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짝소년단 사태’를 보면서 한 경험이 떠올랐다. 유학 시절에 미국인 친구와 수다를 떨던 중에, 미국인이 아닌 나를 지칭하기 위해서 ‘foreigner’라는 단어를 사용했더니 그 친구가 화들짝 놀라면서 그 단어를 사용하면 안된다고 했다. 왜? 라고 물었더니 그 단어는 차별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 나같이 미국이 아닌 곳에서 온 사람을 뭐라고 지칭해야 되냐고 물었고, 그 친구는 그냥 넌 한국인이니까 ‘Korean’이라고 하든지 ‘people from other country’ 등으로 쓰는 것이 옳다고 했다.
‘외국인(外國人)’이라는 단어는 다른 나라의 사람이라는 뜻이니 영어로는 정확히 ‘people from other country’에 해당하는 중립적인 단어지만, foreigner의 어원은 로마에 살지 못하는, 혹은 우월한 로마인이 아닌 ‘(상스럽고 저속한) 외지인’을 뜻하던 단어로, 그 자체에 비하 내지는 차별의 의미가 있는 셈이다.
본의가 어떻건 간에, 한국인에겐 차별이 아닌 구별의 의미였다 해도 느끼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해석은 달라질 여지가 있다.
2.
만약 샘 오취리가 얼굴을 검게 칠한 그 학생들을 보고 불쾌감을 느꼈다면, 당사자인 관짝소년단 리더는 리스펙트로 받아들인 것과는 별개로 명백히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가 된다.
물론 한국 사회가 아직 차별과 구별에 대한 개념이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과도기에 있기 때문에 이해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한국에서 생활하는 동안 느껴왔을 공공연한 차별 때문에 예민했을지언정, 그가 그렇다면 적어도 그에게는 그런 것이지 맞은 놈이 아프다는데 때린 놈이 뭐 그런 거 가지고 아프냐고 엄살이냐고 할 얘기는 아니지 않나?
뭐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리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한국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백인이 아닌 인종들은 매 순간 차별을 대놓고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종차별을 은연중에 해 오고 있었음을 반성하고 고쳐나가고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이 땅에 한국어가 아닌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도치 않은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어떤 게 인종차별인지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으며, 우리도 그들 중 하나라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 이해해야 하는 것들을 배우고 익혀나가면 된다.
3.
문제는 조금 예민했을 뿐인 샘 오취리에게 이미 깜둥이부터 온갖 폭언이 가해지고 있고, 한국에서 돈 벌게 해줬더니 딴소리냐는 태도를 보이는 한국인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이긴 한데 평등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아직도 프로야구에선 외국인 선수들을 ‘용병’이라는 차별적 단어로 아주 자연스럽게 부른다. 그리고 메이져리그 방송에선 류현진이나 추신수를 그들의 이름 혹은 한국인 선수라고 표현한다.
원문: 이학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