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 글은 CSNPHILLY.com의 The Gwynn men: A son’s love, a father’s fight를 번역한 글입니다. 토니 그윈이 영면에 들기 하루 전에 나온 기사입니다.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일요일 오전, 토니 그윈 주니어는 일어나 서부에서 오는 전화를 기다릴겁니다. 아버지의 날이 아닌가 그리고 그윈의 가슴은 학교때문에 샌디에고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세명의 어린 딸과 와이프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기쁨에 넘칠 것이구요.
딸들로부터 장거리 아버지의 날 포옹을 받고 나면 그윈은 이제 자기 자신의 아버지를 챙길 차례가 될 테고 서부로 전화를 걸겠죠.
“항상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왠지 모르게 그게 너무 어색했었죠. 그러나 2010년 이후 그게 어색했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건 내가 확실히 하고 싶은 그런거에요. 왜냐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그윈의 아버지, 토니 그윈 시니어는 야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 중 하나입니다. 내셔널리그 타율 타이틀을 8번이나 차지한 이 영원한 올스타 선수는 첫 턴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기도 했으며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신사이기도 했습니다. 뱅크스, 립켄, 뮤지얼과 같이 잘하고, 오래 꾸준한 활약을 펼치면서 인성까지 갖춰 팀의 상징이 된 선수이며 샌디에이고의 메이저리그 팀 그 자체로 여겨져 Mr. Padre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경기장 밖에 있는 동상에도 그렇게 써있죠.
토니 그윈 주니어에게, Mr. Padre는 그냥 ‘아빠’입니다.
“내 절친이죠.” 8년차 메이저리거이자 올 시즌 처음으로 필리즈에서 뛰는 31세의 외야수 토니 그윈 주니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냥 좋은 사람이에요.”
토니 그윈 시니어를 한 번이라도 만나본 사람이라면 저 말에 동의할 겁니다.
아마 아들 토니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 힘들었던데는 이유가 있었을겁니다.(일단 이유 하나는 – 어렸기 때문에) 어쩌면 아버지와 캐치볼이나 스윙을 하느냐 그랬을지도 모르고 혹은 타격 이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느냐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 이건 신에게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격이네요. – 혹은 장난을 치느냐 너무 바빴을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서 몰래 차 오디오의 소리를 올려 고막을 울리게 만들면서 “라디오좀 가만 놔둬!”라는 호통이 들리게 했던지요.
2010년 모든건 변했습니다. 아버지 그윈의 침샘에서 암세포가 발견되면서요. 갑자기 아들 그윈이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게 쉬워졌습니다. 토니 그윈 시니어는 암 진단을 받은 이후 두 번의 수술을 가졌고 그 중 한 번은 오른쪽 볼 안에 있는 악성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이었습니다. 의사가 확실하다고 진단한건 아니지만, 그윈은 오랜 세월동안 씹는 담배를 씹어왔고 아마 그것이 암에 걸린 이유였을겁니다. 어쨌든 아들 토니도 아버지가 진단 받자마자 씹는 담배를 끊었습니다. 작년에 딱 한 번 다시 했다고 인정했지만, 바로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합니다.
암 선고 이후 4년, 토니 그윈 시니어는 여전히 싸우고 있습니다.
요 몇 달 동안, 암과의 싸움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윈은 새로운 치료법을 시도해보고 있는데 부작용으로 몸이 약해지고, 면역체계가 약화되고 있습니다. 3월엔 2003년부터 야구 코치로 있던 샌디에이고 주립대에 휴가를 냈습니다. 아즈텍(샌디에이고 주립대 야구팀)이 마운틴 웨스트 컨퍼런스 토너먼트에서 우승할 때, 덕아웃엔 토니 그윈의 버블헤드인형이 있었습니다. 토니 그윈 주니어는 2003년 드래프트에서 밀워키에게 지명되기 전 1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대학에서 선수생활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이건 매우 특별한 일이었죠. 왜냐면 어린 시절 그윈 주니어는 파드리스의 원정때마다 절친을 떠나보냈었기 때문입니다. “일년 내내 아버지와 함께 있었고 그건 정말 대단했었죠.”
그러나 최근 몇 달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4년동안 아버지가 싸워왔던 그 어떤 시기보다도 지금이 힘든 시기에요. 스프링트레이닝이 시작할때까지만 해도 좋은 상태셨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더 악화되었죠. 그러나 크게 봤을때, 난 터널의 끝이 보여요. 아버지도 그렇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어요. 스스로 해쳐나가시는 일이고, 힘든 상황이니까요.”
선수로서 토니 그윈은 게임을 정말 즐기는 선수였으며 큰 웃음으로 유명했고, 정신력, 열정은 그의 스윙만큼이나 대단했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좋은 사람이 고작 54세의 나이에 이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소식을 듣는건 힘든 일입니다.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해보세요. 평생동안 함께 하면서 필드 위에서나 아래에서나 함께 했던 아들에겐 어떨지요. 가슴이 찢어집니다.”
토니 그윈 주니어는 아버지의 건강 소식을 어머니 알리샤를 통해서 듣고 있습니다. 알리샤는 샌디에이고의 집에서 남편의 싸움을 돕고 있는데 그 둘은 고등학교때부터 연인이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우리 둘(아버지, 본인)의 기둥이에요. 특별할 것도 없죠. 평생동안 그랬으니까요.”
토니 그윈 주니어가 어렸을 때 매일 학교가 끝난 후 아버지와 함께 잭 머피 스타디움에 출근했었습니다. 매일 야구장에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야구 이야기를 했었죠. 뭐 종종 농구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토니 그윈 시니어는 샌디에이고 주립대에서 야구와 농구를 모두 했었고 토니 그윈 주니어는 스스로를 그럭저럭 괜찮은 농구선수라고 생각합니다.
“15살이 되어서야 1:1에서 처음으로 아버지를 이길 수 있었죠.”
요즘 둘의 전화통화에서 야구 이야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고 암과의 싸움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최근 아버지와의 대화는 매우 짧았어요. 아버지나 저나 둘다 말하는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기에 이는 보통일이 아니죠. 최근 우리가 야구에 대해 이야기 했던건 스프링트레이닝때였어요. 요즘은 대부분 그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있는데 이는 평소같지 않아요. 왜냐면 우린 평소에 야구에 대한 이야기만 했었으니까요.”
“이렇게 오랫동안 야구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는건 어려운 일이에요. 거짓말 하지 않을게요. 항상 해왔던거니까요. 심지어 어른이 되어서두요. 심지어 제가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을때엔 아버지가 야구 이야기를 꺼내셨어요. 그런데 아버지는 더 이상 야구 이야기를 하지 않으십니다.”
“아프신거에요. 분명.”
그윈의 가족에게 있어서 야구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 가운데 시즌은 진행중입니다.
아버지가 했던 조언 중 아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건 이거였습니다: 가족을 돌봐라. 야구는 토니 그윈 주니어의 직업이고, 그걸 통해 가족을 돌봅니다. 아들은 매일 뛸 준비가 되어있고, 아버지는 자랑스러울겁니다. 필리즈 구단측에서는 그윈의 개인사정에 대해 알고 있고 언제라도 아버지와 함께 해도 된다고 말해줬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계속 경기에 출장합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있지만, 경기에서 뛸때나 배팅케이지 안에서 조금 마음을 가라앉히죠. 그때가 아니고선 대부분 저는 아버지 생각을 합니다.”
토니 그윈 주니어는 아버지의 미소와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을 유전받았습니다. 심지어 목소리도 비슷하죠. 이렇게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동안에도 희망과 긍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언젠간 아버지가 이 싸움에서 승리하고 다시 샌디에이고 주립대의 코치로 돌아갈 거라고 믿고 있죠.
“그는 싸움꾼이에요. 끝까지 필사적으로 싸울겁니다. 아버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이번 아버지의 날에 토니 그윈 주니어가 집에 전화를 걸어 아빠에게 “사랑해” 라고 말하는덴 어떤 어색함도 없을겁니다. 그리고 다음 아버지의 날까지도 매일같이 저걸 반복할거라는 것도 분명할테구요. 다음 아버지의 날에도, 또 다음 아버지의 날에도…
토니 그윈 주니어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그윈가에게 있어서 순탄한 해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이겨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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