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물어봅시다. 잠들기 전에.
나는 오늘 얼마나 걸었나?
아내의 경우,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던 시절에는 하루에 3000보도 안 걷는 날이 있었다. 마찬가지로 운동을 정말 처음 시작하고 다이어트를 간절히 희망하시는 분들에게는 일단 하루 1만 보 걷기를 채우도록 한다. 그러면 본인이 얼마나 적게 걷는지를 깨닫는다.
걷기가 중요한 이유
걷기. 걷는다는 건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독보적인 움직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해부학적 구조와 기능은 두 발로 서서 걸을 수 있도록 진화되고 발달되었다. 두 손이 자유로운 상태에서 걸을 수 있다 보니 인간은 움직이면서 먹을 수도 있다. 덕분에 오래 움직이는데 유리한 근골격계와 대사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걷기는 원초적이다. 바른 자세 걷기를 이야기해야 할 만큼 현대인은 문제가 많아졌지만, 하여튼 걷기는 원초적이다. 기술이 없어도 일단 걷고 움직일 수 있다. 질환이 없다면 어떻게든 오래 걷고, 꾸역꾸역 이동할 수 있다. 군대에서 행군할 때 보면, 진짜 못할 것 같은 허약한 친구들도 결국엔 걷는다. 걷기는 기술도 필요 없다. 그냥 원초적 본능대로 몸을 움직이면 된다.
하지만 이제 걷기는 귀찮아졌다. 굳이 땀나고 힘들게 걸어다닐 필요가 없다. 차를 타면 되고, 킥보드를 타면 된다. 다이어트를 위해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다면, 멍하니 걷는 건 지루해도 자전거를 타면 스타일 나고 재밌다.
태초의 인간처럼 먹거리를 위해 걷고 움직일 필요도 없다. 커피 한 잔마저 배달해주는 시대다. 그나마 밥 먹으러 나갈 때라도 걸었는데, 이젠 그것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집에서도 로봇 청소기가 있으면 안 움직이고 청소할 수 있다. 설비만 잘 갖추면 소파에 누워서 티비, 에어컨, 전등을 다 조작할 수 있다. 리모컨 찾으러 움직일 필요도 없다. 그래서 걷기는 이제 귀찮아졌다.
그러나 무조건 걸어야 한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움직임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차고 씩씩하게 걸을 수 있어야 한다. 쓰지 않는 관절과 움직임은 퇴화되고 없어진다. 20~30대에 벌써 족저근막염이나 무릎 통증이 왜 생길까? 코어가 약해진 것은 코어 운동을 안 해서일까?
아기가 걸음마를 떼기 위해서 요구되는 모든 신체적 요소들은 사실 성인이 운동할 때 유지해야 하는 기초이다. 척추를 좋은 위치에 두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 발과 고관절이 체중을 견딜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사지가 협응이 완벽하게 이루어져 균형을 잡으며 이동할 수 있는 능력.
그런데 오늘날 성인은 척추의 위치를 조절하지 못하기 일쑤고 발바닥 아치는 사라졌다. 한 다리로 균형 잡는 걸 30초도 못 하는 경우도 있다. 안 쓰면 약해지고, 약해졌는데도 안 쓰면 내 것이 아닌 듯 사라진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몸이 쇠약해져도 인간은 원초적인 움직임인 걷는 것은 기억한다. 케틀벨 스윙이나 다운독은 제대로 수행 못 할 수 있어도 걷는건 한다.
그래서 정말 운동을 해야겠는데 도저히 무엇부터 해야 할 지 모르겠다면 걷는 시간부터 늘렸으면 좋겠다. 일단 움직이고 몸을 써 봐야 안다. 불편해도 어디가 불편한지, 힘들면 어디가 힘든지 안다. 하루 종일 안 움직였는데 운동하러 와서 내 몸이 뚝딱 조절되길 바라는 건 정말 어불성설이다. 평소보다 10분, 20분, 한 시간씩 걷고 움직이는 시간을 늘리다 보면 그때 느껴진다.
아… 발이 너무 빨리 피로해지네.
아… 허리가 뻐근하네.
아… 이상하게 어깨가 결리네.
각자 자기에게 익숙한 습관들이 불편한 움직임들을 야기하면서 느끼게 된다. 그럼 여기부터 개선해가면 된다. 종아리를 스트레칭하고 발도 마사지 해주고 발가락으로 가위바위보 하면서 발을 써 본다. 고관절 주변 근육을 스트레칭하고 복부 운동도 하면서 허리 부담을 줄여줄 수도 있다. 가슴을 펴고 목이 앞으로 튀어 나가지 않도록 자주 하늘도 보면서 어깨 주변을 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내 아내와 같은 사람들. 이 운동, 저 운동 찔러보지만 좀처럼 정착을 못 한 사람들. 다이어트를 해야겠는데 시작도 못 하는 사람들. 허리 디스크라며 운동하라고 병원에서 한마디 듣고 온 사람들. 우울감이 심해서 활력을 위해 운동하라고 전문의에게 또 한마디 듣고 온 사람들.
요가 하러 굳이 안 가도 괜찮다. 꼭 케틀벨, 바벨 배우고 쇠질 안 해도 괜찮다. 이건 차차 용기가 생기고 마음에 여유가 생겼을 때 해도 안 늦는다. 선수 할 것도 아닌데.
그런데 걷는 건 해야 한다. 인간이니까. 인간다운 기능을 유지하며 삶의 질을 높이려면 일단 좀 걸어야 한다.
걷기, 나를 ‘리셋’하는 시간
나도 내가 걷기를 운동으로 추천하며 역설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릴 때(지금도 어리다!)는 ‘걷기가 어떻게 운동이야?! 당연히 하는 거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도 하기 어렵고, 너무 안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산다. 그래서 일단 걷는 것부터 시작하자.
요가 하니까 안 걸어도 되고, 케틀벨 하니까 안 걸어도 되고, 뭐 하니까 안 걸어도 된다고? 아니다. 걸어야 한다. 난 걷는 시간을 모든 신체활동에서 나를 가장 일상적인 상태로 리셋하는 연습 시간으로 삼고 있다.
요가를 하면 척추를 과하게 움직인다. 그래서 다시 중심을 잡고 안정적인 상태에서 견고하게 있는 연습을 해야 한다. 무게를 드는 운동을 하면 척추를 견고하게 만드나 척추에 압박감이 커진다. 압력을 완화할 시간이 필요하다. 사이클을 타면 바람을 가르는 청량함은 좋으나 여전히 앉아 있는 셈이다. 정말 두발로 체중을 느끼며 서야 한다.
내 훈련 계획에 따르면 주 3일 정도는 하루에 요가와 근력 훈련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 그때는 먼저 근력운동을 한 뒤 강아지를 산책시키면서 한참을 걷고 쉰다. 그렇게 허리가 가벼워지면서 남은 근육의 장력이 완화되는 것을 느끼면 요가 아사나 수련을 한다. 이 방법은 허리디스크 수술 이후에 나를 더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작년 5월과 6월에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한 후 재활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서 아침 점심 저녁으로 걸으러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균 1만 보를 못 채웠다. 6월에 점진적으로 수업을 재개하면서 그나마 활동량이 늘어나면서 회복이 되었다. 작년 12월 10일에는 백곰이를 가족으로 맞이했다. 백곰이 산책을 시작한 후에야 정말 자주, 많이 걷게 되었다.
핸드폰 보지 않고 풀과 나무를 보며 그냥 걷는 건 그 자체로 명상이 되고 디톡스가 된다. 일상적인 수준에서의 고관절 긴장도 아주 많이 완화되었다. 허리디스크 문제가 본격적으로 발현할 때만 해도 아사나 수련을 아주 많이 하지 않으면 골반 주변이 늘 뻐근했는데, 이 부분도 완화되었다.
다른 변수가 다양하게 있기는 하나 체중 관리도 용이해졌다. 결혼 3년 차 신혼부부에게 가장 큰 행복은 퇴근 후 집에 와서 TV를 보며 야식을 먹는 일인데, 작년에 비해 배도 들어가고 체중도 줄었다. 작년 겨울에는 배가 좀 창피한 수준까지 나왔다.
나는 내 가족들이나, 주변 친구들보다 많이 걷고 움직이는 편이다. 직업 특성상 서 있는 시간도 많고, 자동차도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충분히 걷지 않는 삶을 살아왔던 셈이다.
과거의 인류는 일평균 1만5천 보를 걸었다고 한다. 장담하건대 대부분의 사무직 직장인들은 일평균 8천 보를 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많아 봐야 주 2~3회, 하루 1~2시간밖에 운동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나머지 시간은 내리 앉아있고 누워 있으니 체감할 수 있는 신체 변화는 이러나저러나 드물 것이다.
몸에 무리를 주기도 힘들고, 기술적으로도 어렵다고 느낄 수 없는 걷기부터 인간답게 활력있게 움직여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