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에 알려드립니다. 장애인 각자의 증세나 그 경중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단순히 비장애인의 반의어로써 장애인을 하나의 상태로 개념화할 수 없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진행될 글이 모든 지체장애인들을 대신할 수는 아니겠지만, 한 사람의 지체장애인으로써 저의 경험을 통해 지체장애인이 대형 페스티벌에서 어떻게 적응하고 즐기는지에 대한 그 체험담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점 참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장애의 정도
등급이 뭔 소용일까 싶지만, 일단 등급으로 따지자면 나는 지체 3급 장애인이다. 키는 약 140cm 정도이고 척추는 약 45도 휘어있다. (수술 전까지는 110도 휘어 있었다.) 왼쪽다리는 마비가 되어 앙상하다. 목발을 짚어 걸으며 왼쪽 다리를 끌고 다닌다. 결과적으로 다리가 4개이고 척추가 휘어 상체가 돌출되어 꼬마들로부터 ‘켄타우로스’ 혹은 키가 작은 ‘난쟁이’로 불리운다.
출발하기 전
6월 14일 토요일,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이하 UMF- 마지막 날, UMF 사무국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초대권을 받아 뜻밖에 처음으로 페스티벌에 참가하게 되었다.
이전에도 밸리,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등 참여하고 싶은 페스티벌들이 많았지만 매번 티켓을 예매하고 나면 ‘장애인이 가도 될까? 혹시 내 방식대로 춤추고 즐기는 것이 웃음거리가 되지는 않을까? 수많은 인파 속에서 위험한 상황을 겪지는 않을까?’하는 맘에 예매를 취소하기를 수 번이였고, 이 때문에 페스티벌에 참가해본 경험이 없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UMF는 여타 록페스티벌들보다 그 규모가 크고 디제잉의 특징상 거대한 클럽이 되어 미친 듯 뛰놀 것이 분명한데 ‘몸이 불편한 내가 가도 되는지, 혹시 갔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이 앞서 초대권을 수령받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같은 이유로 대학교를 다니며 아직 클럽에 가본 적도 없다.
또 밸리 록페스티벌,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자라섬 페스티벌 등의 경우 티켓 예매에 모두 장애인할인 정책이 있었으나, UMF 코리아의 경우에는 티켓 예매조차 장애인할인 정책이 없었다. 위 사전정보들을 토대로 유추해보았을 때 주최사측에서도 장애인 참가자를 크게 고려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고, 통제하기 힘든 수많은 인파가 몰린 광란의 장에서 온전히 살아남기는 더더욱 힘들 것으로 예상했다.
출발
아무 일행도 없이 나 홀로 간 페스티벌이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카메라나 가방 등의 소지품들은 모두 사치였다. 소지품을 들고 뛰기에는 자세가 불안정하여 힘이 금방 들기 때문에, 또 어쩌면 다칠 위험도 있기에 선글라스나 안경 등의 물품은 일체 챙기지 않았고 최소한의 짐만으로 집에서 출발하였다. [모자도 짐이 될 수 있었기에 가져갈 수 없었다.]
입장
오후 1시 30분, 종합운동장에 도착하여 티켓 부스에서 초대권을 수령하고 본격적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입장하기까지의 동선은 상당히 길었다. 아마 많은 인파를 대비하여 일부러 동선을 길게 짠 듯 했다. 신분증, 소지품 검사까지 모든 입장 절차를 다 포함하면 입장까지 약 1시간쯤 소요됐다.
모자도 선글라스도 없이 땡볕에 온종일 나 홀로 서있기란 쉽지 않았다. 당장 다리가 저려왔다. 내심 다른 공연들처럼 장애인 편의 안내가 있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할인 정책을 살펴보면서 대충 예상했었던 상황이기 때문에 크게 당황스럽거나 어렵진 않았다. 단지 조금 힘들었을 뿐이다.
입장을 하고서도 본격적인 스테이지까지 걸어야 할 길이 꽤나 멀었다. 스테이지까지 가는 길목마다 작은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었고, 잠깐 참여만 해도 ‘사은품’을 증정한다는 유혹들이 있었지만, ‘당장 목발 짚기도 힘든데 사은품을 들고 뛸 손은 또 어디 있나’ 싶어 참여를 포기했다.
본격적인 UMF
오후 2시 20분, 오프닝 무대로 Maxqueen의 디제잉을 보러 언더그라운드 스테이지로 갔다. 언더그라운드 스테이지는 경기장 실내를 파티션으로 구획을 나누어 꾸며진 장소였는데 충분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오더라도 즐길만한 환경이라고 느꼈다.
대부분의 인파들이 메인스테이지 혹은 라이브스테이지에 몰려 있기에 이 곳에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는 실내 환경이여서 적당히 시원했다. 오프닝무대여서 그런지 아직은 남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 부끄러웠고 혹시라도 안쓰럽게 쳐다보거나 내 주변을 피할까 하는 마음에 소심하게 구석에 기대어 둠칫둠칫.
오후 3시, 본격적으로 뛰놀기 위해 메인스테이지로 이동. 이제 막 오픈해서 그런지 내가 생각한 것보다 사람이 많지 않았다. 드넓은 메인스테이지를 바라보며 ‘오.. 깔려 죽지는 않겠는데?’라는 안도감이 가장 먼저 들었다. 본격적으로 춤을 춰야지 하는 마음에 대열 중 가장 앞쪽으로 천천히 전진했고 살짝살짝 목발을 짚으며 둠칫둠칫 걸었다.
춤을 추다가 관중들이 손을 번쩍들어 ‘부처핸썸’자세를 할 때 나는 손을 번쩍들면 목발이 기울어 쓰러지기 때문에 대신에 한쪽 목발을 높이 들었다. 손을 들고 방방 뛰어야할 때는 마찬가지로 응용하여 오른쪽 목발만 짚은 채로 왼쪽 목발을 높이 들어 방방 뛰었다. 사실상의 지탱을 오른쪽 다리 혼자서 다 하는 셈인데 정말 힘들었다.
목발을 들고 춤을 추다보니 당장 내 주변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내 주변에 있다가 다칠까봐 걱정을 많이 하는 눈치였다. 어쨌든 나로썬 편했다. 목발을 짚으며 춤을 추다보니 플래시 세례를 정말 많이 받았다. 액션캠, DSLR할 것 없이 카메라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나를 촬영하였다. 주목은 그치지 않았고 외국인 형-사실 형일지 잘 모르겠다.- 무리에서 춤을 출 때면 ‘오 스윗 베이비!’하며 나를 안아 번쩍 들어주거나 목마를 태워줬다.
경비 요원들은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위험하다며 얼른 내리라고 경고했다. 경비 요원들은 나를 마주할 때마다 ‘다칠 텐데 꼭 이쪽에서 춤을 춰야겠어요?’ 바깥 쪽 그늘에서 춤을 추는게 좋을 것 같은데‘라며 경고 아닌 걱정도 많이 했다. 그 배려는 진심으로 이해하지만 그늘에서 혼자 춤춘들 과연 무슨 재미가 있겠나. 마음만은 부대끼며 격렬하게 춤추고 싶은데. 위험할 수도 있겠지만 항상 조심하겠다는 말을 건내며 앞쪽에서 계속 춤을 췄다.
어쩌면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개인적인 감상이라 조심스럽지만, 한국 분들 틈 사이에 춤을 추면 얼른 나를 피해 다른 자리로 이동하기 일쑤였는데 외국인 사이에서 춤을 추면 피하기보다는 나의 눈높이에 맞춰 상체를 굽혀 함께 춤울 췄다. 나를 배려하는 것만큼 당장 나를 피하지 않고 함께 해주는 그 자세가 너무도 감사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레 외국인 무리를 찾아 가게 되었다. 춤을 다 추고 나면 항상 기념촬영을 같이 했다. 뿐만 아니라 한참 춤을 추고 있는 와중에도 내 등을 두드리며 잠시 사진 좀 같이 찍자고 말을 걸어왔던 외국인들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헤어지면서 엄지를 추켜세우며 ‘God bless you!’라고 축복해줬다.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시선이 두려운 마음에 움츠리고 고민했던 시간들이 괜한 고민이 될 만큼, 많은 이들이 적극적이고 호의적이였다.
외국인 형들과 신나게 춤을 추고 헤어질 때의 작별인사 방식은 크게 두가지였다.
첫 번째는 검지 중지와 주먹을 차례로 맞대며 ‘PEACE’를 외치며 그 틈에 그들이 끼고 있는 팔찌를 나에게로 넘겨줬다. 그 뒤로 우리는 만날 때마다 ‘브라더’라고 불렀다. 어떤 이들은 슈퍼에서 사탕팔찌를 사서 잔뜩 끼고 다니며 팔찌 대신 건냈다. 사실상 빈손으로 UMF에 갔다가 같이 춤춘 사람들로부터 하나씩 팔찌를 받다보니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새 팔찌로 오른쪽 팔뚝을 다 채웠다. 다음 페스티벌 참여때부터는 받은만큼 나눌 팔찌를 잔뜩 사가리. 개인적으로 여운이 오래 가는 좋은 작별인사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싸인펜을 주면서 자신의 가슴이나 배부분에 오늘을 기념할 낙서(타투?)를 해달라고 했다. 나는 그들이 천진난만하고 귀엽게 보일 수 있도록 항상 찌찌 주변에 한국말로 ‘강남’이라고 적어주었다. mean is ‘gangnam’ 이라고 말하면 누구나 좋아했다. 나의 낙서때문에 UMF 스테이지 안에 강남스타일 찌찌들이 활보하고 다녔다.
저녁 7-8시, Far East Movement의 공연 쯔음부터 참가자들이 급속도로 늘기 시작했다. 비교적 한산하게 춤출 수 있던 낮과 달리 본격적으로 UMF의 열정적인 현장 분위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때는 조심해야 했기에 최대한 구석에서 춤을 췄다. 그래도 항상 주변에 사람이 있을 만큼 올림픽주경기장 관중들로 가득 차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춤을 계속 춰왔기에 슬슬 목발 때문에 겨드랑이나 손목도 저렸고, 내내 홀로 지탱하던 오른쪽 다리도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결국 잠시 춤을 추다가 인조잔디에 누워 한참 광란의 현장을 구경했다.
춤을 추는 내내 물이나 맥주를 마시고 싶었던 순간이 참 많았는데, 화장실 환경이 굉장히 불편했고 그 줄 또한 너무 길어 수분 섭취를 최대한 삼갔다. 더구나 맥주나 물을 들고 걸을 수도 없었다. 목이 너무 마를 때면 함께 춤을 추던 외국인들의 맥주를 조금씩 받아 마시기는 했다. 결국 참다 못해 나중에 맥주를 한컵 사기는 했지만, 그 자리에서 벌컥벌컥 다 마시고는 움직였다. 마음만은 나도 맥주잔을 들고 둠칫둠칫 여유롭게 춤을 추고 싶었다.
오후 10시, 메인스테이지가 인파로 가득 찼다. 이제는 더 이상 누가 누구를 신경 써줄 상황이 아니였다. 하늘이 캄캄하고 인파가 많아, 당장의 시야확보조차 어려웠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가장 조심할 수 밖에 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DJ도 안보였다. 마냥 DJ를 보고 싶은 마음에 앞쪽으로 천천히 나아가기도 했지만 맨 앞줄이 아닌 이상 이 인파속에서 DJ를 보는건 사실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의 춤 패턴은 굉장히 단조롭고 몇 가지 안되기 때문에 몇 가지 자세로 춤을 추다가 상대방이 슬슬 지루해질 것 같으면 인파 속을 뚫고 이 무리 저 무리를 떠돌아 다니며 춤을 췄다. 마냥 낮처럼 목발을 치켜 세우고 뛰었으면 좀 나았겠지만 이미 겨드랑이고 다리고 온전한 부위가 없었다. 더 이상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였다. 그래도 혼신의 힘을 다해 ‘지하철 막차 11시, 막차 11시. 그때까진 버텨야해’를 되뇌이며 고집을 부리며 인파 속을 버텼다.
그렇게 이리저리 춤을 추며 떠돌다 만난 한 무리 안에서, 수많은 외국인 형들이 ‘요 맨 너 아무것도 안보이지? 잠깐 기다려봐’ 하며 나를 번갈아 가며 목마를 높이 태워줬다. 야광봉과 야광 선글라스를 주며 ‘이거 끼고 손을 번쩍 들어서 몸을 흔들어! 떨어지지 않으니까 나만 믿으라고’ 라고 말해줬고 나는 어깨 위에 올라타서 야광봉을 휘두르며 한참 교통정리 퍼포먼스를 하였다.
그제서야 그토록 보고 싶던 DJ와 관중들의 얼굴이 보였다. 목마를 타지 않았으면 가슴정도의 높이까지밖에 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가 사랑스러웠다. 모두가 나를 위해 환호하고 손짓해주었다. 나를 향한 플래시가 너무 많이 터져 눈이 부실 정도였다. 벅찬 밤이였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과 잊지 못할 기억을 안은 채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니 팔이고 겨드랑이고 다리고 멍이 들고 멀쩡한 곳이 없어 한참을 주무르다 잠이 들었다.
글을 마치며
이번 UMF 페스티벌을 통해 비로소 처음 참여해봤지만, 돌이켜보면 이전에도 페스티벌에 함께하고 싶었던 순간은 무수히 많았다. ‘음악이 좋아서, 올해 라인업이 훌륭해서’도 큰 이유였겠지만, 무엇보다도 나 역시 현장에서 모두와 함께 흥분감을 만끽하고 몸을 부딪히며 밤새 소리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키가 작고 다리가 불편한 내게 있어 대형 페스티벌 참여는 현실적으로 무리라고 생각했다. 나의 신변이 걱정되기보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시선이 더욱 걱정되었고, 혹시라도 ‘몸이 불편한 장애인인데 왜 위험한 여기까지 와서 하필 내 옆자리에 서서 춤을 추고 있는지’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겁이 났다. 그리고 몸이 불편한 내가 남들 앞에서 엉성한 자세로 단조로운 춤을 추는 것도 사실 부끄러웠다. 주변에도 UMF에 가는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그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솔직히 나를 신경쓰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할 것 같아 일부러 혼자서 갔다.
이번 UMF에서의 경험 하나만 믿고 모든 지체장애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함께해라’같은 조언을 함부로 해서는 안되겠지만, 적어도 이것만은 말하고 싶다. 우리의 장애를 부끄러워하거나 미안해하지는 말자. 이는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나의 경험을 빗대어 예를 들면 얼마전에 생전 처음 슬림 V넥 티셔츠를 샀는데 타이즈한 옷을 입고 너무 부끄러워 도저히 입고 다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들처럼 평평하거나 다부진 몸도 아니고, 기형적 자세에 수술자국에 몸이 들쭉날쭉한 나도 이런 옷을 입어도 될까 한참을 고민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이때까지 큰 면티 혹은 카라티를 재단하지 않은 채로 길게 입고 다녔었다.
이번 UMF를 참여하며 느꼈다. ‘아, 내 몸이 부끄러운게 아니구나.’ 목발을 짚고 춤을 춘다는 이유만으로 나에게 인사를 건내고 함께 사진을 찍고 안아주고 업어주는 이들과 온종일 살갗을 부비며 용기를 얻었다.
혹시 이 글을 읽는 장애인이 있다면 당신께 말해주고 싶다. ‘UMF고, 록페스티벌이고, V넥 티셔츠고’ 입고 싶은 것 다 입고 다 즐겨라. 우리의 우려와는 달리 대부분 당신을 혐오하지도, 흉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신있는 결정을 내린 당신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은교에 “너의 젊음이 너의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당신과 나의 장애도 우리의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즐거운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초대해주신 권민 선배님과 현장에서 도와주신 김슬기님, 한지현님 마지막으로 UMF에서 만난 반가운 모든 인연들에 감사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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