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움직이는 브랜드에는 각각의 고유 감성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우리가 브랜드에 대해 느끼는 희로애락의 감정들을 생산합니다. 흔히 브랜드 스토리라 부르는 것들 말이죠.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우연하게도 스토리가 정립된 브랜드를 접하게 되는데요. 그럴 때는 참, 주변에 공유하고 싶어 끙끙 앓을 때가 있어요. 오늘도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려 합니다. 바다 건너 일본에 있는 교산(ギョサン, GYOSAN)입니다.
매년 여름, 일본에서는 교산 샌들이 인기입니다. 1918년에 태어난 교산은 처음에는 평범한 가죽 신발을 만들었습니다만, 지금은 성형 수지로 비치 샌들을 만듭니다. 성형 수지는 금속 틀(금형)에 액체 재료를 넣고 굳힌 뒤 찍어내는 방식입니다. 무엇보다 바닥과 쪼리가 일체여서 잘 벗겨지지 않습니다. 튼튼하고 잘 미끄러지지 않아 물에 닿는 상황에서 신기 좋습니다. 그리고 가격이 저렴하죠.
원래 교산은 ‘브랜드명이 의미 없는’ 저가의 기성품이었어요. 다이소의 욕실 용품 코너에 가면 볼 수 있는 욕실 슬리퍼처럼 말이죠. 그랬던 교산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오가사와라 제도의 어부들 덕분입니다.
열대-아열대 기후의 오가사와라(小笠原諸島, Ogasawara islands) 제도는 도쿄에서 남쪽으로 1,000km 이상 떨어진 30여 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7세기 초 막부 시절 처음 발견되었으며, 1830년에서야 사람이 거주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근처의 이오지마섬과 함께 군사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종전 후에는 계속 미국령에 속해 있다가 1968년에 일본으로 반환되었습니다.
‘동양의 갈라파고스’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2011년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일본에서도 유명할 텐데 왜 처음 들어보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요. 사실 항공편이 없어요. 거리로는 오키나와(1,583km, 도쿄 기준)보다 더 가깝지만 수익성, 환경 보전의 문제로 아직까지는 선박 편만 있습니다. 가장 빠른 배를 타면 24시간이 걸린다고 해요. 그럼에도 현재 섬 거주 인원은 3,000명 이상입니다.
일본에서도 오지 중의 오지로 속했던 오가사와라 제도는 TV도쿄의 ‘출몰! 맛거리 천국, 오가사와리 편’(2000년 6월 방송)을 통해 방송에 소개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것은 섬 주민들 전체가 신은 신발이었습니다.
어부들을 포함해 섬의 모든 주민이 신은 신발은 모두 ‘교산’이었습니다. 게다가 1968년에 다시 돌아와 이곳에 살 때부터 신었다고 해요. 더욱 특이한 점은 메이드 인 재팬이지만 본토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고 해요. 그렇게 인지도를 올린 교산은 간사이 지방의 다이버 숍에서도 취급하게 됩니다. 어부들의 작업화에서 아웃도어 용품으로 확장이 된 거죠. 물론 그때는 전국적으로 유명해질 정도는 아니었죠.
시간이 흘러 2010년, 당시 일본의 인기 아이돌 ‘아라시’의 오노 사토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합니다. 자신의 취미를 소개하는 코너에서 낚시를 하는 장면을 보여주는데요. 그때 교산을 신고 나옵니다. 리포터가 신발을 물어보자, 자신의 최애 탬이라고 소개를 하죠. 그때부터 교산은 젊은 연령층들에게도 인기를 끕니다. 오늘날 BTS 정국이 “저 섬유유연제, 그 다우니에 어도러블 뭐시기 저시기 쓰고 있어요”라는 말에 해당 상품이 품절된 것처럼 말이죠.
어부들의 신발로 시작된 교산, 처음에는 갈색 1종류에 불과했으나 현재 50종 이상의 컬러, 디자인으로 출시됩니다. 지금은 PEARL GYOSAN라는 브랜드로 글로벌하게 진출합니다. 특히 괌, 팔라우 등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관광지 위주로 홍보 중이라고 하네요. 우리나라에는 교산펄이라는 브랜드로 공식 런칭된 상태입니다. 연남동에 공식 매장까지 있다고. 🙂
교산이 인기를 얻는 이유는 오노 사토시 덕분도 있겠지만, 최초의 시작이 ‘오가사와라 어부들이 신는 신발’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요? 방수 기능, 미끄럼 방지는 욕실에서 씻는 사람에게도 필요하지만, 바다와 싸우는 어부들에게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바다가 1,000km 이상 떨어진 일본 최남단이라는 점. 제품에 대한 신뢰도는 물론 호기심까지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해요.
교산을 처음 보았을 때, ‘어부들이 신던 신발’이라는 표현이 와 닿았습니다. 배에서 그물을 던지고 고기를 잡던 어부들, 할머니들이 앉아서 그물에 걸린 고기를 일일이 빼내고 손질할 때의 모습이 머릿속에 상상되었어요. 오히려 처음 접한 이미지가 평범한 욕실용이었다면 가치를 느끼지 못했을 것 같아요.
오가사와라 섬의 어부들을 통해 알게 된 교산을 신고 오가사와라를 찾아가는 느낌은 어떨까요. 1970년대 어부들이 신었던 것과 똑같은 신발을 신고, 같은 해변을 거닌다는 상상. 글로는 몇 줄에 달하는 이 장면이 머릿속에는 몇 초 만에 떠올랐어요. 잠깐의 즐거운 상상이 끝날 때쯤에는 교산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더 비싸고 더 좋은 비치 슈즈가 이미 있음에도 사고 싶어지더군요.
각각의 브랜드에는 따라 할 수 없는 스토리가 존재합니다. 소개팅에서 나를 알리는 것조차도 나라는 브랜드의 스토리텔링에 해당하죠. 누군가에게 나라는 브랜드의 매력을 어필하는 것. 마케터만이 할 수 있는 일 아닐까요. 브랜드의 본질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브랜드 스토리’도 완성되어 있을 거라 믿습니다.
원문: 용진욱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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