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는 자기 할 말만 하고 끊더라?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날카롭다. 아이고 또 내 말만 실컷 했구나. 이렇게까지 대놓고 말할 정도면 단단히 화가 난 게 틀림없다. 때마침 버스가 멈춘다. 내려야 하는 곳이다. 다행이다.
잠깐만, 지금 내려야 해서.
카드를 찍으면서 일시 정지 상태였던 유튜브를 껐다. 집에 가서나 봐야겠다. 재빨리 수화기에 대고 대답했다.
웅? 나는 끊을 생각 없었는데? 이제 자기 얘기 들을 차례야.
가끔씩 그런 사람이 있다. 100명 중 1명꼴로 보이는데, 외모가 출중하지도 않고 옷도 평범하게 입는데 매력이 있다. 남녀관계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괜찮은 느낌? 중요한 건 다른 사람들도 비슷하게 생각한다는 거다.
옆에서 듣던 친구도 맞장구를 친다. ‘맞아~ 그리고 꼭 그런 사람은 대화가 잘 통해.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준다는 느낌? 나는 어색한 분위기에서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닌데, 그런 사람이 있으면 말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경청만 잘해도 매력적인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이상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게 뭐가 어렵길래? 재밌는 건 스스로 경청을 잘한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없다는 거다. 심지어 나는 경청을 잘한다는 것의 기준도 잘 모르겠다. (반성)
아마도 우리가 경청에 대해 그만큼 고민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다른 이의 말을 듣는’ 경청을 3가지 단계로 정리해 보았다. 참고로 내 주위에는 1단계가 많으며 2단계부터는 극히 줄어든다.
1단계: 너의 말은 듣지만 끼어들 예정이다
상대방의 말을 듣긴 듣는다. 그러다 끼어들 만한 주제다 싶으면 대화를 끊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말을 하던 이는 이야기를 끝내지 못했지만 개의치 않다. 이제는 내 차례니까. 예를 들면 이렇다.
나 “며칠 전 비 오는 날 맥주를 사러 편의점을 갔다? 근데 밖에 나가서 한 2–3분 걸었는데 슬리퍼 끈이 끊어진 거야… 당황해서 어떻게 하지 막 이러고 있…”
친구 A “어! 나도 그런 적 있어. 5년 전에 학교 갈 때 갑자기 슬리퍼가 끊어진 거야. 와 그때 개 당황했다니까ㅋㅋ”
나 “아 진짜? ㅋㅋ…”
아니! 어째서! 5년 전 끊어진 슬리퍼를 왜 여기서 이야기하는 걸까. 나는 내가 느꼈던 기분과 감정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왜 쟤는 저렇게 지 이야기를 못 해서 안달 난 걸까? 아! 피곤해! 나도 말할 줄 아는데, 왜 얘는 말을 이렇게 잘 끊는 걸까.
철봉을 잡던 손을 툭 놓으면 바닥에 떨어진다. 아프고 기분이 안 좋다. 대화도 비슷하다. 말을 하는데 누군가 툭 자르면 어두운 바닥에 떨어진다. 그게 여러 번 반복되면 그때부터는 입을 아예 닫아버리게 된다. 어차피 똑같을 거니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의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에피소드로 연결하는 걸 좋은 경청이라고 생각한다.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허나, 상대방 경험에 대한 내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과 내 경험을 얘기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
내가 원하는 건 공감, 위로, 이해 같은 표현들이야. 너의 이야기는 지금 순서가 아니라고.
2단계: 오롯이 말하는 이에게 초점을 맞춘다
2단계는 상대방에게 나의 초점을 맞춘다. 거울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상대방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마음인지, 어떤 걸 느꼈는지, 무슨 말을 하려는지를 캐치한다. 즉 순수한 호기심으로 대화에 몰입한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 “며칠 전 비 오는 날 맥주를 사러 편의점을 갔다? 근데 밖에 나가서 한 2–3분 걸었는데 슬리퍼 끈이 끊어진 거야… 당황해서 어떻게 하지 막 이러고 있는데 다행히 거리에 사람이 없더라? 그냥 맨발로 집에 뛰어갔음.”
친구 B “맨발로 집에 갔다고? 발은 안 다쳤어? 대박 ㅋㅋ 그래도 다행이다. 더 멀었으면 어떡해.”
나 “어 맞아! 그때 발에 피 나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별일 없었어! ㅎㅎ”
1단계였던 친구 A와 달리, 친구 B는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내 경험에 공감했다. 그러자 나는 그 이후의 일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내 말을 끝까지 들어준 이 친구, 괜히 더 고맙고 정이 간다. 나도 이 친구처럼 공감을 잘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3단계: 나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응원해주는 사람
100명 중 1명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말을 제외한 비언어적 표현까지도 예측하고 반응한다. 말을 할 때 쓰는 제스처, 표정, 분위기, 감정까지 보면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한다. 귀로 듣기보다는 온몸으로 이해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나 “제 올해 하반기 목표는 정해진 프로젝트를 잘 마무리하는 거예요. 월급 받는 값은 하고 싶거든요ㅎㅎ”
친구 C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 지금 2달째 꾸준히 하잖아. 너랑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나도 봤지만 너처럼 꾸준히 업데이트하는 사람은 없더라. 하는 일이 잘 되고 안 되고를 떠나서, 스스로 정한 걸 지키고 유지하는 게 정말 대단한 것 같아.”
고맙다. 눈앞에서 나를 칭찬해주는 말을 들으니, 민망하고 오글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기분은 정말 좋다. 회사는 물론 가족, 연인도 이렇게 나를 구체적으로 칭찬한 적은 없었다. 사실 지금 하는 것에 불안한 부분들이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뜻밖의 인정을 받은 느낌이다. 아직 나 잘하고 있구나. 괜스레 고맙고, 뿌듯하다.
마치며
지금 내가 몇 단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달라질 수 있을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금 나의 경청은 1단계지만 2단계가 된다면 더욱 좋지 않을까? 마지막 3단계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해봐야겠어!
- 영감 주신 분: 알편심 10회 〈경청: 마음으로 들어주기〉
- 글을 쓰고, 생각을 담는 모임 ‘쓰담’의 멤버로 함께 합니다.
원문: 용진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