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로 일하면서 가끔 함께 작업하자는 제안을 받습니다. 대개 스피치와 관련된 강의나 강연이죠. 보통 제가 직접 기획사와 만나 미팅을 거쳐서 컨셉을 잡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여러 강사들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다는 모 퍼스널리티 컨설팅 회사와 미팅을 하게 되었죠.
예쁜 사무실에 도착해서 대표님 두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첫인상이 산뜻하여 오늘 미팅 자리가 기대되기도 했지요. 새로운 사업 또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이렇게 서로 만나서 긴장을 풀고 ‘핏을 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두 시간 넘게 미팅을 진행하고 나오면서 첫 인상과는 다르게 ‘나라면 결코 저렇게 말하지 않겠다’는 안타까움이 남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시작이 어긋나면 결코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니까요.
당신이 쇼핑 호스트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컨설팅 회사 대표가 한 가장 큰 실수는 무엇일까요? 바로 시작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대화법입니다. 아무리 중요한 내용도, 수십억의 가치가 있는 신선한 아이디어도 때와 장소가 있는 법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쇼핑 호스트와 미팅을 하는 자리에서, 대표님은 코로나19로 인한 우리나라 경제 시장 분석부터 악재가 이어질거라는 전망,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홈쇼핑 업계에 대한 분석, 쇼핑호스트 시장의 한계, 강의쪽으로 진출하는 방송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까지 쉼 없이 늘어놓았습니다. 내용만으로야 여느 일간지 못지 않은 분석이었지만 그게 과연 첫 만남, 시작에 어울리는 오프닝이었을까요?
안녕하세요 고객님! 반갑습니다. 어제 코로나19 확진자가 이태원에서 또 나왔더라구요? 다들 코로나가 끝이다 끝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이겁니다. 지금 멋모르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하반기에는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뭘 먹고 살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네요. 고객님은 이번 달에 얼마 버셨어요?
하긴 뭐 그래도 홈쇼핑 보는 사람들은 계속 보니까 상관없죠. 이것도 한번 보실래요? 사실 제가 보기엔 이거나 저거나 다 똑같아요. 각 홈쇼핑에서 쇼핑호스트들이 서로 다르다고 자랑하지만 상품은 뻔하거든요. 그래도 제 상품이 좀 나을 거예요.
어떤가요? 이런 오프닝을 하는 쇼핑호스트는 없을 겁니다. 이렇게 시작한다면 고객들도 손사래를 치며 도망갈걸요? 아니면 홈쇼핑 채널에 항의를 할 수도 있죠.
아직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사회·경제·정치적인 내용에 대해 미래를 재단하는 식으로 말하면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그런 내용으로는 오프닝을 진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발을 불러일으킬 위험이 도사리고 있죠. 그리고 우리는 처음 만난 사람의 지갑이나 주머니를 대뜸 열어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상대를, 혹은 어떤 분야를 논할 때 ‘다 거기서 거기다’ ‘다를 바 없다’ ‘뻔하다’ 는 용어를 쓰는 것은 정말 신중해야 합니다. 그 분야가 자신의 분야든 아니든, 그 자리에 관련 종사자가 있든 없든 어떤 관계로 접점이 생길지 모르는 사업 파트너와의 첫 만남에서 부정적인 속내를 드러내는 꼴이니까요. ‘다 뻔하지만, 나는 다르다!’라는 방식으로 반전을 꾀하고 싶은 분들도 저는 웬만하면 첫 만남에선 다른 방식을 선택하라고 조언 드리고 싶습니다.
소개팅 자리에서 ‘여자는 다 똑같다. 하지만 너는 다르다’라는 말을 하는 상대가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요? 첫 느낌이 썩 경쾌하지는 않겠죠. 오프닝은 상대에게 내보이는 첫인사입니다. 그러니 신중하고 부드럽게 핏을 보시는 게 좋습니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인데 꼭 그렇게까지 오프닝을 신경 써야 하나요?
어차피 내 생각을 말할 건데, 간 보는 것보다야 처음부터 본론을 이야기해서 빠르게 결과로 접근하는 게 좋지 않습니까?
만약 이런 생각이 드신다면, ‘배려’라는 키워드를 생각해보세요. 함께 일을 시작한다는 건, 나와 다른 누군가와 손을 잡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혼자 일할 수 없기 때문에 타인과 함께 일하는 거죠. 그렇다면 타인에 대한 배려는 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시작하는 말’은 달라야 합니다
저는 결국 그 컨설팅 대표와 같이 일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자본금도 많고 지원도 막강하고 개개인 브랜딩까지 신경 써 주는 회사, 라고 어필하셨지만 뒤돌아보지 않고 과감히 나왔어요. 자리가 마무리될 때쯤 대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쇼핑호스트의 시초는 사실 약장수 아니예요? 500원짜리 현혹시켜서 5000원에 팔았던 그 약장수들, 저는 이 사람들도 쇼핑호스트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다 비슷해 보이는 쇼핑호스트로는 경쟁력이 될 수 없죠. 석혜림씨의 차별력은 뭔가요? 장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상대의 마음을 사로잡고 호감을 끌어내는 직업인 쇼핑 호스트라면, 똑같은 내용도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쇼핑 호스트도 점점 진화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분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쇼핑 호스트의 시작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해요. 분명 홈쇼핑이 없던 시절에도 동네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건을 기~가 막히게 잘 소개하는 분들은 있었을 거예요. 그분들이 말하자면 과거의 쇼핑 호스트분들이었겠죠. 그렇다면 미래의 쇼핑 호스트는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요?
많은 회사 중 저희와 인연을 맺게 되어 기쁩니다. 저희 회사는 이런이런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저희도 좀 더 석혜림 강사님을 알고 싶어요. 석혜림 씨는 본인의 어떤 부분을 강점으로 생각하시나요?
이쪽이 조금 더 시작하는 말, 천천히 다가가며 서로의 매력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자리에 어울리는 말 아닐까요?
원문: 석혜림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