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 의사협회의 파업이 길어지면서 한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흔적을 남긴다. 한쪽에는 이 시간에도 응당 받아야 할 치료를 받지 못해 고통받는 환자들이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국 의료계의 현실과 개선 방안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들이 나온다.
여러 논의를 지켜보다가 한국 의료수가에 상당한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료수가는 원래 계산하기가 좀 까다롭다. 그런데 일반 대중뿐 아니라 당사자인 의사들도 잘못 아는 분이 많아서 간략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의료수가란 무엇인가
의료수가란 어떤 의료 처치를 받은 환자와 그 환자가 가입된 건강보험공단이 의료서비스 제공자에게 제공하는 비용을 말한다. 현행법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 자문 및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라는 곳에서 결정한다. 이 기구는 위원장(복지부 차관), 건강보험 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 8명, 의료 공급자를 대표하는 위원 8명, 전문가로 구성된 공익위원 8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다.
의료 수가를 그냥 눈대중으로 올리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계산식이 있다. 우선 진료비용, 의사 업무량, 위험도 등 세가지 요소로 행위의 가치를 점수로 환산한 ‘상대가치점수(resource based relative value scale, RBRVS)’라는 게 계산식의 한 축이다. 이건 그냥 전문연구기관에서 조사해서 답을 낸 다음, 보건복지부장관이 고시한다. 협의의 대상이 아니다.
두 번째 축은 종별가산율이다. 의료행위가 있었던 요양기관이 상급종합병원(30%)이냐, 종합병원(25%)이냐, 병원(20%)이냐, 의원(15%)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가중치를 적용한다. 마지막 세 번째 축이 상대가치점수의 점수 당 단가를 의미하는 ‘환산지수’다. 환산지수는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 매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각 의료 공급자 대표단체들이 환산지수를 결정하기 위해 협상을 벌인다. ‘의료수가가 몇 % 인상됐다’ 했을 때는 이 환산지수의 상승을 말하는 거다. 의료수가 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환산지수는 지표 도입 초기인 2001년부터 2007년까지는 의료기관의 원가 보전과 경영상의 수지를 맞춰줄 수 있는 수준으로 정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는 물가, 경제성장률, 최저임금 인상률 등 거시적인 지표들을 감안해서 이전보다 좀 더 복합적인 고려를 통해 결정한다.
‘적정 의료수가’ 정하려면 의사 인건비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최근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정책이 시작되면서 의료계가 ‘적정수가’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의료 소비자에게 높은 가격을 책정했던 비급여 항목들이 문재인 케어 때문에 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으로 편입되면서 병·의원의 수입 감소가 우려되니, 그만큼 적정한 수가 인상을 해달라는 얘기다.
의사들이 말한 ‘적정 수가’라는 개념이 나오기 위해서는 먼저 의료행위의 원가가 존재해야 한다. 의료원가는 의료행위에 들어가는 비용을 의미하는데 크게 인건비, 재료비, 관리운영비로 구분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인건비는 전체 의료원가의 44.3%를 차지한다. 그리고 이 인건비의 상당 부분은 의사 인건비다.
그러니까 의사 인건비의 원가율을 높게 인정하면 적정 수가가 올라가고, 의사 인건비의 원가율을 낮게 책정하면 적정 수가가 내려가는 구조라는 얘기다. ‘2020년도 유형별 환산지수 연구’라는 보고서를 작성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신현웅 박사는 “현재와 같이 의사 인건비가 수입이 되면서, 비용(원가)으로 처리되는 구조에서는 인건비(수입)가 증가할수록 원가가 높아지는 현상이 발생한다”면서 “적정수가 산정을 위해서는 실질 인건비를 원가계산에 반영해 주는 것이 아닌, 사회적으로 인정 가능한 적정 의사 인건비 수준을 산정하는 것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상황이다”라고 썼다.
의사들이 말하는 ‘적정 수가’를 정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인건비를 얼마로 책정할지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반근로자-의사 임금 격차, OECD 평균보다 2배 높다
신현웅 박사는 이 보고서에서 의사의 적정 인건비를 도출하기 위해 여러 비교 분석을 제시한다. OECD의 보건의료통계를 이용한 고용 전문의 인건비 비교가 그중 하나다.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의 고용전문의 평균 인건비는 2016년 기준 109,282US$PPP다. 한국은 212,792 US$PPP인데, OECD 내에서 한국과 1인당 GDP가 비슷한 수준인 이스라엘과 스페인의 고용 전문의 평균 인건비는 각각 147,728US$PPP,
97,906US$PPP로 나타났다. 1인당 GDP 대비 고용전문의 보수수준은 우리나라가 5.7배로 칠레(6.6배) 다음으로 높고, 터키(4.2배), 네덜란드(3.7배) 순이었다. OECD 평균은 2.9배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자료는 OECD 국가의 일반근로자 평균임금과 고용 전문의의 인건비를 대조한 것이었다. 첨부한 표를 보면 OECD 국가들의 의사 인건비 대비 일반근로자 인건비 격차는 2016년 기준 2.75배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은 고용 전문의의 인건비가 일반근로자 평균임금보다 5.45배 많았다. 국제적으로 비교했을 때 한국의 의사들은 지금도 상당히 높은 수준의 인건비를 받는다는 얘기다.
나 자신도 그렇지만 내 주변의 지인들도 모두 의사들이 저수가에 시달리고, 또 수가를 지금보다 높여줄 필요가 있다는 데 동의하는 편이다. 의료원가가 얼마인지 알아서 지금 수가 수준이 낮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의사들이 의료면허를 취득하고 직업 활동을 하기 위해 상당히 오랜 기간 비싼 학비를 내고 수련에 매진한다는 사실을 직접 보기도 하고, 또 들어서 알기에 그들에게 좀 더 많은 보상이 돌아가는 것을 찬성한다는 것이다. 생명을 다루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일종의 경외감도 작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지금처럼 국민 건강권을 볼모로 하는 진료 거부가 길어지면 이런 사회 분위기는 점점 옅어질 것이다. 지난 8월 2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의협이 주도하는 이번 총파업에 대해 정부가 강제로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린 것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전체의 51%를 차지했다.
따지고 보면 의사라는 이유로 일반 근로자보다 평균 5배가 넘는 임금을 받아야 할 당위적인 이유는 없다. 한국 사회가 대체적으로 용인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전문가를 존중해달라’는 파업 의사들의 요구처럼 우리 사회는 의사들에게 OECD 기준보다 2배 높은 월급을 인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보다 높은 수준의 적정수가를 염원하는 의사들이 굳이 지금 부족한 명분으로 파업 기간을 늘리고 의사들에게 우호적인 국민들을 자극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 글은 ‘수가 인상과 의사 월급은 관계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분들 때문에 썼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관계가 있다. 부디 빨리 파업이 종료되고 코로나19도 잠잠해졌으면 좋겠다.
원문: 김동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