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여전히 고단하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생이 있다면 회사에 입사한 후에 엄청난 꽃길이 펼쳐질 것은 기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특히 여성이라면 더더욱.
지금까지 ‘세상이 이제는 달라지고 있다’고 이야기해놓고 이런 과거 회귀적인 엄포를 놓는 것을 너무하다고 표현하지 말라. 이건 어디까지나 나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나의 이야기는 유난하지 않다. 내 주변 정말 열심히 달려온 여성 친구들에게, 여성 동료들에게 빈번하게 일어나는 흔한 일이기도 하다.
우리는 원하는 회사에 입사하고 남성 동료들과 같은 레이스 선상에서 열심히 뛰게 된다. 나는 25살에 쇼핑호스트로 입사했다. 그때 당시에 동기는 7명이었다. 2005년도 쇼핑호스트 7명을 뽑는데 600명이 넘게 응시자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차부터 시작해서 최종면접까지 몇 단계를 거쳐서 뽑힌 신입사원들은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뽑혔다’라는 사실 만으로도 그 기간 반짝거리고 싱그럽다.
매일 아침 청바지가 아닌 출근 의상을 고르고 백수가 되지 않고 회사를 가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딸을 위해 차려진 밥상을 ‘받고’ 회사에 와서는 선배와 상사의 눈치가 보이긴 하지만 눈치보다는 빨리 일다운 일을 하고 싶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어깨 너머로 이 일 저 일을 거든다. 중간중간 취직을 축하하는 친구들과 통화도 하지만 딱히 고민스럽고 문제될 일은 없다.
이제 슬슬 소개팅에 나가 연애도 해볼까 하고, 점심은 회사 동료들과 맛있게, 저녁은 종종 회식도 하게 된다. 술에 좀 거나하게 취해서 들어가도 이건 ‘업무의 연장’이니까 가족들 모두 이해해준다. 물론 많이 취하면 안 되겠지만. 은근히 회식은 다음 날 동료들 또는 선배들과 심리적 거리를 줄여주며 돈독함을 느끼게 했다. ‘잘 들어갔어?’ 등의 인사를 하며 말이다. 주말에는 늦잠을 푹 자고 필요한 쇼핑도 하고(왜 그 당시에는 옷은 사도 사도 입을 게 없었을까) 업무에 도움이 될 만한 동호회나 공부도 즐겁게 했다.
가끔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 출근을 했다. 직업의 특성이었겠지만 홈쇼핑은 새벽 6시부터 생방송이 시작되고 6시에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새벽 4시에 출근을 해서 준비를 한다. 그 당시에는 신입사원들이 업무를 시작하면 새벽 방송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언젠가 하게 될 방송을 미리 준비하고 싶은 마음에 일찍 나와서 생방송 준비를 하는 선배를 따라다니기도 했다.
12년 전 나의 생활을 아주 짧게 한 단락 써보았는데 그때를 되돌아보니 ‘참 여유롭던 시절이구나’ 싶다. 그때는 나만 생각하면 됐고, 나의 성장만 고민하면 됐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저축만 제외하면 나에게 재투자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마음의 자책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세상의 환경은 그때도 하루가 다르게 변했겠지만 회사의 누구도 나에게 그 변화의 주역이 되기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그저 방금 뽑은 이 직원이 자신의 역할을 90% 정도만이라도 잘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기본 업무 인지와 회사 조직의 잔 업무, 보조적 기능만 깔끔하게 처리해도 ‘훌륭하다’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다 방송을 시작하고 직장인 4–5년 차가 되면서 선배도 있지만 후배도 생기고 생방송 업무도 더욱 복잡한 시스템 속에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해내야 했다. 성장도 하지만 때로는 소모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했다. 매일 똑같은 회사 생활 속에 결혼은 또 다른 감정도 느끼게 해주고 임신은 새 생명의 놀라움을 안겨주기도 하고 출산은 나를 진짜 어른으로 만들기도 했다. 요즘은 비혼이나 딩크족이 많아지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형성하거나 공동체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아졌지만 여전히 내 주변의 대다수는 나와 비슷한 라이프 타임라인을 갖는 듯하다.
문제는 조직 안에서 이런 과정을 겪는 동안 여성은 너무 많이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맞벌이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나는 단순히 회사를 다니는 여성과 남성의 비율을 비교할 것이 아니라 기간 내 남자와 여자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분석해봐야 한다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각각의 상황들, 흔한 인생의 변화들은 여성으로 하여금 심리적으로 주저앉거나 업무에서 뒤로 물러서게 만든다. 나는 주변에서 임신 출산 기간의 휴직으로 인해 승진에 피해를 보는 경우를 종종 봤다. 수치상으로는 맞다. 임신과 출산을 하는 동안 출근을 하지 못했으므로 같은 기간 출근한 사람에 비해 승진이 미뤄진다는 논리다.
문제는 심경적인 데서 발생한다. 승진이 미뤄진 대리는 동기인 과장의 지시를 받기도 하고 때로는 과장인 후배의 지적을 받기도 한다. 조직을 지탱하는 큰 뼈대는 바로 승진과 직책이다. 이것이 월급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여성은 자연스럽게 뼈대의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고 중심부로 재진입하기에는 더욱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예전의 패기로 더 큰 노력을 한다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페이스북의 여성 CEO 셰릴 샌드버그가 오랫동안 회자될 테드의 강연을 하기 위해 출장을 떠나야 하는 날에도 그녀의 아이는 엄마의 다리를 붙잡고 ‘엄마 가지 마’라며 울고 떼를 썼다고 고백했다.
한시적 이별인 모닝 이별은 실제로 많은 엄마들이 매일 겪는 일이며, 엄마의 출근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아이가 받아들이기까지 혹시라도 이 과정이 우리 아이에게 분리 불안이라도 느끼게 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아침마다 전쟁을 하게 된다. 당연히 누군가 이 과정을 해결해주지 않으면 새벽에 일찍 출근하는 것도 힘들다. 남편, 부모님, 가사도우미 이 셋 중 하나의 충족 없이는 그날의 업무를 위해 새벽 출근을 하거나 야근을 하면서 업무를 좀 더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회사를 온 뒤에도 중간중간 겨울 보일러 동파되듯이 터지는 집안의 대소사, 그리고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프기라도 하면 생기게 되는 문제, 이 문제들의 해결 과정 속에 회식이나 나만의 시간이 얼마나 사치인지는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단순히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주체가 되느냐 아니면 뒤로 빠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회사의 일마저도 ‘요즘 무슨 일 있어요?’라는 걱정을 들으며 흔들리게 만드는 난관들이 산재해 있다.
수전 보이치키 유튜브 CEO는 아이가 다섯인데 모 인터뷰에서 이렇게 격려했다.
일하는 엄마는 정말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는 데 익숙해진다. 나는 매일 저녁 6시부터 9시 사이에 아이들과 함께 있기 위해 일의 우선순위를 매기고 재빠르게 처리한다. 그 세 시간 동안 기기를 다 끄고 서로에게 집중한다. 요리도 같이하고 아이들이 전해주는 그 날의 특종을 듣는다. 아홉 시에야 셀폰을 켜고 다시 일을 시작한다. 젊은 워킹맘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육아는 점점 더 편해진다. 미친 듯이 힘든 기간이 평생 가지는 않는다.
문제는 수전 보이치키만큼 아이들과 특종이라도 이야기하려면 최소 육아 6~7년 차에는 접어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전까지 결코 쉽지 않다. 당연한 아이의 역할이지만 아이는 온 힘을 다해서 엄마를 괴롭힌다. 나도 첫째 아이가 6살이 되면서 육아가 일과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는 논리를 깨달았지만 그 안정기가 오기까지 이미 많은 여성은 엄마의 이름으로 회사에서 뒤로 밀려나거나 무기명이 되거나 엄마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모든 조직이 ‘그러므로 이해해야 한다’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6년만 기다려주시죠’도 아니다. 조직은 원래 그런 거다. 아무리 시스템을 보완하고 나라에서 제도를 만들어 준다고 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은 이익 위주의 선택을 하게 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본능적으로 찾아간다. 직장인은 수동적으로 이 시스템을 안고 가기 때문에 여성들의 직장 생활은 언제나 ‘계속 다닐 수 있을 것인가’ ‘그만두고 돌아갈 것인가’ 고민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비즈니스맨다운 멘탈 체인지로 돌파구를 마련해보자. 조직 내에서 내가 할 수 없는 부분, 역량을 발휘하기 힘든 물리적 조건은 일단 접어두자. 그리고 역발상을 시작하자. 내가 이 미묘한 발상의 전환이 갖는 힘을 깨달은 것은 나의 처지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서 이미 쇼핑호스트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비즈니스맨으로의 사고 전환을 일찌감치 해냈다. 그러면서도 계속 회사의 동료들과 회사 시스템 속에서 방송을 하기 때문에 완전한 창업의 형태는 아니다. 즉 조직 내 비즈니스맨으로 나의 정체성을 일찍 깨달았다.
그러면서 방송을 위해 찾아오는 개인사업자부터 중소기업, 대기업까지 다양한 비즈니스 현장을 보고 동시에 여전히 조직의 일원으로 여성이 겪는 상황들을 교차점으로 읽어왔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 풀이는 소비자의 니즈와 홈쇼핑의 실적, 시대의 트렌드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뤄졌다. 역시 답은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였다.
조직에서는 결코 +a로 평가받을 수 없었던 결혼이나 임신 출산 등도 비즈니스맨인 나에게는 또 다른 무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방송하는 대다수 상품의 소비자가 주부 또는 여성이기 때문에 나는 진심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제2의 조이 망가노가 되어 상품을 머리로 팔지 않고 마음으로 판매하게 됐다. 내가 느끼는 모든 순간의 일들이 다른 아이 엄마의 일상이고 주부 카페에서 자주 올라오는 고민거리이고 방송을 보는 소비자들의 니즈였던 것이다.
앞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입는 것 먹는 것은 줄이겠지만 그 와중에도 절대 줄어들지 않을 분야라고 하는 것이 아이들 시장이다. 출산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저출산 시대에 한 명 낳아서 잘 키우자고 생각한 부모들은 더욱 그 아이를 위해 투자한다. 그렇기 때문에 육아, 교육산업은 더욱 전망이 밝다고 생각한다. 홈쇼핑만 하더라도 최근 몇 년 사이 이와 관련된 상품이 부쩍 많이 방송된다.
자, 과연 이 상품들을 잘 팔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난 자신 있게 ‘엄마’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난 대학교 때 국문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중등교육 교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고백하면 학생 때 배웠던 지식보다 우리 아이와 씨름하면서 얻게 된 지혜가 훨씬 크다.
출산 또한 마찬가지다. 감히 내 성찰의 시기를 출산 전과 후로 나뉜다고 말하는데 나의 정신적 신체적 자신감이 극과 극에 놓이게 되는 시기가 바로 출산 기점이었다. 온몸이 붓고 입덧과 임신성 당뇨, 비타민D 부족, 체중의 변화를 겪으면서 나 스스로가 임상시험을 겪는 것처럼 건강에 대해 많은 것을 고민하게 됐다. 무엇이 필요한지 어떤 점이 중요한지 여성이 출산 후 죽을 때까지 관리의 포인트는 어떻게 변화되는지 체감하게 된 것이다.
비염과 축농증 때문에 고생하는 식구가 있으니 청정기와 가습기에 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누구보다 잘 이야기한다. 원리와 제조는 몰라도 니즈와 필요성은 듣기만 해도 비염을 안 겪는 나조차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버티고 해내야 한다.’는 앞 장의 기조는 여전하다. 그런데 나는 무조건 무작정 버티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조직은 생물체와 같아서 신기하게도 안이한 버팀을 언젠가는 알아챈다. 안이한 버팀만으로는 성공이라는 노선을 탈 수 없다. ‘가만히 있었더니 성공했더라고요’는 ‘눈 떠보니 스타가 됐던데요?’ 같은 먼 이야기다.
우리의 성공 스토리는 ‘비즈니스맨이 되어서 버티고 해냈다’가 되어야 한다. 단점을 장점으로, 어려움을 기회로, 고민의 해결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는 것이 바로 비즈니스맨이다. 여기서 비즈니스맨이 된다는 것은 당장 이직을 하거나 창업을 하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자기 자신을 기업으로 생각하고 일한다는 것이다.
편안함과 성장은 절대 공존하지 않는다. 비즈니스맨은 기회가 오면 그냥 잡는다. 속으론 무서워 죽을 것 같으면서도 그 자리에서 수용한다. 그리고 그것과 싸우면서 성장한다. ‘아직 나는 준비가 안 됐어. 더 생각해보고 도전하겠어’ 가 아니라 잘 모르는 분야도 겁먹지 않고 도전하는 비즈니스맨이 되어야 한다.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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