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OKR』을 읽었다. 매우 훌륭한 책이다. 반도 읽기 전에 계속 읽기만 할 것이 아니라 당장 써먹어야겠다는 욕구가 일었다. 지금이 시도해볼 적기란 생각까지 들었다. 마침 복잡한 사정으로 베이징에서 전원 철수하고, 서울에서 서비스를 키워야 하는 상황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베이징에 왕래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이동도 쉽지 않고, 자가 격리에 재택근무가 겹쳐 동료들이 혼란 속에 있었다.
OKR 적용의 목적
그래서 다 읽기도 전에 일단 시도를 했다. 이 책은 한번 읽고 던져버릴 책도 아니고, 한번 읽었다고 내용을 다 이해할 수도 없다. 그래서, 책에서 받은 영감에 기초해서 실천하고, 피드백에 필요할 때 다시 읽을 생각이다.
OKR의 디테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중요한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했다. 우리 회사의 동료들은 소수지만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이들이 하는 노력이 혼란을 견뎌내고 한 방향으로 향해갈 수 있도록 살피고 조정하는 도구로 OKR를 적용해보기로 했다.
각오는 좋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노트북을 보고 책상에 앉았더니 협업 시스템에 등록된 동료들의 작업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걸 토대로 시작해서는 혼란 자체를 분석하는 꼴이 될 듯했다. 또 다른 사람이 쓴 기록을 쭉 훑어보는 과정에서 상당한 시간을 쓰다가 지칠 수도 있다. 원래 하려던 방향성을 잡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도 들었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습관적으로 회의가 떠올랐지만… ‘그건 안 돼’라는 마음속 울림이 있었다.
그렇게 궁리하다 일단 조용한 곳으로 가서 ‘목표와 나 단 둘이 있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와 나, 단둘이 앉아보자
백지와 펜, 커피를 들고 조용한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진행 중인 일과 머리 속에 담겨진 것들을 종이에 썼다. 책에서 배운 목표(Objective)와 핵심 결과(Key Results)라는 2단 구조로 활용해서 기록했다. 기간은 이달 한달 범위만 다뤘다. 나중에야 늘리겠지만, 나는 뭐든 아기 발걸음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회의를 하거나 이미 기록된 다른 자료를 보는 대신, 목표와 나 둘이서 앉은 효과는 아래와 같다.
-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드러난다.
- 이와 동시에 결과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에 설명하겠지만, 이는 동료들과 대화에서도 드러난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서 진행 중인 일이 빠져있다는 점은 나의 편향에 대한 사실 기록이다.
- 자연스럽게 다루기 쉬운 덩어리로 추려진다. 백지에서 손으로 쓰다 보니 간편해지고, 손이 아프니 장황하게 기록하지 않는다.
여기서 책 내용에 신경 쓴 주안점은 두 가지다.
- 목표(O)는 구호로 쓸 만한 표현으로 다듬는다.
- 핵심결과(KR)는 측정이 가능한 표현으로 다듬는다.
동료들과 1:1 대화에 나서기
그리고 나서 순차적으로 동료들과 1:1 대화에 나섰다. OKR에서도 강조하지만, 나는 첫 프로젝트 관리자를 했던 2008년부터 1:1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익히 알고 있었다.
1:1 대화를 하니 누락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모호한 표현이 고쳐지는 등 쾌속으로 개선된다. 모여서 회의를 하지 않으니 토론 시간을 쓰지 않는다. 실제로 작업하는 사람의 인지와 나의 인지에 대해 대화하고 기록하는 일뿐이다.
게다가 목표와 단 둘이 고민해서 내 생각을 충분히 썼으니, 내 생각에 대해서 말할 필요성도 줄었다. 이미 쓰여 있는 것을 읽어주고, 동료들의 이야기를 들은 뒤 이를 기록하여 최초 기록을 개선하는 식이었다. 작업과 소통이 매우 간결했다. 단점이 있다면 종이에 쓴 내용에 기록이 덧붙여져 나만 알아볼 수 있는 지저분한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동료들과의 대화로 나아진 내용을 기억해 보자. 대략 아래와 같이 나눌 수 있다.
- 아예 빠진 내용이 있고, 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때문에 1:1 대화가 모두 모여서 보는 행위보다 감정적으로 안전하다 하겠다. 상급자를 앞에 두고 하급자가 상급자의 오류를 지적하기 쉽지 않다.
- 말이 안 되는 가정을 실무자가 찾아준다. 실무자가 아닌 관리자라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 유사한 일에 대해 서로 다른 표현을 쓴다는 사실을 경험한다. 자연스러운 관점 차이 학습이다.
- 작업의 개수가 늘어 묶거나 취사선택할 필요가 생긴다.
- 서로가 하는 작업의 연관성이나 충돌을 대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두레이 작업으로 OKR 변경하기
앞서도 말했지만 종이로 썼더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1:1을 거듭할수록 수정해 나가기가 어렵다. 그래서 OKR을 두레이 기록으로 옮겼다. 남아 있는 1:1 대화 횟수만큼 미리 출력했더니 뿌듯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1:1 횟수를 쌓아가는 만큼 회사 OKR이 개선되어 나갔다.
개인 OKR을 회사 OKR에서 분리
1:1을 모두 마친 후에 보니, 시작할 때 추상화 수준을 고려하거나 사전 계획에 따른 것이 아니라서 들쭉날쭉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그걸 정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OKR을 적용하는 목표가 다른 동료가 하는 일과 내 일의 연관 관계를 회사의 목표를 기준으로 다시 보는 것이니 굳이 문구나 표현을 정제할 이유는 없었다. 다만 어떤 핵심 결과Key Results는 함께 하는 일이고, 어떤 핵심 결과는 한 사람이 담당하는 것이기에 이를 구분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먼저 1:1 대화로 걸러진 회사OKR의 KR을 누가 수행하는지 표시했다. 아래 그림을 보면 기호로 담당자를 표기한 예시가 있다.
OKR 협의 과정에서 동료들이 이미 인지하고 있는 내용을 정리했다. 그리고 함께 인식하는 핵심 결과를 지칭하는 표현을 하나의 문구로 확정했다. 더불어 결과 달성 여부에 대해 어떤 지표로 공감할지 정했다. 이 과정에서 동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떻게 평가될 것인지를 고민하고 이해하게 된다.
회사에서 협업 시스템으로 두레이를 쓰고 있는 탓에 이미 두레이 작업으로 등록된 일들이 KR과 관련이 있으면 링크로 연결한다. 아래는 6월 한 달을 기준으로 기록하고 링크를 추가하여 두레이에 기록한 회사 OKR이다.
이와 별개로 개인 작업을 추려서 다시 개인 OKR을 만들었다.
맺음말
OKR 적용 시도는 대성공이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 투자로 동료들이 조금이나마 방향성을 이해하는 것이 눈에 띄었고, 무엇보다 서로가 하는 일에 대한 연관성을 짧은 대화 과정에서 이해했다. 신기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뒤이어 회고를 하면서 배운 부분도 공유할 만한데, 그것은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끝으로 훌륭한 책을 써준 저자 존 도어에게 감사를 표하는 의미로 책 표지를 올린다.
원문: Pop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