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위해 집에서 10분 거리의 개천변으로 항하던 길. 생각 없이 걷던 내 앞에 한 남자가 있었다.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흔한 중년 남성으로, 마른 체구에 가벼운 운동복을 걸치고 약 5m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앞서 걷고 있었다. 그가 눈에 들어온 이유는 손에 쥐어진 식빵 봉지 때문이었다.
보통 사람들의 손에는 핸드폰 혹은 물병이 쥐어져 있다. 그런데 남자의 손에는 한쪽 면이 전부 갈색인 맨 끝부분을 포함해 식빵 2~3장만 덩그러니 들어 있는 봉지가 있었다. 아니, 무슨 식빵 봉지를 저렇게 소중히 쥐고 가는 거지? 걸어가면서 먹으려는 걸까? 아니면 먹다 남긴 걸 챙겨가는 걸까? 잼 하나 발리지 않은 맨 식빵이 담긴 봉지를 쥐고 가는 남자를 향해 이런저런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내가 식빵의 정체에 대해 갖가지 망상을 하는 사이, 남자는 눈 깜짝할 사이 사라졌다. 일면식 없는 그와 헤어지며 ‘식빵의 쓸모‘는 그렇게 영원히 미스터리로 남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정확히 5분 후. 나는 남자를 다시 만났다. 그때 남자의 행동을 보고 식빵의 미스터리도 스르르 풀렸다.
Y자 모양으로 양쪽에서 물이 모이는 길 위에 놓인 야트막한 도보교. 그곳에 남자가 있었다. 그는 난간에 기대 물속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주섬주섬 봉지에서 식빵을 꺼내 잘게 조각을 낸 후 뿌렸다. 소문이라도 났던 걸까? 식빵 조각이 수면 위에 닿기도 전에 어른 팔뚝만 한 잉어들이 튀어 올랐다. 덩달아 근처 물 위에 둥둥 떠서 상황을 유심히 지켜보던 야생 오리 무리도 달려들었다.
그렇게 난 도심 한가운데에서 난데없이 생명력 폭발의 현장을 목격하게 됐다. 남자가 식빵 조각으로 쏘아 올린 뜻밖의 밥그릇(?) 싸움이었다. 별 의식하지 않고 지나쳤던 이 개천에 이토록 활기 넘치는 생명체들이 많이 사는 줄 몰랐다. 말라비틀어진 식빵 조각으로 비로소 드러난 잉어 떼와 새들의 존재감에 새삼 놀랐다.
새와 물고기가 파닥이며 내뿜는 에너지에 주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가던 할아버지도 자전거를 멈추고 그 장면을 구경했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하던 할머니도 유모차 안의 손자를 안아 올렸다. 손자가 편안하고 안전하게 새와 물고기의 식빵 쟁탈전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파워워킹을 하던 아주머니 그룹도 가던 길을 멈추고 관전 모드로 집중했다. 땀에 절어 러닝을 하던 마라톤 동호회 사람들도 그곳을 지날 때는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돌려 신기한 풍경을 구경했다.
가장 신난 건 역시나 식빵을 흩뿌리던 남자였다. 남자의 얼굴에는 10살 소년의 천진난만한 미소가 가득 스며 있었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가 된 듯 남자의 손놀림에 따라 식빵이 떨어진 곳마다 잉어들이 튀어 올랐다. 남자의 손길이 지난 곳에는 야생 오리들이 날갯짓을 했다. 물 위의 지휘자, 식빵 아저씨… 그는 봉지 속 식빵이 바닥나자 손에 묻어 있던 빵 부스러기까지 알뜰하게 물 위에 털었다. 새와 물고기들에게 보내는 식사 마감을 알리는 사인이었다. 야생 먹방 쇼가 끝나니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남자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 가려던 방향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식탁 위에서 말라비틀어져 가던 식빵 쪼가리가 집 밖으로 나오니 굶주린 동물들의 소중한 먹거리가 됐다. 또한 신나게 식빵을 먹는 동물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이 도시는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줬다. 그뿐만 아니라 식빵 몇 조각은 중년의 남자를 잠시지만 순수한 소년의 시절로 돌아가게 만든 묘약이 되었다.
식빵을 만든 제빵사는 알았을까? 오븐에서 갓 나온 따끈따끈 시절의 식빵은 상상이나 했을까? 자신이 물고기와 새들의 밥이 될 운명이라는 걸. 보통의 식빵들이 그랬던 것처럼 쨈으로 간단히 메이크업을 한 평범한 토스트가 될 거라 믿었을 것이다. 어쩌면 우유와 달걀물 샤워로 부드러움을 더한 우아한 프렌치토스트가 될 거라 상상했을지 모를 일이다. 좀 더 욕심을 부리면 햄, 치즈 등 부재료를 더해 화려한 샌드위치가 되는 줄 알았겠지?
이 비범한 식빵에게는 단순히 인간의 허기를 달래주는 보통 식빵의 운명이 아닌 다른 쓸모가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은 쓸모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 쓸모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빛을 발휘하게 될지 모른다.
자신의 쓸모를 몰라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을 뿐, 상황이 덜 여물었을 뿐. 포기하지 않는다면 머지않는 시간 내에 당신의 쓸모는 분명 빛날 것이다. 보편적 결말이 꼭 나의 결말일 필요는 없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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