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정가제가 시행되기 전에는 서점에서 책을 살 일이 거의 없었다. 대학생이던 때, 내가 샀던 책이 천 권은 넘는데, 거의 중고 책이거나 온라인 서점에서 산 책들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일반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의 책값 차이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기 때문이다.
특히 한 온라인 서점은 통신사 할인으로 최소 50% 이상 할인된 책을 구매할 수 있었고, 적립금까지 합치면 80–90% 할인된 책을 살 수 있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니 서점에 가서 책을 구경하더라도, 제목만 적어놓고 집에 가서 살 수밖에 없었다. 부자가 아닌 마당에야,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서점을 찾는 일도 드물어졌다. 책 구경은 도서관에서 하고 집에서 사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책 구매도 주로 할인된 책 위주로 많이 하다 보니, 온라인 서점에서 같은 책의 여러 번역본이 있다고 했을 때 10% 할인하는 것과 50% 할인하는 것 중 50% 할인하는 걸 고르게 되었으므로, 서점에 가서 책을 찾아볼 이유가 또 사라지는 셈이었다.
물론 어떤 책은 고집스럽게 어떤 번역자나 출판사를 택할 때도 있었지만, 돈도 없는 대학생에게 그 정도의 할인율은 너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지금 사지 않으면 영원히 집을 가질 수 없다고 믿는 패닉 바잉처럼, 90% 할인 이벤트가 열리면 책들을 쓸어 담느라 바빴다.
그래서 처음 도서정가제가 시행된다고 했을 때, 온라인 서점에서 마지막으로 엄청난 할인을 해댔고, 많은 사람이 책을 쓸어 담던 기억이 난다. ‘이동진의 빨간책방’ 같은 당시 유명한 매체에서도, 요즘 책을 수십만 원치씩 사느라 정신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도서정가제가 도입된 뒤로는, 한동안 책을 사지 않았다. 이미 산 책들이 많았기 때문에 읽느라 바쁘기도 했는데, 더 이상 온라인 서점에 별로 들어갈 이유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씩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 골목골목 예쁜 동네서점들, 독립서점들이 생겨나는 걸 보았고, 그런 서점들에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 이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성북동의 작은 서점들에 자주 찾아갔다.
근래에는 일부러라도 주위에 생겨난 작은 서점들에 가서 책을 집어 드는 경우가 많았다. 보통 그런 서점들에서도 5% 정도씩은 할인해주기 마련이기도 했고, 그러면 온라인 서점과 얼마 차이도 나지 않았고, 나름대로 서점 주인들이 해놓은 큐레이션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더군다나 도서정가제 즈음하여 독립출판물이나 1인 출판사도 무척 많이 늘어났는데, 이 작은 출판사들이 가능한 것도 도서정가제와 꽤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안다.
대형출판사와 대형서점들이 공급율을 낮추면서 박리다매식으로 거래를 하고, 그렇게 저렴한 책들을 엄청난 할인율에 제공하면서 출판시장을 장악했을 때는, 도매상 위주로 거래하는 작은 출판사들은 사실 숨통이 트이기 힘들다. 1인 출판사들이 모여 만들어낸 ‘아무튼 시리즈’ 같은 것도 그 덕분에 흥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요즘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고자 하는 정치권의 움직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작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솔직히 도서정가제가 폐지되건 말건 차이는 거의 없다. 오히려 내가 책을 낸 출판사들이 내 책을 60%씩 할인해서 지금보다 몇 배씩 팔아치우면 이득이면 이득이지 손해 볼 건 없다.
그러나 뭐랄까, 동네 곳곳에 뿌리 내려 작은 공연장이자 모임 장소이자 문화공간도 되는 그 독립서점들이 설 자리가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한 명의 문화소비자로서 매우 아쉬운 마음이 클 것 같다. 작은 출판사들이 만들어내는 저 다양한 책들과 그렇게 발굴되는 작가들이 점점 사라지고, 또다시 대형 출판사들만이 출판시장을 장악하고 온통 그런 책밖에 볼 수 없는 시대가 온다면, 다시 책을 사고 싶지 않을 것 같다.
책이라는 것이 단순히 마트에서 1+1으로 파는 과자나 음료수와 같은 상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책을 둘러싼 문화적인 맥락이라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고, 책과 관련된 정책은 그런 맥락을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를 폐지하고, 반값 할인된 책을 사는 세상이 좋은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런 세상에는, 골목골목을 밝혀주던 어느 문화의 공간들과, 작은 출판사에서 찾아내는 빛나는 작가들과, 우리 곁에 닿을 무수히 다양한 글과 사람의 이야기들은 점점 없어질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세상에 살고 싶지는 않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