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월세에 살고 있다.
- 윤준병 민주당 의원
저도 임차인입니다.
- 윤희숙 통합당 의원
어차피 전세 시대는 갔다.
- 박근혜 전 대통령
임대차 3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집을 둘러싼 정치인들의 말이 연일 화제가 되었습니다. 윤준병 민주당 의원은 월세 산다고 했다가 반전세임이 드러났고, 윤희숙 의원은 주택 소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전세 공방이 나오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6년에 했던 “어차피 전세시대는 갔다”라는 발언도 재조명을 받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 월세와 전세를 전전하며 임차인으로 살아오다가 대출로 집을 장만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집에 관해서는 각자 할 말이 참 많습니다. 정치인들의 말에 공감하기도 하고, 현실성이 없다며 불만을 품기도 합니다. 미국과 서울, 제주에서 직접 겪은 임차인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과연 임대차 3법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전세가 뭐예요? 미국의 월세가 한국과 다른 점
미국에 가서 집을 구할 때 깜짝 놀랐습니다. 함께 유학 온 후배 아버님께서 매달 내는 월세가 아까우니 목돈을 줄 테니 전세를 알아보라고 했지만, 미국에는 전세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습니다.
미국인들에게 전세라는 시스템(?)을 설명하면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집값의 반 이상을 낼 현금이 있으면 집을 구입하지 왜 전세로 살지?’, ‘몇만 불이 넘는 돈을 어떻게 집주인만 믿고 맡길 수 있느냐’며 오히려 이상하다는 소리만 들었습니다.
똑같은 월세 같지만 미국과 한국은 상당히 다릅니다. 일단 미국은 한국처럼 보증금이 높지 않습니다. 한국은 아파트의 경우 보증금만 몇천만 원에서 1억이 넘지만, 미국은 보통 몇 달 치 월세인 몇천 불 수준입니다.
미국은 주거 대부분이 월세 형태의 렌트가 기본이라 개인보다는 주로 임대회사가 관리합니다. 그래서 수리와 분쟁에 대한 매뉴얼과 법적 기준이 명확합니다. 집을 계약할 때 벽에 못 자국 하나라도 확인해야 나갈 때 비용을 내지 않는 등 절차가 까다롭지만, 기준이 있어 집주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또한 한국처럼 집주인이 나가라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기자가 미국에 사는 동안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경우는 있어도, 집주인이 계약이 끝났으니 해지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지역 전체가 집값이 상승하면 렌트비도 올라 급여에서 월세 비중이 높아 경제적으로 쪼들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과 한국의 월세 개념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은 집주인의 재산이라는 인식이고, 미국은 수익을 내기 위한 영업장입니다. 아예 접근 방식이 다르다 보니 발생하는 문제도 차이가 있습니다.
연세가 뭐예요? 제주에만 있는 독특한 주거 문화
제주에 처음 왔을 때 일 년 치 월세를 한 번에 내야 한다는 소릴 듣고 황당했습니다. 제주도의 주거 형태는 대부분 ‘연세’로 집주인은 한 달치 월세는 깎아주는 대신 11개월치 월세를 한 번에 받습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월세가 목돈으로 들어오니 참 좋은 제도입니다.
2–3년 전부터 제주에 전세가 조금씩 늘어났지 10년 전에는 제주 도내 전체를 따져도 전세 물량은 거의 없었습니다. 집주인들이 전세금이라는 목돈을 나중에 돌려주기보다 월세를 한 번에 받는 편이 훨씬 이득이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50만 원대 연세가 지금은 월 80만 원, 또는 100만 원이 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만큼 집값이 많이 올랐다는 증거입니다. 원래 제주에 집이 있다면 무리가 없겠지만, 이주민 등은 오르는 연세를 감당하지 못해 제주를 떠나기도 합니다. 가뜩이나 육지보다 임금이 낮은 제주도 특성상 청년이나 30–40대 가장들은 조금이라도 싼 연세를 찾으려고 신구간 기간만 되면 발을 동동 구릅니다.
(제주는 대부분 신구간에 이사를 합니다. 신구간이란 대한 후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 일주일 가량으로 제주에서 이사를 해도 좋다고 여겨지는 기간입니다. 이즈음 집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이주민이 급증하면서 ‘신구간=이사’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사라지는 전세가 문제? 주거 안정 대책이 중요
정치인들이 월세를 낸다, 임차인이라고 말을 해도 그들에게는 최후의 보루인 자가 주택이 1채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이 없는 서민들은 전세나 월세나 어쨌든 남의 집을 빌려 살아야 합니다.
전세가 사라지면 가장 힘든 것이 월세 부담입니다. 전세 대출을 받아 갚아 나가는 비용보다 월세가 훨씬 비쌉니다. 정부가 장기 임대주택 등을 통해 저렴한 월세를 대규모로 공급하면 괜찮겠지만, 당장 실행되기는 어렵습니다
몇 년 동안 전세를 살았던 부모님들은 버티다 결국은 형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2년 계약이 끝날 때마다 집주인이 요구하는 전셋값을 마련할 수 없었습니다. 임대차 3법이 실행됐다면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갭투자나 깡통 전세 등 전세가 가진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느냐도 중요하지만, 부동산 정책의 본질은 ‘주거 안정’입니다. 현재 가진 돈으로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에서 쫓겨나지 않는 것이 집 없는 가장들의 고민입니다. 정치인들의 발언과 정책이 그런 고민 속에서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원문: 아이엠피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