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같은 실화
19살 부푼 꿈을 안고 대학에 입학했다. 홈스쿨링 교육 후, 입학인지라 그녀는 더욱 설레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지 두 주가 지나지 않아, 귀가길에 학교 동료로 부터 강간을 당하게 된다.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나고 자라, 기독교 대학에 입학한 그녀는 자신이 결혼전 섹스를 하게 되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혼전순결을 매우 중요한 종교적 의무로 교육받았는 지라, 대학 첫 학기를 죄책감과 수치심에 시달리며 보내야 했다.
한 학기를 마니고 나서야 그녀는 어렵사리 상담실로 발걸음 할 수 있었다. 그녀를 기다리고 있던 상담원은 근 30년간 학장으로 일해온 짐 버그 교수였다. 짐 버그 교수는 학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간 당할 때, 하느님은 어디에 계셨는지, 왜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는지, 대체 이 사건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버그 교수가 자신이 부모님께 이 사건을 알릴 수 있도록 도와주길 바랬고, 어쩌면 경찰을 불러 문제를 해결 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버그 교수는 그녀의 얘길 듣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혹시 그 동안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거나 한적 있니? 강간 당한 그 날, 술 먹거나 담배를 피진 않았어?”
그리곤 이 끔찍한 강간 사건엔 사실 영적인 원인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모든 죄악은 죄를 지었기 때문에 생기기 마련이야. 너의 삶속의 어떤 죄가 그 사건을 있게 한거야. 우리가 그 죄가 뭔지 찾아야 해.”
이 여성의 이름은 케이티 랜드리, 그리고 이 이야기는 실화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믿음의 요새
이런 끔찍한 일을 겪은 사람이 케이티 한명만 있는게 아니었다. 밥존스 캠퍼스에서 자란 에린은 목사가 되기 위해 목회상담 훈련을 받던 존에게 강간을 당한다. 그녀 역시 학내 상담실을 찾아갔지만, 돌아온 대답은 “그날 입은 너의 복장에 문제가 있진 않았냐”는 질문이었다.
그녀가 다녔던 이 대학은 밥 존스 대학교로 미국에선 아주 유명한 보수 기독교 학교이다. 유치원부터 대학원 까지의 과정을 갖춘 거대 사학으로, 근본주의 신앙에 입각한 엄격한 준칙들로 유명하다. TV를 보거나, 손을 잡거나, 현대음악을 듣거나 다른 인종간의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 2000년 까지 학칙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엄격한 기독교 가정의 부모들은 이 학교의 병원에서 아이를 출산하여 유치원 부터 대학까지 이곳에서 교육을 시킨다. 따라서 이 거대한 기독교 사학 커뮤니티는 폐쇠적이고 배타적인 문화를 오랫동안 준수해왔다. 이곳은 레이건, 뷰캐넌, 조지 부시가 선거 연설을 했을 정도로, 미국의 정치적,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유명한 학교다.
이 학교에 붙여진 별명이 바로 “믿음의 요새”다. 케이티와 에린은 “믿음의 요새” 안으로 들어갔고, 고통당했다.
이런 사건들이 사회적 문제로 이슈화 된 것은 2012년 미국 ABC 뉴스에서 티나 앤더슨의 인터뷰가 방영되고 나서였다. 15살에 교회 집사에게 강간당한 그녀는, 임신까지 하게 된다.
해당 교회의 목사를 찾아가 도움을 구했지만, 펠프스 목사는 오히려 그녀를 비난했다. 구약 시대였다면 넌 돌에 맞아 죽어야 했다는 모욕적인 말까지 들어야 했다.
티나는 예배 시간 교인들 앞에서 결혼 전 다른 남자와 섹스를 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도록 강요 받았고, 결국 그렇게 하였다.
당시 펠프스 목사는 밥존스 대학 출신으로 모교 이사회의 이사였다. 방송 이후 밥존스 대학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고, 이 대학 그리고 관련 교회의 성범죄 피해자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기독교 기관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의 공통된 패턴
나만의 느낌일까?
태평양 건너편에 있는 나라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보즈는 전 플로리다 성범죄 전담 검사로, 밥존스대학 사건을 비롯해 교회와 신학교, 선교단체에서 벌어지는 성범죄 사건들을 다뤄왔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기독교 기관에서 벌어지는 성범죄에는 몇가지 공통된 패턴이 존재한다.
첫째, 목회자나 혹은 기관의 리더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리더에 대해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둘째, 성범죄를 피해자들 탓으로 돌린다.
셋째, 막강한 권력을 가진 남성 지도자들에 의해 주로 발생한다.
넷째, 성서를 가지고 위의 세가지를 정당화 하는 데, 이용한다.
성범죄는 폐쇄적이고, 수직적이며, 절대적 순종이 강요되는 공간 일 수록 쉽게 발생하고 은폐된다. 이는 구조적 문제다. 거룩하게 성별되어,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 윤리들이 강요되는 종교집단에서 빈번하게 성범죄가 발생하는 이유다.
보즈에 따르면 거의 대부분 목사들은 성범죄자들을 옹호하기 위해 법정에 나온다. 그들은 성범죄로 고소당한 이들의 옆에 앉는다. 피해자들을 돕기 보단 성범죄로 고소 당한 이들의 편에 선다.
“교회에서 어떤 소녀들이 성추행을 당했어요. 아버지가 목사를 찾아갑니다. 그럼 목사는 이렇게 말하죠. ‘들어보세요, 가해자도 충분히 회개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봐서라도 그를 품는게 어떻겠습니까, 이 일에 대해서 깊이 회개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경찰에 신고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
보즈가 자주 듣는 일화다. 그는 이런 주장이야 말로 성범죄에 대한 매우 부적절한 반응이라고 비판한다.
왜 기독교는 성범죄에 취약한가?
미국 개신교회에서 벌어지는 이런 성범죄 사건들은 리포터 겸 작가인 캐서린 조이스에 의해 폭로되었고, 이 폭로로 개신교 교계는 뒤흔들었다.
과거 지미 스웨거트라고 하는 유명한 대중 설교가가 있었다. 그를 비롯한 유명 설교가가 횡령, 성추문에 연루되었을때, 많은 평론가들이 이를 보수 기독교의 몰락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결과는 평론가들의 예상과는 달랐다.
캐시 루디 교수의 해석에 따르면, 이 사건은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도덕적 경계를 분명히 재설정하고, 단속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청렴한 신앙인들도 죄를 지을 수 있단 걸 상기시켜 주었다. 죄를 지은 스웨거트를 포용함으로 우파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삶의 양식을 명확하게 규정지을 수 있었다. 회개한 자에 대한 포용, 이것은 우파 기독교인의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는 특정 요인이 되었다.
죄인이었거나, 간통했거나, 동성애자였거나, 페미니스트였다고 고백하며 회개를 촉구하는 이들은 용서 받았다.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성범죄를 저지르고 또 회개하는 이들은 용서받았지만, 죄의 고백이나 회개 없이 동성애자로 그리고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이들은 용서할수 없었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목회자들의 성범죄와 은폐 그리고 이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추종자들의 모습은 미국에서 벌어지는 이 문제들과 너무나도 닮아있다.
보즈의 지적처럼 성범죄는 강력한 영적 권위를 가진 이들에 의해, 폐쇄된 공간에서, 절대적 순종을 강요하며, 또 그것이 성서적으로 합리화 되며 자행되고, 은폐된다.
또한 캐시 루디의 해석 처럼, 만일 각종 범죄 행위가 드러난다 해도 “회개합니다” 한 마디면 교인들로 부터 면죄부를 받고, 추종자들로 부터 변함없는 인기와 지지를 받게된다. 보수적인 미국, 한국 교인들은 동성애자 혹은 페미니스트, 교회 비판자들은 용서할수 없지만, 성범죄 목회자들은 수 없이 죄를 짓고 또 다시 회개하면 언제든 용서한다.
교회, 선교단체, 신학교 등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단순히 개개인의 악한 인성 뿐 아니라 구조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가해자에 대한 마땅한 치리와 함께 수평적 권력구조와 내부 비판에 대한 수용, 목사 우상화와 영적 계급주의에 대한 신학적 거부가 수반되어야 악의 사슬을 근본적으로 끊어낼수 있다.
절대순종, 우상화된 목사, 엄격하고 보수적인 성적 규율, 수직적 권력구조, 성서를 통한 범죄의 합리화.. 믿음의 요새는 과연 미국에만 존재 하는가?
맹신으로 무장한 믿음의 요새는 성범죄 사각지대다.
원문: 홍신해만의 블로그
<참고자료>
Next christian sex abuse scandal / Protestant church faces new sex abuse / 캐시루디, 박광호 옮김. 섹스 앤더 처치. 서울: 한울 아카데미,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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