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정부에서 임대차 3법을 통과시켰던 지난 7월 31일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자신이 경험했던 외국(미국과 호주)의 경우 계약갱신이 원칙이며 세입자가 임대료를 계속 지급하는 한 임대인이 갱신을 거절할 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나가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덧붙여 ‘자신이 알기로는 거의 모든 선진국이 그러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에서, 특히 그중에서도 임차인(세입자)의 권한이 가장 보장받는 캘리포니아에서도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찾아보니 미국 외의 선진국에서도 일부 국가에서만 한정된 횟수에 한해 미리 정해진 조건에 맞는 경우 자동적으로 재계약이 된다.
2.
캘리포니아의 주거용 부동산의 임대 계약은 임대인과 임차인이 동의한 임대 기간을 계약서에 명시하게 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1년 계약이 많으며, 계약 기간 만료 후 별도의 조치가 없으면 월별 계약(month-to-month)으로 바뀐다는 조항이 포함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 기간 만료 이후에 재계약을 하거나 계약 만료에 의한 퇴거를 요청하지 않으면 계약은 1년 계약에서 1개월짜리 계약으로 자동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월별 계약 기간에는 임대인이나 임차인이 서로 약속한 기간 (보통 1개월)을 두고 계약 해지를 상대방에 알림으로 계약이 끝나게 된다.
3.
물론 임차인이 임대료를 내지 않거나 계약 해지 통보를 받고도 집을 나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이렇게 임차인이 불법 점유를 하면 임대인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법원에서 강제 퇴거 명령을 받아 경찰을 통해 임차인을 합법적으로 퇴거를 시킬 수 있다. 이러한 퇴거(eviction) 명령 절차는 주에 따라 다른데 2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걸린다.
현재 캘리포니아는 코비드 바이러스 확산으로 인한 경제 위축으로 임대료를 내지 못 내는 임차인이 늘어나자 3월부터 강제 퇴거를 금지한다. 하지만 이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임대료를 받지 못하는 임대인들의 불만도 늘어나 9월에 끝날 것으로 예상된다.
4.
참고로 캘리포니아는 올해부터 1년 이내에 임대료를 물가 인상률 5% (최대 10%) 이상 인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임대료 인상 제한법은 계약 시점 기준으로 15년 이상 된 건물에만 해당하며 15년 이내의 신축 건물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임차인의 권리가 가장 보호된다는 캘리포니아에서도 물가 인상률에 따라 연간 최대 10%까지 올리는 것은 가능하고, 계약 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계약을 맺을 때는 새 임차인에게 원하는 임대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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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법이 실제로 임차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여러 의견이 있다. 이러한 제한 조치의 결과를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있는데 바로 1994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추가로 실시된 4가구의 이하의 소규모 임대 건물에 대한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법의 시행에 따른 결과이다.
2017년에 보고된 스탠퍼드대학 연구진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이 조치는 단기적으로는 기존의 임차인들의 거주 유지를 향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임대인들이 임대를 포기하고 수리해 매물로 내놓거나 건물 전체를 재개발하는 바람에 규제 대상 임대용 주택의 30%, 샌프란시스코 전체 임대물의 15%가량이 임대 시장에서 사라져 임대용 주택의 부족 현상을 심화시켰으며 이러한 임대용 주택의 공급 감소는 임대료도 전체적으로 7% 정도 인상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6.
한편 샌프란시스코에서 발생하는 범죄의 80%가 일어나고, 미국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노숙자가 길거리에 즐비한 텐더로인(Tenderloin) 지역은 원래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 같은 유명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클럽과 고급 호텔 등이 즐비한 샌프란시스코 최고의 유흥가이며 문화 중심지였다. 이 지역에 위치했던 영화와 음반 산업이 몰락하고 시에서 유흥가를 단속하기 시작하며 방문자가 줄어들었고 손님을 잃은 많은 호텔이 저가의 장기 임대로 변경을 했다.
이후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는 법안이 실시되자 싼 임대료를 받아야 하는 건물주들은 건물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건물은 점점 낡고 부실해졌고, 또한 이 지역에 고층 아파트 개발을 막기 위한 고도 제한법이 시민단체들의 주도로 통과되자 건설회사들은 수익을 낼 수 없어 개발하는 것을 포기했다. 결국 이 지역은 점점 슬럼화했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여행 가이드북에서도 ‘대낮에도 절대 가면 안 되는 위험한 곳’이라고 소개한다.
7.
1989년에 헤리티지 재단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도 비슷한 현상을 보고한다. 미국의 50개 도시의 노숙자 문제를 비교 조사한 보고서 「미국의 노숙자: 임대료 통제의 피해자(America’s Homeless: Victims of Rent Control)」에 따르면 임대료 인상 제한(rent control)을 실시하는 도시들은 그렇지 않은 도시들에 비해 단위 인구당 노숙자 숫자가 높게 나타났다.
그 이유로 임대료를 제한하는 경우 임대 공급이 줄어 공실률이 낮아지고 노숙자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임대료 제한 외에 실업률, 빈곤층, 공공주택의 공급 여부, 인구의 증가, 도시의 크기 등 많은 변수들을 함께 분석했으나 노숙자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은 임대료 인상 제한이었다고 한다.
8.
워싱턴포스트지에서 인용한 2007년부터 2018년까지의 미국의 주택도시개발부 (HUD)의 자료를 보면 미국에서 보수 성향의 공화당을 지지하는 주의 노숙자 숫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데 반해 진보 성향의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에서는 숫자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트럼프는 노숙자 문제가 미국 연방의 문제가 아닌 민주당이 우세한 주들의 잘못된 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하며 ‘공손히 부탁(politely ask)’하면 연방에서 관여해 민주당에 의해 제대로 관리되지 못한 그 주들을 다시 되돌려 놓겠다(make those poorly run Democratic cites great again!)고 트윗했다.
9.
실제로 미국에서 임차인/세입자 보호가 가장 강력한 캘리포니아에 집 없는 노숙자가 가장 많다. 임대 수요는 많은데 임대료 인상 제한, 고도 제한을 통한 개발 제한, 강제 퇴거 제한 등으로 임대업을 하게 힘들게 만들어 충분한 공급이 안 되니 임대 주택이 부족하고 결국 최하위층은 길거리로 내몰리는 것이다.
10.
그나마 다행인 것은 코비드 바이러스로 하이테크 기업들의 재택근무가 늘어나면서 임대료가 비싼 샌프란시스코나 실리콘밸리를 떠나 시 외곽으로 옮기는 임차인이 늘어나면서 렌트비가 급격히 하락 중이다. 전년 대비해 에어비앤비, 트위터, 우버 본사가 위치한 샌프란시스코는 12%, 구글이 있는 마운틴뷰와 애플이 있는 쿠퍼티노는 15%, 어도비, 시스코가 있는 산호세는 8%가 내렸다. 애플과 구글 등 회사들이 내년 상반기까지 재택근무를 연장하는 것으로 이미 발표를 했기 때문에 렌트비는 더 내려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