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쭐’내러 갑시다!
홍대 ‘진짜 파스타’ 기억하시죠? 결식아동들이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음식을 먹게 해 주자는 오인태 사장님의 #밥한번편하게먹자 는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어마어마한 바이럴을 일으켰습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홍대 파스타 집의 미담을 퍼 나르기만 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가서 돈으로 혼내준다는 ‘돈쭐’을 내러 진짜 파스타를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진짜 파스타 이후에 ‘돈쭐’이라는 용어는 흔하게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트렌드 분석가들은 ‘돈쭐’을 내는 것이 밀레니얼, Z세대의 소비 특징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는 ‘미닝 아웃(Meaning out, Meaning과 Coming out의 결합어)’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정치 사회적 신념을 소비행위를 통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지하는 가치를 ‘돈쭐’로 응원하는 것은 MZ세대 소비자들이 더 이상 수동적인 대상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경제 주체로서 활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쯤 되면 이런 생각 하시는 분들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럼 나도 비슷하게 따라 하고 돈쭐 한번 나볼까?ㅎㅎ
글쎄요, 그러다 MZ세대한테 혼쭐나실 거 같은데요? 미국 좀 한 번 볼까요?
세계를 뒤흔든 Black Lives Matter
Black Lives Matter(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이하 BLM)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향한 경찰의 잔인한 진압 및 사고에 대항하는 비폭력 시민 불복종 움직임을 말합니다. 2013년에 소셜미디어 해시태그로 시작된 운동이었지만 2014년 거리 시위를 통해 미국 전역으로 번져나갔고,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 이후에는 전 세계로 번지고 있습니다.
BLM에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White Lives Matter(백인의 생명도 중요하다) 혹은 All Lives Matter(모든 생명은 중요하다)로 응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BLM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BLM이 흑인의 생명만 중요하다거나 흑인 이외의 다른 인종의 생명은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 전반적으로 자리한 구조적인 불평등에 저항합니다.
흑인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기 전까지는 어떤 삶도 존중받을 수 없다.
All lives can’t matter until black lives matter.
이 말에서 알 수 있듯이 BLM 지지자들은 흑인 인종만을 지지한다기보다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주의’가 만연한 사회 시스템을 반대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타의 백인 해병대 재향군인도, 미국이 아닌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축구 선수들도, 그들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에 동감하며 BLM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Black Lives Matter가 몰고 온 변화
BLM의 흐름에 맞춰 글로벌 대기업들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펩시코의 자회사 퀘이커 오츠는 Aunt Jemima를 퇴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브랜드는 출시 때부터 흑인 유모를 모델 삼았다는 이유로 인종차별에 해당한다는 논란이 계속 있어왔습니다. 두건을 없애거나 진주 귀걸이를 추가하며 유모 이미지를 지우려고 했으나, BLM으로 반대 여론이 더욱 거세지자 이번에 완전히 퇴출하기로 결정한 것이죠.
뿐만 아니라 네슬레는 미국이 아니라 호주에서 판매 중인 ‘Red Skins(인디언 원주민 비하 표현)’, ‘Chicos(라틴계 편견을 담은 표현)’도 “친구와 이웃, 동료들을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이름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며 상품명을 바꾼다고 발표했습니다.
BLM은 B2C(기업-소비자 거래)뿐만 아니라 B2B(기업 간 거래) 영역에도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이 혐오발언을 방조한다고 판단한 스타벅스, 코카콜라, 유니레버 등 약 240개(20년 7월 1일 기준)의 기업이 ‘페이스북 보이콧’을 밝히며 광고 게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일부 시민단체가 ‘이익을 위한 혐오 확산을 중단하라’는 #stophateforprofit을 시작했고 기업들이 이에 응답한 것입니다. 2019년 페이스북 매출액 98.5%가 광고임을 감안할 때, 페이스북에게는 완전한 비상사태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형들, 진짜 돈쭐 한번 나고 싶어?!
MZ세대는 적극적으로 ‘돈쭐’ 내야 할 브랜드를 찾습니다. Kantar Monitor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54%)의 소비자가 ‘브랜드는 미투나 인종주의 같은 사회적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답했으며 특히 밀레니얼(46%)과 Z세대(42%)는 X세대(31%)나 베이비부머 세대(22%)보다 ‘용감한 브랜드’를 찾는다고 답했습니다.
그런 MZ세대에게 BLM의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가장 강력한 인상을 남겼던 건 역시 5월 30일 제일 먼저 ‘For Once, Don’t do it’을 외친 나이키입니다. 항상 ‘그냥 해(Just do it)’를 외쳐오던 나이키가 ‘이번만은 하지 마라’라고 말했습니다.
인종차별에 등을 돌리지 마라. 우리에게서 무고한 목숨이 빼앗기는 걸 받아들이지 마라.
이 조용하지만 강력한 메시지를 그 누구보다 먼저 던졌습니다. 나이키의 빠른 반응에 MZ세대 소비자들은 역시 나이키라면서 환호했고, 심지어는 경쟁사인 아디다스도 나이키의 게시물을 리트윗하기도 했습니다. MZ세대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확인한 마이클 코어스, 구찌 같은 다른 브랜드들도 BLM의 물결에 하나둘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랜드 행동주의로 유명한 미국 1위 아이스크림 업체 벤앤제리스는 6월 3일 ‘침묵은 선택지에 없다(Silence is not an option)‘는 성명서를 내며 ‘백인 우월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나이키보다도 더 강력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벤앤제리스는 앞선 다른 브랜드들처럼 단순히 ‘당신을 응원합니다’정도의 선언이 아니라 구체적인 법안의 통과 같은 보다 실천적인 요구사항 들을 제시했습니다. BLM에 호응한 브랜드는 많았지만, 이 정도로 구체성을 담은 성명은 없었기에 소셜미디어상에서 ‘최고의 대응’이라고 호평을 받으며 널리 공유됐습니다.
그런데… 어설프게 흉내만 내다간 혼쭐나요
다른 기업들도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P&G도 BLM의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려 <The Choice(선택)>을 릴리스합니다. The Choice는 백인들에게 인종주의에 맞서자고 요청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침묵하지 말고 함께 행진하고, 기부하고, 투표하자는 내용이었죠.
하지만, 이 광고는 7월 3일 현재 유튜브 상에서 좋아요 5.2k(54%), 싫어요 4.5k(46%)를 기록하고 있고, 댓글 창도 닫혀있습니다. 나이키의 ‘For Once, Don’t do it’이 좋아요 21k(94%), 싫어요 1.3k(6%) 인 것을 감안할 때 P&G의 The Choice는 MZ세대 소비자들에게 오히려 부정적인 피드백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영상 광고의 효과를 측정하는 ACE metrix에서 BLM관련 영상들의 효과를 조사한 결과 ‘나는 P&G가 실제로 인종차별을 위해 실질적인 액션을 취할 것인지에 대해 비관적이다'(여자, 50대 이상 BLM지지자)’ 등의 반응을 받았습니다. 나이키가 Empower(행동자극) 최고점을 받은데 반해 P&G는 최저점을 기록하며 민감하기만 하고 사람들에게 행동자극은 주지 않는 위험한 광고로 평가되었습니다.
기업들과 다양성 이슈에 대해 협업해온 USC의 교육심리학자 Michael Nguyen는 소비자들이 그럴싸한 광고나 CEO 메시지, 혹은 일회성 기부 같은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알고 싶어 하는 것은 ‘실제로 기업이 이 문제에 대해서 뭘 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맥도날드는 6월 3일 ‘One of Us’라는 이름으로 광고를 릴리스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단체 ACLU는 정작 맥도날드 측이 COVID-19 시기에 흑인들이 대부분인 직원들의 위생 수준 향상 및 유급병가 관련 요청에는 무응답 했다며 맥도날드의 진정성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맥도날드와 P&G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MZ세대 소비자들은 광고를 기업이 제시하는 대로 일방적으로만 소비하지 않습니다. 기업이 사회적 메시지를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시류에 편승한 기회주의적 시도인지 아니면 진실성 있는 움직임인지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실제로 그 브랜드가 실천적인 움직임이 없다면 돈쭐이 아닌 혼쭐을 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돈쭐나고 싶으면 미리미리 잘하자
나이키가 다른 어떤 기업들보다 ‘For Once, Don’t do it’을 가장 먼저 말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이키가 이미 BLM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이키는 2018년 Just do it 30주년 모델로 콜린 캐퍼닉을 기용했습니다. 2016년 보수적인 색채가 강한 NFL에서 당시 국가 연주 중 무릎을 꿇는 그의 Kneeling시위는 미국을 뒤집는 아주 큰 논쟁거리였습니다. 캐퍼닉은 맹렬한 반대 여론 때문에 2017년 3월 방출된 뒤 아직까지도 NFL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를 메인 모델로 기용한 사실이 알려지자 캐퍼닉 반대자들은 나이키 불매운동까지 시작했습니다. 나이키는 뻔히 예상되는 반발을 감수하면서까지 BLM을 전면에서 지지했습니다. 그렇기에 ‘For Once, Don’t do it’으로 어느 다른 기업들보다 가장 먼저 BLM을 지지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습니다.
벤앤제리스도 나이키처럼 이미 BLM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습니다. 벤앤제리스는 ‘Caring Capitalism’이라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사회참여를 활발히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2016년에는 민주주의 참여를 독려하며 Empower-mint(Empowerment의 유사 발음 아재 개그)를, 2018년 10월에는 이민법, 성 소수자 문제 등 트럼프의 퇴보적 정책에 저항하는 아이스크림 Resist를, 2019년 9월에는 형사법 개혁 요구하며 Justice Remix’d를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나이키와 벤앤제리스 두 기업은 일부 소비자들에게 거센 반대를 받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그들의 진정성을 이어왔습니다. 그렇기에 BLM에 대응하는 그들의 자세가 상술이나 시류에 편승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느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MZ세대 소비자들은 이에 호응했던 것입니다.
‘돈쭐’나고 싶으시다고요?
어설프게 시류에 편승해서 그럴싸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MZ세대 소비자들은 기업들이 제공하는 정보만을 바라보며 그럴싸한 포장에 속지 않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그동안 기업들이 어떤 행적을 가지고 왔는지를 면밀히 지켜봅니다. 더 이상 그럴싸하게 거짓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기회주의적인 얌생이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2017년 BLM이 중요한 사회 이슈였을 당시 펩시는 켄달 제너를 앞세운 캠페인을 진행했다가 어마어마한 비난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펩시는 누군가에게는 삶이 달린 문제인 BLM을 핫한 축제처럼 묘사하면서 ‘펩시와 함께 이 핫한 축제를 즐기자!’는 식으로 전달했습니다. 펩시가 그렇게 접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이키의 ‘Just do it’처럼 나름의 진정성을 가지고 오랜 기간 캠페인을 지속해 온 것이 아니라 갑작스럽게 시류에 편승해보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백종원 대표님은 골목식당 100회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에는 척이었지만 칭찬받다 보니 사람이 변한다. 생활에서도 척을 할 수밖에 없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착한 척을 하다 보니 실제로 착하게 살 수밖에 없어 착한 삶이 됐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가득 담긴 대가의 말씀이지만 ‘돈쭐’나고 싶은 사람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쭐’이 나고 싶으시다고요? 그럼 오늘부터 미리미리 착한 척 살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기회 보다가 어쩌다 한 번 착한 척해서는 안 됩니다. MZ세대는 반짝 시류에 편승하는 얌생이들은 다 알아보거든요.
원문: 경욱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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