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밤, 민주당 전당대회에 오바마가 등장해서 조 바이든-카말라 해리스 지지 연설을 했다. 아니, 반(反)트럼프 연설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원래 미국의 전직 대통령들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하지 않는 게 예의다. 오바마도 처음에는 그걸 잘 지켰다. 하지만 상황은 갈수록 심각해졌고, 이제 그런 관례를 에티켓이라고 지킨다는 것이 무책임한 행동이 될 수준이 되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트럼프 비판에 입을 열었고, 어제가 말하자면 최고 수준의 포문을 연 거다.
뉴욕타임스 기자의 표현을 빌자면, 트럼프를 가장 분노하게 한 연설이었다. 정말 트럼프가 오바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깊숙이 찌르는 표현을 골라서 사용했다.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는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오바마 연설 중에 트럼프가 대문자(all caps)로 가득한 트웟을 쏟아낸 거다. 분노가 폭발했다. 무슨 말을 했길래 그랬을까?
트럼프가 대통령에 출마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는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트럼프는 그 언저리에 오바마가 미국 시민이 아니라는 음모론자들의 말을 가져다 퍼뜨리는 일을 해오고 있었다. 케냐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거다.
그가 그 음모를 정말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코로나19를 비롯해 많은 것들이 그에게는 도구일 뿐이니까. 그런 그가 백악관출입기자단 만찬에 초대를 받아 앉아있었고, 오바마는 관례대로 농담을 준비해서 앞에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케냐 출생설”을 가지고 신나게 농담을 했다.
그리고 당연히 트럼프를 향해서도 농담을 내리꽂았다. “물론 도널드의 경험과 역량은 모두가 알고 있다”면서 “리얼리티 쇼에서 너무나 훌륭한 결정을 내린다”며 그를 가지고 놀았다. 한 마디로 ‘리얼리티 쇼나 하는 인간‘이라며 트럼프에게 제자리를 찾아준 거다.
그럼 어젯밤 민주당 전당대회 때 오바마는 트럼프를 두고 뭐라고 했을까? “트럼프는 대통령직을 자신이 그렇게 갈구하는 관심을 얻기 위한 리얼리티 쇼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대통령직을 수행할 만큼 자라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럴 능력이 되지 못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라고 한 거다.
(Trump has shown) no interest in treating the presidency as anything but one more reality show that he can use to get the attention he craves. (He) hasn’t grown into the job because he can’t.
“너는 리얼리티 쇼나 하라고 내가 2011년에 말하지 않았느냐”는 말을 한 셈이다. 거기에 “너는 내가 한 직무를 할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모욕까지 담아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포문을 열면 이렇게 치명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