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생각하는 성공한 인생은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는지 묻고 싶은 날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고는 한다. 도대체 무엇이 성공한 인생일까?
누군가는 더 이상 노동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경제적 자유를 얻는 인생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한다. 누군가는 대단한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소소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즐길 수 있는 삶이 성공한 인생이라 한다. 또 누군가는 죽을 때 곁에 많은 사람이 남아있는 삶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만히 듣고 있자니 하나같이 모두 다 맞는 말이다.
성공한 인생을 그렇지 않은 인생과 구분하려면 우리의 삶이 평가 가능해야 한다. 평가란 일련의 기준에 따라 어떤 대상의 가치를 규명하는 일이다. 하지만 잘 알고 있듯이 우리의 삶은 통장잔고나 인스타 팔로워의 수, 언론 등장 횟수 같은 기준으로 평가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인생이 다 성공이라고 아름답게 마무리하기에도 영 뒷맛이 찜찜하다. 도대체 뭐가 성공한 인생이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
경영학 이론은 성공한 인생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을까
제프 베조스와 스티브 잡스에게 큰 영향을 줬다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교수님이라면 어느 정도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교수가 암 투병 중에 써 내려간 『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라는 책에서 그는 삶의 목적을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좋은 이론은 변덕을 부리지 않는다’며 경영학 이론들을 제시했다. 삶의 목적에 효과적으로 도달하기 위해 경영학 이론에 기반한 인생 경영을 제시한 것이다.
이론은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다. 좋은 이론은 문제를 범주화하고 설명하기 쉽게 한다. 삶이라는 바다를 헤쳐나가는 데 이론은 육분의나 나침반 같은 좋은 도구가 된다. 나침반 없이도 항해를 나갈 수 있지만, 나침반과 함께 항해하는 것이 더 수월하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론은 도구일 뿐이다. 잘 설계된 경영학 이론만으로 세상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도가 됐든, 육분의가 됐든, 초정밀 내비게이션이 됐든 가장 중요한 것은 어디론가 가겠다는 의지이고 실제로 발을 내딛는 용기다. 아무리 훌륭한 이론을 가졌어도 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제자리일뿐이다.
가장 좋은 것은 가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좋은 렌즈를 갖추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지는 대로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살아 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좋은 이론의 렌즈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이론은 삶을 헤쳐나가는 데 분명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방향’이 빠졌기 때문이다.
어디로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
- 미셸 드 몽테뉴
적극적 의지와 선명한 이론이 갖춰졌다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탐구해야 한다. 클레이튼 교수는 여러 가지 경영학 이론을 제시하지만 그중에서도 의도적(Deliberate) 전략과 창발적(Emergent) 전략은 삶의 방향성을 찾기에 가장 적합하다. 의도적 전략이란 예상되는 기회에 사용하는 전략으로서 계획이라고 불리는 대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반면에 창발적 전략이란 예상치 못한 문제 해결과 기회 획득을 위해 사용하는 전략으로 훨씬 즉흥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는 인생의 본 목적을 찾아가기 위해 ‘자신의 재능, 관심, 우선순위가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하는 곳이 어디인지 알 때까지 계속해서 뭔가를 시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렇게 창발적인 전략을 시도하다가 자신에게 정말로 잘 맞는 것을 찾는 순간 의도적 전략으로 전환하면서 우리 삶의 방향성을 선명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클레이튼 교수가 말했던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은 가만히 앉아있다가 누군가에게 불쑥 제안받는 것이 아니다. 꾸준히 창발적인 전략과 의도적 전략을 실행하면서 서서히 만들어진다. 어디로 배를 저어야 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닌 것처럼, 삶의 목적을 찾기 전까지는 나를 둘러싼 어떤 것도 내가 살고 싶은 사람으로 이끌 수 없다. 끊임없는 시도로 방향을 찾고 난 이후에 내게 불어오는 바람이 순풍인지 역풍인지, 또 어떻게 경영이론을 활용해 항해를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결국, 인생을 살아내는 것은 유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
이처럼 삶의 목적에 다다르는 과정은 끊임없는 의도적이고 창발적인 작은 시도의 총합으로 만들어진다. 이런 삶은 스케치 위에 한 번의 아름다운 붓 터치로 그려지는 수채화가 아니라 끊임없이 물감을 덧입히고 또 덧입히는 과정에서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유화를 닮았다.
때로는 어색한 붓 터치를 할 때도, 때로는 주변과 어울려 보이지 않는 색을 덧입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색을 더하는 것만이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라는 그림을 그려내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각각의 다양한 이론들은 색을 더 다채롭게 하거나 구도를 탄탄하게 구성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How will you measure your life(당신의 인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다. 우리 말로는 ‘평가’로 번역이 됐지만, 영어 원제에서 그는 측정(measure)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평가(evaluate)와 측정(measure)은 다르다. 평가는 물건에 값을 매기듯 일련의 기준을 가지고 가치나 수준을 정하는 것을 말하지만, 측정은 단위에 따라 무게, 길이, 부피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지된다. 다시 말해, 평가 대상으로서의 삶은 성공한 삶과 실패한 삶으로 나뉘지만, 측정 대상으로서의 삶은 각자의 다채로운 측정 방식을 통해 각자의 ‘내가 살고 싶은 삶’으로 도출된다.
클레이튼 교수의 가르침을 따라가자면, 결국 인생이란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각자가 원하는 삶을 각자의 방식으로 측정하는 과정인 것은 아닐까. 자기만의 측정방식을 찾아내며 결국에 자기만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닐까.
가는 길이 아름답다면, 그 길이 어디로 이끄는지를 묻지 말자.
- 아나톨 프랑스
처음으로 돌아가 ‘도대체 성공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질문부터 좋아야 한다. ‘성공한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은 사실 질문 그 자체부터 잘못됐다.
성공한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살고 싶은 인생’만이 있을 뿐이다. 성공적으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은 유화를 그리듯 색을 하나씩 더하면서 살아나가는 과정과정마다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빛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렘브란트의 그림도, 자유롭게 물감을 흩뿌린 잭슨 폴록의 그림도, 직선 반듯한 몬드리안의 그림도 모두 다 훌륭하고 각각의 아름다움이 있다. 심지어 미완성으로 남은 다빈치의 모나리자도 지금까지 생명력을 가지는 훌륭하기만 한 그림이다.
우리는 갑자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마감할지 알 수 없다. 이 글을 읽고난 당장 몇 시간 뒤 교통사고로 죽을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비록 그림을 완성하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길지라도 나름의 색깔을 내려면 ‘내가 살고 싶은 삶’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에만 비로소 미완성 그림일지라도 모나리자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색을 나누고 서로의 관점을 나누며 조금씩 더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가길 바란다. 그 과정에서 클레이튼 교수가 말한 것처럼 경영학 이론이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삶을 이해하는데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삶의 끝에 우리 각자가 어떤 그림을 그려낼지 모르지만, 우리 각자가 ‘내가 살고 싶은’ 모습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그려갔으면 한다. 누구에게든 ‘그래서 너 뭐 될래?’같은 질문으로 목적지를 다그치듯 물으며 공장식으로 똑같은 그림을 찍어내기보다 ‘우리가 함께 가는 이 길은 참 아름답다’라는 말을 함께 나누며 서로의 그림을 응원하는 존재로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
나는 우리가 함께 그림을 그려 가는 이 길이 충분히 아름답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길이 이끄는 끝에는 반드시 우리 각자만의 아름다운 그림이 존재할 것임을 믿는다. 이 길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 길을 걷는 우리를 나는 끝까지 응원하겠다.
원문: 경욱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