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왕국〉과 〈겨울왕국2〉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흔히 속편은 무리하게 재미를 추구하다 인물의 성격에서 개연성을 잃곤 한다. 그러나 겨울왕국 2는 훌륭히 재미를 구현해냄과 동시에 우리의 주인공인 엘사와 안나의 성격의 개연성을 유지했고 동시에 각 캐릭터 나름대로의 성장까지 이루어냈다.
이 글에서는 〈겨울왕국 1〉과 연결하여 엘사와 안나가 어떠한 개인적 삶과 환경에서 성장했기에, 엘사는 자책을 과하게 하고 책임감이 지나친지 안나는 모두에게 마음의 문을 여는 사람이 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랬던 인물들이 〈겨울왕국 2〉에 이르러 어떠한 성장을 이루었는지도 좇아가고자 한다.
자책하는 엘사: 죄책감의 근원, 나 홀로 방에
엘사의 성격을 단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말은 “나 때문이야”라는 자책과 “내가 해야 해”라는 지나친 책임감이다. 어느 정도냐면, 〈겨울왕국 2〉에서 부모님이 자신의 마법의 근원을 찾다가 돌아가신 것을 알게 되자 그것조차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할 정도다. 〈겨울왕국-올라프의 대모험〉단편에서도, 엘사의 가족만 크리스마스 전통이 없다는 걸 알게 되자 그때도 자신 때문에 전통이 없는 거라며 크게 자책한다.
엘사의 지나친 자책과 책임감의 근원은 바로 그녀가 오랜 시간 갇혀 있어야 했던 방에 있다. 엘사와 안나는 어린 시절 엘사의 마법으로 놀다가 안나가 죽을 뻔한 사고를 겪는다. 엘사의 마법에 하필이면 안나가 맞아 생긴 일이었으므로 어린 엘사가 충분히 자책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네 탓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안나가 한시가 급하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니 경황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치료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조차도 엘사의 부모님은 놀란 엘사의 마음을 보살펴 줄 생각을 하지 못한다. 대신 엘사의 마법이 이 사고의 근원이니 엘사로부터 모든 사람을 격리하는 선택을 한다.
성문은 닫히고 성안의 인력은 모두가 빠져나간다. 엘사는 성안의, 방 안에 갇혀 아무도 만나지 못하게 되고 심지어 가장 소중한 관계인 안나조차도 만날 수 없게 된다.
한 사람이 자신 때문에 누군가가, 그것도 소중한 사람이 죽을 뻔했다는 자책은 큰 상처다. 그것을 어린아이가 경험했다면 더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엘사의 아버지가 방 안에 엘사를 격리했다. 이 결정은 아래와 같은 결과로 이어진다.
- 엘사로 하여금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은 엘사의 마법이라고 생각하도록 방조하였고
-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치유의 기회가 줄었다.
엘사는 성 밖으로 나가 다양한 사람과 관계를 경험하고 상처를 털어놓으면서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들을 기회마저 차단당한 것이다.
엘사의 자책은 지나친 책임감과도 연관된다. 이후 위기에 빠진 아렌델을 구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자 자신이 희생하더라도 혼자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오롯이 혼자이길 택해 행복해진 엘사
이런 엘사라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아니 이러한 의문은 바뀌어야 한다. ‘이러한 엘사라도 행복해져야 한다’는 당위문으로서 말이다.
〈겨울왕국2〉 결말에 이르러 엘사는 행복해진다. 책임감을 던져 버리고 오롯이 혼자이길 택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법의 근원에 대해 늘 고민하고 타인과 다르다고 느꼈으며 어린 시절부터 마법에 의한 책임감과 자책을 느꼈던 엘사. 그녀는 결국 아렌델 왕의 자리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숲의 정령으로서 살아간다. 억지로 인간과 관계맺어야 하지 않으니 자유로운 것도 덤이다.
어린 시절 사람들에게서 격리되어 자책해야 했던 엘사, 방에서 나왔지만 사람들 속에서 늘 외로웠던 엘사. 이제 엘사의 행복을 존중하고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다.
늘 열려 있는 안나: 안나의 마음은 언제나 열린 문
안나의 마음은 언제나 모두에게 열려 있다. 어느 정도냐면 처음 만난 사람과 결혼한다고 할 정도! 안나가 이렇듯 처음 만난 사람을 쉽게 믿고 사람과의 관계에 고파하는 것은 엘사와 마찬가지로 성문이 닫혔던 어린 시절과도 관련된다.
어린 안나는 영문도 모르고 닫힌 문밖에서 늘 기다려야 했다. 아버지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은 채 성문을 걸어 잠궜고, 엘사와의 관계에서도 일방적으로 차단당했다.
엘사가 마법을 부려 함께 놀던 기억이 눈사람 만들며 노는 기억으로 바뀐 안나의 입장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일 수밖에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눈사람 만들고 놀던 언니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만나주지 않으니까 말이다.
심지어 이런 상황은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사람을 귀찮아하던 사람도 사람이 고플 지경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안나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쉽게 마음을 문을 여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안나의 관계 지향성은 훗날 리더로서 훌륭한 자질로 발휘된다. 안나는 엘사에 비해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고민하려 한다.(엘사는 혼자 책임지고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타인의 마음을 살피는 관계지향적 능력은 리더로서 훌륭한 자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임무(The Next Right Thing)를 해내는 영웅, 안나
안나는 <겨울왕국2>에 이르러 과거사 청산을 이뤄내는 영웅이자 아렌델의 여왕으로 성장한다. 〈겨울왕국2〉에서 엘사가 위험에 빠지면서 엘사도, 올라프도 사라진 상황에 처한다. 안나에게 가장 소중한 건 모름지기 관계와 사람인데, 그 모든 것이 사라진 것이다.
슬픔 속에 빠져 있던 안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위해, 그리고 정의를 위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그 일을 해낸다. 「사랑은 열린 문(love is an open door)」을 부르던 철부지 소녀가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을 경험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웅으로 성장하는 순간이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고독했던 엘사는 숲의 정령으로 남고, 아렌델을 사랑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던 안나는 왕의 자리에 오른다. 비록 두 자매가 떨어져서 아쉬웠지만 너무나 다른 두 여성의 성향을 생각할 때 각자의 행복을 위한 나름의 최선이다. 그녀들의 건투를 빈다.
원문: 레인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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