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보고서는 총리 후보자의 교회 강연을 토대로 그의 국가관과 가치관을 본 검증관 주관적으로 검증하며 총리 후보의 적격 여부를 개인적으로 판단하고자 하기 위해 작성되었음. 이 감정서는 대외비(飛)인바 얼마든지 날려 보낼 수 있으며 읽은 뒤 자동폭파되는 기능을 갖추지 않았음.
전제
총리 후보자는 교회 신도들을 상대로 ‘간증’이나 ‘설교’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 역사관과 ‘나라와 민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는 바, “일반인이 아닌” 특별한 신도들만을 위한 종교적 행사에서의 발언이라는 변명으로 강연 내용을 부인할 수는 없음.
“나라를 위해서 뭘 기도를 해야 되느냐”는 부탁을 받고 그에 응했다고 본인이 밝히고 있는 바, 그 나라는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이며 즉 총리 후보자로서 그는 강연 내용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밝히고 요구하는 해명에 응해야 할 의무가 존재함. 그거 싫으면 총리 안하면 됨.
주요 내용
“1890년, 그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우리나라에 오실 때입니다.”
서두에서부터 본 검증관 발 걸려 넘어짐. 한국에 기독교 (기독교- Christianity)는 개신교와 가톨릭 모두를 일컫는 이름임) 선교사가 온 건 그로부터 근 100년 전 (주문모 신부, 1794년)의 일임. 가톨릭을 기독교로 인정하지 않는 강퍅함이라면 모르나 기본 사실에서 중대한 오류를 범하고 있음. 신문쟁이치고는 매우 곤란한 오류
“우리 민족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기 위해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뭐, 이 정도 신앙고백적 언사는 본 검증관의 과로를 우려하여 그냥 넘어가기로 함. 본 검증관 역시 기독교인으로서 동의하는 바 있음. 그런데 이런 류의 대목을 함석헌의 섭리론에 비하는 뻘짓에 대해서는 엄중 경고함. 그렇게 따지면 “돈 있는 자는 돈으로 지식 있는 자는 지식으로 노력을 가진 자는 노력으로 참으로 나라을 사랑하고 민주를 사랑하는 전민족이 완전히 대동단결하여 민주주의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는 김일성과 “뭉치면 삽네다 흩어지면 죽습네다.”는 이승만이 아삼육이 됨.
이후 구한말 조선인들이 얼마나 비루했고 왕부터 백성들까지 지지리궁상이었다는 점을 길게 늘어 놓음. 딱히 문제되는 대목은 없음. 문제는 이런 대목에서 서서히 삐져나.
“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우리가 100년 전, 이게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고. 100년 전에 그런 나라였습니다.”
왕을 규탄하고 왕비 욕하고 비숍이다 귀츨라프다 서양 사람들이 혀를 내두른 조선의 나쁜 모습을 든 건 좋은데 은근슬쩍 당시의 조선 전체를 ‘그런 나라’라고 비하하고 있음. 언급했던 바 조선에서는 천주교가 1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약동하고 있었고 농민들이 갑오농민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개혁의 욕구도 충만했으며 왕과 왕비는 한심했는지 모르나 많은 이들이 침략자에 저항하여 일어섰고 평생을 바쳐 싸우게 됨. ‘그런 나라’라는 단순화는 총리 후보자 본인의 무능을 일깨울 따름.
이후 이승만이 옥중에서 썼다는 책 (본 검증관 대한민국 감옥에서 시인들에게 집필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점이 있음을 상기시키고 싶음. 어떻게 된 민국이 제국보다 못했을까) <독립정신>을 극찬하면서 마지막 결론을 읽음.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서 일어나고 썩은 데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904년 이승만은 이렇게 쓸 수 있음. 제국주의에 대한 이해도 없고 그저 강한 군대와 과학과 기술로 부를 일군 서양인들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던 20대 이승만이라면 그럴 수 있음, 그런데 나름 대한민국 주요일간지 주필까지 지내고 일국의 총리를 노리는 사람이 이 글에 감탄하는 풍경은 일종의 엽기이자 블랙 코미디임.
당시 문명국(?) 결코 높은 도덕 수준에 있지 않았음. 이승만이 감옥에 갇혀 있을 무렵 미군은 필리핀에서 수십만을 죽여 없애고 있었고 영국도 그에 지지 않았음. 그 이전에도 그랬음.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부르면서 사람들 죽였음.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생각. 근본주의임. 여기에 대해서는 오늘 교황 성하의 코멘트를 빌려옴.
“아무도 죽이지 않고 누구도 공격하지 않더라도 근본주의는 폭력이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근본주의에 기반한 분쟁은 종교의 가르침과 “모순된다. 신을 빙자한 폭력은 우리 시대에 맞지 않는 것이다. 역사적 관점에서 기독교도 때때로 그런 근본주의의 폭력을 실행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2014년에 1904년에 쓴 철없는 청년의 근본주의적 결론을 갖다가 떠드는 사람이 무슨 총리 후보란 마…. 아아 미안. 검증관 본령을 어긋나고 있음. 다시 돌아감.
하이라이트
최악의 문제 가운데 한 대목이 등장함.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속으로. 근데 저는 아까 서두에 말씀을 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매우 중요한 대목임. 지금 이 사람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라는 신을 한낱 식민사관에 찌든 편협하고 무식한 인물로 전락시킴. 일종의 신성모독. 조선 왕조 500년을 ‘허송세월’로 단칼에 치부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식의 소치.
우선 글밥 먹고 살았던 그는 그 ‘허송세월’에 감사해야 할뿐더러 500년간 있었던 많은 역사적 성과들을 무위로 돌리는 만행임과 동시에 “한국사가 왕조교체 등 제반 사회적·정치적 변동에도 불구하고 사회경제구조에서는 아무런 발전을 이룩하지 못했으며, 특히 근대사회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봉건사회를 결여했다.”는 식민사관의 ‘정체성론’을 그대로 갖다 바른 것임.
“우리가 지금 와서 ‘야,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요.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피 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 가지고 지금 이거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후회할 필요도 없고….”
…운운으로 우리는 못난 민족 아니었다는 식으로 눙치면서 바로 그 뒤에서 뒤통수를 치고 있음.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그런 것은 일제시대 때도 같이…”
본인의 입으로 이사벨라 버드 비숍의 말을 빌려 조선의 문제는 잘못된 정치이지 민중의 게으름과 더러움이 아니라고 해 놓고 게으름 소리는 줄기차게 함. 결국 “500년 동안 허송세월”이라는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함. 뭐 이런 게 주필이었… 아 또 미안 검증관 다혈질임을 양지하시기 바람.
그리고 이 문창극 장로가 이번엔 스스로 교회에 불성실했음을 입증하는 헛발질을 함.
“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 없을 것 같은데, 요즘은 찬송가에 그런 게 없어요. 찬송가, 1930, 40년대의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 삼천리 강산 위에 하나님 명령 받았으니 반도 강산에 일하러 가세”
이거 남궁억이 작곡한 찬송가로 검증관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찬송가에서 빠진 적 없는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임.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찬송가라서 명확히 기억함. 새찬송가로는 580장일 것임. 장로는 고스톱 쳐서 땄는지 훌라 쳐서 땄는지 모르겠지만 이 노래가 없기는 개뿔이 없냐고 묻고 싶음. 혹시 구원파임? 어쨌건 무식은 용서가 되는데 그 다음이 용서가 안됨.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된다, 열심히 일해야 된다, 근면해야 된다… 그런걸 깨우쳐 준거야…….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거야.”
검증관 읽다가 모니터 던져버릴 뻔 했음. 조선 민족 게으르지 않았음, 그건 마르고 닳도록 주워 섬기는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가 경탄하며 입증한 것임. 그저 문창극 장로 본인이나 그 앞에서 아멘하고 있는 고급 승용차 타고 온 기독교인들, 교회 나오는 걸 인맥 쌓기로 알고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하는 예수를 보면 뭐 저런 거렁뱅이가 있냐고 퉤퉤 침뱉을 으리으리한 교회 신도들같은, 조선 사회의 ‘상류층’이 게을렀던 것임.
문창극 장로가 예를 든 ‘긴 손톱’ 역시 일할 필요가 없는 양반들 풍속이었지 조선 농민들 그 손톱 길렀다가는 초저녁에 굶어 죽어야 했을 것임. ‘조센징은 게으르다’는 것은 일본인들이 유포시킨 허상 가운데 하나이며 그 허상을 그대로 읊고 있을 따름임
윤치호와 공산주의
너무 길어지는데….. 그래도 내친 걸음.
문창극 후보자 윤치호 엄청 좋아함. 윤치호는 분명 개화의 선구자였고 천재에 가까운 인물이었음. 그가 “조선 유학생 90프로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조카 윤보선이 문학을 한다고 하자 호통을 친”일을 얘기하고 있는데 윤치호가 바로 다방면에 코를 묻고 공부했지만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행동한 이들을 경멸했으며 그렇게 행동하다가 사람들 다친다고 저주하기나 했던 대표적인 사람이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
윤치호는 공부에는 부지런했으나 실천에는 게을렀던 대표적인 지식인이고 결국 그 총명함으로 자신을 합리화하기 바빴을 뿐인 사람임. 그런데 그의 게으름 통탄을 빌려오는 것도 웃기지만 문창극 후보자 결정적인 실언을 함.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우리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윤치호의 표현을 빌려 왔다고 헛소리하지 말기 바람. 윤치호는 DNA가 뭔지 몰랐음. 즉 이 말의 저작권은 문창극 총리 후보자에게 있으며 이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
이 말은 식민사관의 알파요 오메가요 머리에서 꼬리까지요 고갱이요 정수요 알맹이요 핵심임.
무릇 식민사관은 타율성론 (자립심 부족) 정체성론 (게으름) 사대론 (남한테 신세지고)에 당파성론까지를 주요 축으로 이뤄지는 바, 지금 문창극 총리는 그 방대한 식민사관을 단 한줄의 문장에 압축하는 신묘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것임. 주필 인정. 앞서 주필의 자격을 의심한 것에 심심한 사과를 표함.
갑자기 여기서 난데없는 공산주의가 나오는데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는 윤치호의 말을 빌림. 여기서 또 한 번의 삽질이 나옴.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 하려고 하잖아. 정부가 세금 내라고, 세금 걷어가지고 나는 어떻게든지 놀자는 게 공산주의 아니에요?”
공산주의 국가는 일 안하면 먹지 말라고 함…… 지금 이 사람은 ‘사회복지국가’를 공산국가에 대입시키면서 전 세계의 선진국들을 대거 공산화시키고 있음. 수입의 반을 세금으로 내는 스웨덴 같은 나라는 완전히 빨갱이임. 즉시 국가보안법 상 이적 행위 혐의의 추상같은 추궁이 필요할 듯
“조금만 먹고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조선 버전의 볼셰비즘(공산주의)은 강도 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는 사후명예훼손 혐의 추가.
“우리나라 이조 말기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 놀고 먹는 게 아주 몸에 박혀 있었다는 거에요.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그걸 변화를 시킨 거야.”
정말 더 검증해야 하는지 심각한 회의가 들기 시작. 그래도 이 인간이 정상적으로 보이고 국가관이 건강한 것으로 보임? 선교사들이 변화시켜? 좋은 선교사도 많았지만 지리산 노고단에 가마타고 올라가 별장 짓고 살던 놈들도 있고 사과 훔쳤다고 애 이마빡에 도둑놈 문신 새긴 선교사도 있고 조선 사람 폄하하다가 뺨 맞은 선교사숱함. 도대체 선교사가 이 민족을 변화시켰다는 망상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음.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하 6.25도 하나님 뜻이라는 둥의 얘기에는 그냥 웃겠음. 개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이 따위 인식이 좀 있음. 당시 조선신학교 사태 등으로 기독교계가 분열하는데 그에 대해 하나님이 치신 거라는 둥….. 하지만 문제는 이 대목에서 총리 후보의 게으르고 자립심없는 사대 근성이 그대로 나오고 있다는 사실.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에요, 그때 자동적으로 공산주의 되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안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에게 딱 붙잡아 주셨어요.”
세상에 이렇게 자립심 부족한 자도 있음?
“미국이 6.25사변이 끝나면서 우리와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에요. 사실은.”
아니 이런 있는 집구석에 기대 사는 기생충같은 공산주의자 같으니라고.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기술을 다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앞장을 섰습니다. 우리는 일본만 따라가면 되는 거야. 박정희나 삼성이나 다 일본 따라서 한 거야.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이만큼 컸습니다.”
더 들기조차 싫음.. 도대체 이 사람은 어느 나라 총리 후보자인지 심각한 의문이 부각됨. 이게 국가관이 건전하다고 우기는 사람들의 국가관 또한 심각하게 검증해 봐야겠음 이 이상의 검증은 생략함. 언급한 바 이 총리 후보자는 거울을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한국인 일반에 투영하고 있음.
일종의 자아비판인 그의 강연을 들으면서 드는 생각은 그만큼 게으르고 타율적이며 사대주의적이며 자기 욕심만 많고 손톱도 길고 행동할 생각은 않고 말로 먹고 살았고 권력 가진 이들에 빌붙어 산 사람은 없는 듯 보인다는 것임. 그는 강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 극명하게 묘사하고 투영한 바 그 재주만큼은 경의를 표함. 이만 결혼식에 가야겠음. 이상 보고서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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