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면 뭐하니>를 보다가 BGM으로 90년대 팝 음악이 나왔는데, 거의 대부분 내가 아는 음악이라서 깜짝 놀랐다. 그 중 백스트릿보이즈의 <as long as you love me>나 <lager than life>가 나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귀를 종긋 세우며 들었다. 백스트릿보이즈나 엔싱크, 웨스트라이프는 내 학창시절 늘 CDP에 번갈아 들어있던 그룹이다. 백스트릿보이즈는 당시에도 퇴물 중에 퇴물이었지만 당시 그들의 멜로디는 내 심장을 홍시처럼 달달하고 여물게 만들었다.
이렇게 좋은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궁금해서 앨범 속 팸플릿을 확인하면, 거의 대부분의 작곡은 맥스 마틴이었다. 그 당시 라이벌이었던 엔싱크나 백스트릿 보이즈를 가리지 않고 좋은 곡을 만들어준 맥스마틴은 나에게 믿고 듣는 작곡가였다. “어! 이 노래 좋은데!” 싶어서 찾아보면 작곡가는 늘 맥스마틴이었다.
사실 맥스 마틴은 90년대 머물고 있는 작곡가가 아니라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레전드다. 그가 빌보드 탑텐에 꽂아 넣은 곡은 수십여 곡에 달하고, 폴 메카트니와 존 레논에 이어서 3번째로 많은 수의 빌보드 1위곡을 만든 작곡가다. 팝 음악의 지형도를 만들고 움직이는 아티스트로서 K-POP 또한 그의 자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와 동시에 내 머리를 스쳐 간 작곡가는 주영훈이다. 난 사실 90년대 여름 음악 프로젝트를 <놀면 뭐하니>가 기획했을 때 유재석, 비, 이효리 그리고 주영훈이 프로듀싱 하면 화룡점정이지 않을까 내심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몇 회전에 유재석이 싹쓰리의 곡을 의뢰하기 위해서 주영훈의 작업실을 찾아간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최근에 만든 곡이라며 유재석에게 들려줬고, 유재석은 으레 하던 형식적인 리액션을 했다. 주영훈은 열심히 설명했다. 이 곡은 소방차가 재결합한다고 해서 썼고, 이 곡은 R.ef가 재결합한다고 해서 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멤버들이 다퉈서 곡을 주지 못했다고 한다. ‘웃픈’ 모습이었다.
요즘은 왜 곡을 히트시키지 못했어?
유재석이 돌직구 질문을 날리자, 주영훈은 ‘세대교체가 이뤄져서’라고 멋쩍은 듯이 얼버무리며 넘어갔다. 그때 내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프로듀스101>의 조상 격인 <악동클럽>을 프로듀싱할 때의 날카로운 주영훈의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노쇠한 아버지의 처진 어깨를 보는 느낌이 오버랩됐다. 아마 그의 출연은 프로그램의 구색 맞추기에 가까웠을 것이다. 90년대의 ‘히트곡 제조기’ 주영훈을 빼놓고는 90년대 음악을 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싹쓰리가 커버한 <여름 안에서>의 편곡과 디렉팅은 박문치가 했다. 박문치는 90년대 레트로 음악을 주 장르로 하는 96년생이다. 엄연히 따지면 90년대 음악을 찐하게 겪은 세대는 아닌 셈이다. 90년대 스타일을 차용한 일종의 팔로워이고, 주영훈은 90년대 음악을 창조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여름 안에서>는 박문치가 프로듀싱을 했다.
주영훈이 어떤 개인적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90년대 댄스음악을 다루는 데 주영훈이 잠시 얼굴만 비추고 말았다는 건 나에게 충격으로 다가왔다. 트렌드가 바뀌고 세대교체도 되어서 곡을 히트시키지 못하는 건 이해하겠지만, 왜 주영훈은 자신의 전성기였던 90년대 댄스음악 신드롬이 코앞에 있는데 아무 힘도 쓰지 못한 걸까. 이걸 단순히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해서’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맥스마틴은 90년대 틴팝의 유행이 꺼지고 2000년대 초가 되었을 때 잠시 위기를 겪었다. 트렌드는 힙합과 일렉트로닉 계열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의 주 장기인 귀에 꼽히는 달달한 멜로디의 힘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맥스마틴은 쉘백 같은 다른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내려놓으며 트렌드를 따라갔다. 다양한 프로듀서와의 협업을 이어나가며 생태계에 적응했다. 멜로디는 강하지만 트렌디한 비트를 찍는 데는 약한 맥스 마틴은, 자신의 편곡 비중을 낮추며 멜로디컬함과 트렌디함을 함께 만족시켰다. 대신 다양한 협업으로 다양한 사운드 실험을 할 수 있었고, 그 결과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질문을 던져보자. 왜 여름 안에서의 프로듀싱을 주영훈이 아닌 박문치가 했을까? 생각해보면 답은 간단하다. 주영훈은 90년대만 빠삭하게 안다. 박문치는 90년대도 알고 밀레니얼 감성도 안다. 검색만 하면 다 나오는 디지털 네이티브 박문치에게 90년대를 공부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주영훈이 밀레니얼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박문치는 90년대 스타일을 밀레니얼 감성으로 변주하는 방법을 알지만 주영훈은 90년대 스타일 밖에 모른다. 주영훈은 90년대 스타일에 갇혀있고 박문치는 90년대 스타일 안에 밀레니얼 감성을 관통시킬 수 있다. 주영훈은 시대가 변하면 무너지지만 박문치는 과거와 현재를 믹스하는 변주의 재료가 많아서 강건하다.
동시대에 활동한 맥스마틴은 살아있는 레전드로 불리고 주영훈은 세대교체라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작곡가가 되었는지, 답은 뻔하게 나온다. 맥스마틴은 개방성으로 트렌드와 접합을 시켜주는 플러그인 아티스트를 찾아 내장했고, 주영훈은 방송이며 예능을 떠돌다 그 작업을 하지 못하고 도태되었다. 그 둘의 차이는 극명하다.
하지만 난 상상해본다. 어느 날 멜론 차트 탑텐 1위 곡이 좋아서 작곡가를 찾아보니 주영훈 작곡이라는 걸 알게 되길. 그러면 난 놀라고 감동해서 그 노래를 귀가 닳도록 들을 것이다. 꼭 주영훈에게 그런 날이 오길 간절히 빈다.
원문: 고로케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