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예능을 좋아하는 저는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을 챙겨보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아내가 새로 나온 나영석 사단의 예능 ‘여름방학’이 왜색논란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내용이 소니 게임과 비슷하다는 것은 둘째 치고, 장소로 선택된 집이 적산가옥 같은 집이라는 겁니다. 아내가 보여준 집 사진을 보니 과연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이 당연해 보입니다.
이 논란에 대해서 일본식이면 어떻고 프랑스식이면 어떤가, 뭘 그런 걸 가지고 따지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예능 프로그램에서 집이 전부는 아니겠지요. 하지만 여름방학에서 이런 집을 선택한 것은 큰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이런 논란이 단순히 반일감정이나 민족주의적 감성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지적해 둡니다. 그런 분도 물론 있겠지만 저는 만약 이 프로그램을 일본의 어느 지역에 있는 집을 빌려서 하는 거였다면 적어도 이야기가 좀 달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느꼈을 겁니다. 또한 이번에는 왜색이 문제가 되었지만 따지고 보면, 그 집이 설사 한국에 있는 독일풍이나 프랑스풍 집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색이니까 더욱 큰 문제가 되었겠지만 말입니다.
이런 힐링 계열 예능은 사실 장소가 반 이상의 역할을 합니다. 여행도 그렇지 않습니까? 여행이란 누구와 가는가, 가서 뭘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숲으로 가는지, 바다로 가는지, 유럽의 도시로 가는지, 오지로 가는지에 따라 큰 틀이 잡히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의 생활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예능은 그 장소가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겁니다.
장소는 출연자들이 뭘 하게 되는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농촌에 가면 농촌이라는 배경에서 일이 일어나는 거고, 섬으로 가면 섬이라는 환경에서 사건들이 일어나는 거죠. 그리고 핵심은 그게 패키지 투어 같은 관광이 아니고 진짜 그 장소에 대한 체험이라는 겁니다.
한국에 있는 적산가옥 같은 집을 예쁘게 꾸며놓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보여주면 자연히 그 예능은 마치 일본의 힐링 영화나 힐링 드라마같이 흘러갑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나 〈안경〉, 드라마 〈심야식당〉 등을 떠올리면 될 겁니다. 그런데 여기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로 한국에 있는 외국풍 집이라는 것이 결국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는 겁니다. 그건 마치 알프스에 있는 한옥풍 집 같은 겁니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이 그 알프스의 한옥풍 집에서 힐링을 누리는 것을 보며 사람들이 부러워할까요? 그건 가짜인데? 힐링 프로그램의 핵심 중 하나는 모든 게 진짜처럼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가벼운 이미지와 가짜가 넘쳐나는 도시의 일상을 떠나서, 스스로 밥해 먹고, 집 앞의 들꽃을 보면서 진짜 생활을 누리는 겁니다.
그렇다고 한국의 시골에 가면 적산가옥처럼 지어진 집들이 넘쳐날까요? 그렇지도 않죠. 그러니까 앞에서 말했듯이 이건 단순히 문제가 왜색이라는 것만 있는게 아닙니다. 가짜 집을 지어놓고 진실된 표정을 짓는 설정을 해버린 겁니다. 무주 리조트에 완전히 프랑스처럼 보이는 집을 지어놓고 힐링 예능을 찍어도 공감대는 내려갈 수 밖에 없습니다. 알프스에도 가본 사람이 많은데 그게 부럽겠습니까?
둘째로 일본풍 힐링은 시대에 뒤쳐진 것입니다. 일탈에 대한 과도한 기대로 넘쳐나는 그것은 사이비 냄새가 너무 납니다. 한국 예능이 왜 인기가 있는지 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의 힐링 영화나 드라마는 너무 많고, 그 분위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출연자들이 다 어디 농촌이나 외진 곳에 가서 득도한 고승 같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농촌 인구가 줄어서 농촌 마을이 없어지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생각해 보면 산골 마을이나 바닷가 마을에 간다고 천국 같은 현실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압니다. 〈삼시세끼〉나 〈바퀴 달린 집〉 같은 한국 예능의 강점은 ‘진짜’라는 겁니다. 힐링은 힐링인데 현실을 잊지 않습니다. 고생도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진짜 인간이 느껴집니다. 괜히 무게 잡고 속세를 떠난 사람처럼 굴지 않습니다.
최근 〈야식남녀〉라는 드라마를 잠깐 보았는데 5분 만에 포기했습니다. 너무나 〈심야식당〉이 생각나는 가게지만,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이고 새것 같은 가게에 찾아간 배우가 자신은 계약직이라서 힘들다고 말하더군요. 그런데 이 식당은 주방장이 손님에게 알아서 음식을 대접하는 가게였고, 그 배우가 먹는 술도 그냥 맥주나 소주가 아니라 예쁜 잔에 담은 독한 술이었습니다.
이건 마치 〈미생〉의 장그래가 회사 끝나고 나서는 한 끼에 20만 원쯤 하는 고급 일식집에 가서 사케를 들이키며 주방장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더군요. 〈야식남녀〉의 시청률이 한 가지 문제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 드라마가 일본풍 힐링 드라마에 안일하게 영향받은 게 분명 큰 영향을 미쳤을 겁니다.
〈여름방학〉이 한옥 고택 체험이었으면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한옥 고택을 빌려주는 곳도 많습니다. 그런 곳을 한 달쯤 빌려서 여름방학을 보냈으면 아주 좋았을 겁니다. ‘한국이니까 한옥이다’라고 말하는 걸 민족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편견입니다. 그보다 이것은 진짜냐 가짜냐의 문제입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사는 장소로의 주택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구해줘! 홈즈〉 같은 프로그램이 대단한 인기입니다. 꼭 한옥찬양론을 펼치라는 게 아닙니다. 진짜 고택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는가 보여주고, 좋은 것뿐 아니라 나쁜 것도 보여주었으면 진짜 체험 같았을 겁니다. 시청자들은 문화를 느꼈겠죠. 그게 이런 예능이 보여줘야 할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일본풍 적산가옥 같은 집이라니요. 나영석 피디의 주택 안목에 크게 실망이 듭니다. 기모노를 입든 한복을 입든 상관없는 거라면 뭐 하러 일상에서 탈출해 어딘가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힐링을 꿈꾸겠습니까. 여기나 거기나 다 상관없는데 그냥 익숙하게 살던 데 있지. 한국적인 게 세계적인 것이라는 진부한 말을 꼭 다시 해야 하나요?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