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이라는 이름을 들은 건 오래 되었다. 중앙일보에 종종 등장하던 머리숱 없는 남자의 캐리커처로 그 얼굴도 익히 안다. 그의 우익적 성향이야 헌법이 보장하는 사상의 자유고 그에 따라 자신의 필력으로 드러내는 것이야 표현의 자유일 터, 세상을 ‘개조’하겠다는 대통령의 총리로서는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그가 쓴 글을 놓고 전직 대통령을 모욕했네 어쩌네 하는 건 낙마 사유에 걸맞지 않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KBS의 단독 보도 (우리 KBS가 달라졌어요?) 를 보고는 실로 입이 벌어지고 말았다. 저건 이완용의 현신이다. 경술국치 때 총리대신으로서 나라를 일본과 합치는데 그 도장을 찍은 바로 그 인간이 다시 한 번 사람의 가죽을 쓰고 우리 앞에 설 줄이야 뉘 알았더란 말이냐.
독립협회장에서 친러파로, 또 친일파로 변절한 이완용
1897년 11월 독립문 낙성식 때 가장 빛난 사람은 다름아닌 이완용이었다. 초대 독립협회장으로서 축하 연설을 했고 독립문 상단의 ‘독립문’ 글씨는 명필로 이름난 그의 것이었다. 어려서부 터 신동으로 소문이 자자했으며 여색을 멀리하고 한학과 서예에 밝은 반듯한 선비로 자라난 그는 궁벽진 왕국에서 보기 드문 인재라 할 만했다.
외교관으로 미국에 나가 국제 감각을 익혔고, 넉 달 정도의 학부대신 재임기간 성균관을 개편하고, 소학교령과 한성사범학교 규칙을 공포하여 우리 교육사에 확연한 자취를 남길 만큼 행정 능력도 있었다.
그는 미국 주재 외교관을 지냈고 미국에 각별한 호의를 드러냈으나 을미사변 후에는 친러파로 변신하여 아관파천의 주역이 됐다. 적어도 이때의 이완용은 일본과 대척점에 서 있었다. 하지만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퇴한 뒤에는 친일파에 합류한다. 그것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한 판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맑은 덕과 중한 물망의 소유자“이자 “대한의 몇 안되는 명신”으로서 그는 대한제국의 ‘국익’을 확보하는 노력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의 조카가 남긴 그의 일대기 ‘일당기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당시 미국과의 교제가 점차 긴요한 까닭에 신설된 육영공원에 입학했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갑오경장 후 을미년에는 아관파천 사건으로 노당- 친러파의 호칭을 얻었고, 그 후 러일전쟁이 끝날 때 전환하여 현재의 일파-친일파 칭호를 얻었다. 이는 때에 따라 적당함을 따르는 것일 뿐 다른 길이 없다. 무릇 천도(天道)에 춘하추동이 있으니 이를 변역(變易)이라 한다. 인사(人事)에 동서남북이 있으니 이것 역시 변역이라 한다. 천도, 인사가 때에 따라 변역하지 않으면 실리를 잃고 끝내 성취하는 바가 없게 될 것이다.”
“적당함을 따르는 것일 뿐 다른 길이 없다.” 그랬다. 그는 항상 ‘합리적’으로 생각하고자 애썼고 ‘실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고 ‘적당함’을 추구했다. 그리고 결국 그와 같은 합리적인 사고와 실리의 추구는 한 나라를 없애 버린다.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에 기대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었고, 약한 나라가 끝내 힘을 얻지 못하면 강한 나라에게 굴복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고, 그것을 막겠다고 쓸데없는 피를 흘리는 일은 지극히 불필요한 낭비에 불과했던 것이다.
망해가는 나라를 판 이완용, 살아있는 나라를 죽인 문창극
그는 독립문 건립 기념식에서 열변을 토한다. “조선이 독립을 하면 미국처럼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해치려고 하면 구라파의 폴란드라는 나라처럼 남의 종이 될 것이다. 세계사에서 두 본보기가 있는데, 미국처럼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나 폴란드 같이 망하는 것 모두가 사람 하기에 달려 있다.” 고 말이다.
언뜻 당연한 말 같지만 그 안에는 “만약 제대로 못하면 남의 종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이 숨어 있었고, 그는 결코 그 종됨을 거부하여 목숨을 걸 생각이 없었다. 사세부득이할 경우 ‘합리적 판단’을 통해 강자의 편에 붙는 것은 그 평생의 습관이었고 그는 그대로 행동한다.
그는 세상에서 처신하기 힘든 처지 세 가지를 얘기한 바 있다. 파산한 회사의 청산인, 빈궁한 가정의 주부, 그리고 쇠약한 국가의 재상의 처지가 그것이다. 자신이 그만큼 괴로웠다는 투의 이야기지만 그 셋은 ‘사람이 하기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비열한 노릇의 주역이 되기도 한다. 회사를 돌보지 않고 자기 재산만 빼돌리려는 청산인과 애새끼들 굶어 죽어가는데 샛서방 코빼기만 쳐다보는 주부와 쇠약한 국가로 무슨 일을 하겠는가고 지레 포기하고 제 살길 찾는 재상은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한 이들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완용이 그였다.
그리고 오늘…. 문창극이 바로 그 현신이다.
아니 이완용이 보면 노호를 터뜨릴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망해 가는 나라의 총리도 아니고 그래도 해방된지 70년에 세계에서 열 몇째는 간다는 나라의 총리 후보가 자기네 나라의 국민 DNA에 게으름이 박혀 있고 식민지 전락은 자신이 섬기는 신의 뜻이었고 세상에 분단과 전쟁 또한 미국을 붙잡으라는 신의 섭리였다는 개수작을 보면서 이완용도 이렇게 외칠 것이다. “이 상놈의 자식아. 나는 망해가는 나라를 팔았지만 너는 살아있는 나라를 죽이는구나.”
문창극 또 씹어 주마. 일해야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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