그렇단 것입니다). 선수들이 이제 자신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출할 수 있어야한다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표현을 통해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카를로스 고메즈를 야시엘 푸이그, 호세 페르난데스와 같은 이름으로 바꾼다면 비슷한 사건이 종종 벌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틴 아메리카 출신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현상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라틴 아메리카 선수의 증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2년 메이저리그에서 뛴 선수들 중28%에 달하는 선수들이 라틴 계통으로 미국 출신의 순수 흑인 선수 비율을 이미 한참 앞질렀습니다.
문제는 라틴 아메리카의 야구 문화가 미국의 그것과 상이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한국 선수들처럼 경기중 배트를 던지고 홈런 타구를 천천히 쳐다보는 등 세레모니를 배척하지 않는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를 즐겨 보는 팬이라면 이미 라틴계 외국인 선수들의 흥겨운 모습을 충분히 접했을 것입니다.
존 모로시는 칼럼 후반부에서 다른 종목들을 나열하면서 ‘왜 야구에서만 대단한 장면에서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가 예시로 든 것은 미식축구와 축구로 이미 미국에서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종목들입니다. 불문율에 대한 한국 팬들의 부정적 시선은 국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100년의 긴 역사동안 천천히 변화해온 야구인만큼 불문율이 쉽게 바뀌리라 생각할 순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이런 의견들이 대두되고 있고, 얼마전 비디오 판독이 실제로 도입된 것처럼 야구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선수들도 인터넷의 보급을 통해 예전보다 팬들과 더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서, 예전처럼 라커룸 내부의 소동이나 선수들간의 규칙이 성역으로 취급받고있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처럼 세레모니에 대한 시선 역시 점점 바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불문율’은 과연 ‘낡은 규칙’에 불과한가?
그렇다면 과연 이런 불문율이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 낡은 악습일 뿐일까요? 이 역시 단정지을 수 없는 문제입니다. 사실, 이 글에서 제가 전개해간 논리적인 흐름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헌데 이런 수준의 논의들이 칼럼으로 쓰이고 기사로 쓰이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어렵지 않은 주제이고, 논리적으로 허점이 없는 의견이 아니란 것입니다. 또한 그만큼 반대의견도 논리적으로 일리가 있습니다. 괜히 21세기까지 유지된 불문율이 아니란 것이죠.
존 모로시는 다른 종목의 예시를 내세우며 야구에서만 ‘세레모니’가 금지되선 안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목에서도 과격한 세레모니는 다툼의 원인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축구에서 골을 넣고 상대 면전에 대고 세레모니하는 것을 본적 있으신가요? 대부분 코너로 달려가 팬들과 기쁨을 함께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식축구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상대를 완전히 무장해제시키는 것이 목표인 격투기에서도, 상대를 도발하는 것이 아닌 ‘자축’의 차원에서 세레모니가 행해집니다.
과거 UFC에서 상대방 위에 올라타 ‘로데오’ 세레모니를 한 브록 레스너는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골 세레모니가 일상인 축구에서도, 상대방 서포터를 향한 도발적인 세레모니는 비난의 대상이 됩니다. 즉, 어떤 세레모니든 모든 것은 ‘자축’의 차원에서 행해질 때 상대도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죠. 메이저리그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런 짓을 했다간 딱 맞아 죽기 좋습니다(제가 아스날 팬이라 그런건 아닙니다)
자축과 도발, 그 오묘한 경계에서
‘자축’과 ‘도발’을 해석하는 경계는 어디일까요? 사실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입니다. 같은 말이더라도 주변환경, 대상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집니다. 하물며 정확한 의미가 없는 몸짓인데 사람마다 해석이 다른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바디 랭귀지를 해석할 때 상대의 표정과 주변 상황에 더 주목하는 것처럼, 같은 세레모니라도 상황에 따라 상대의 반응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처음에 나온 세 가지 사진을 기억하시나요? 펠릭스 에르난데스, 매니 라미레스, 야시엘 푸이그의 사진입니다. 그런데 제가 세 사진을 검색할 때 어떤 검색어를 쳤다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다음과 같습니다.
Felix Hernandez perfect game (펠릭스 에르난데스 퍼펙트 게임)
Manny Ramirez walk-off (매니 라미레스 끝내기)
Yasiel Puig bat flip (야시엘 푸이그 배트 던지기)
차이가 보이시나요? 위 둘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인정’해주는 세레모니지만, 푸이그의 세레모니는 시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빠던’을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푸이그의 몸짓을 보고 눈살을 찌푸릴 것입니다. 하지만 매니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두번째 사진에 화를 내진 않을 겁니다. 왜냐면 누구나 인정해주는 ‘끝내기 세레모니’의 순간이니까요.
결국 제가 하고싶은 말은, 이런 ‘세레모니’를 대하는 기준이 심지어 같은 종목 하에서도 천차만별이란 점입니다. 같은 야구인데도 한국과 중남미와 일본과 미국의 문화가 다른 것이 현실입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도 보는 시선이 세계적으로 다른데, 이것을 어느 한쪽이 잘못돼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아마 영원토록 정답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만 리그와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이 최선이라고는 말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적어도 메이저리그에선 저런 세레모니가 옳다/그르다고 했을 때 ‘그르다’ 쪽으로 조금 더 치우쳐서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00년의 역사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도 영원히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히스패닉 선수들의 비율이 점점 더 늘어갈수록 정답이 ‘세레모니도 좋다’로 치우칠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성원의 생각이 곧 그 집단의 생각이니까요. 어찌됐든 로마에선 로마 법을 따르란 말처럼, 진정 동료들을 존중하는 선수라면 그들의 생각도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당분간 히스패닉 선수의 비율이 백인 선수의 비율을 추월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굴러들어온 돌’인 히스패닉 선수들은 ‘박힌 돌’인 백인 선수들의 불문율을 존중해야겠죠.
하지만 ‘박힌 돌’의 생각이 무조건 잘못된 것도 아니고, 라틴계 선수들의 비율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만큼 그들의 문화도 리그 전반에 걸쳐서 점점 영향력이 커질 것이고요. 더불어 팬들의 시선도 점점 바뀌고 있습니다. 불문율이 무조건적으로 옳다는 생각 대신, 이젠 반대로 새로운 문화에 대한 넓은 포용력도 가지는 것이 더 바람직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정답은 없다, 이 말로 두서없이 긴 글을 마무리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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