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여러 가지 경험을 토대로 글을 남기다 보면 적지 않은 분들로부터 다양한 주제로 연락을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취업을 앞둔 분들이 고민하는 진로, 커리어 초반의 사회 초년생으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질문입니다.
여기서 나누려는 이야기는 ‘라떼는 말이야~’라는 식의 주제넘은 조언이라기보다는, 제가 10년 넘게 한국과 미국에서 일해 오면서 느꼈던, 그리고 개인적인 문의가 올 때마다 거의 매번 공통적으로 건네는 이야기를 간단하게 나누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는 동시에 제가 스스로를 리마인드하기 위한, 나를 위한 조언이기도 합니다.
Be Fresh
입사 후 첫 1–2년은 아주 중요합니다. 신입으로 혹은 경력으로 새로 입사한 회사에 여러분의 시각과 생각을 불어넣을 수 있는 소중한 기간입니다. 신선한 시각으로 회사의 오래된 문제점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또 이를 개선할 역량 및 열정이 있으며,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에 더 나은 방향으로 도전할 좋은 기회입니다.
이를 통해서 역량을 발휘해 보고 싶은 것은 신입이든 경력이든 회사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드는 마음일 겁니다. 하지만 그러던 중에 분명 회사의 누군가는 여러분들의 아이디어를 듣고 ‘에이… 그거 우리도 해봤는데 안 되는 거야.’라는 말로 여러분들의 생각을 멈추게 만들 때가 올 겁니다. 하지만 그 시기에 절대 낙담하지 마시고, 옳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힘을 합쳐서 무언가에 기여하시기 바랍니다.
제 경우에도 삼성전자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고 처음으로 혼자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수억을 써가면서 결과물을 완성한 기억이 납니다. 프로젝트 초반 당시에는 프로젝트가 가져다줄 유무형의 이득을 긍정적으로 기대하는 분들과 그렇지 않았던 분들이 50:50이었으나,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에는 대다수 팀원이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주었고, 그 결과물이 꽤 오랜 시간 동안 디자인 그룹 내에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이것을 저 혼자 해낸 것이 아니라, 제가 추진했던 아이디어가 실제로 구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여러 선배의 귀한 도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아이디어에 제동을 거는 사람들도 있지만, 반면에 여러분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인정해주고 서포트해주는 실력 있는 고참도 회사에 여럿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무언가 갖고 계신다면 우선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참고로 달 착륙을 했던 아폴로 11 우주선을 설계하고 만들었던 엔지니어들의 평균 나이가 28세였다고 합니다. 무모해 보였던 달 착륙이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시니어 엔지니어들의 경험과 노련함보다는 젊은 엔지니어들의 열정과 새로운 생각들이 필요했던 것이죠. 물론 그렇게 추진되도록 기회를 열어준 고참들의 헌신도 있었을 테고요. 회사의 시스템과 문화에 익숙해지기까지 기다리지 마시고, 여러분의 시각과 의견이 가장 날카로운 초반의 1–2년 동안에 어떤 프로젝트에서든지 열정과 실력을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Be Curious, Keep Learning
수년 전에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에서 졸업생 축사를 했던 연설은 지금까지 회자할 정도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많이 담았습니다. 그중에서도 ‘현재 의미 없어 보이는 경험이나 지식이라도, 후에 그것들이 많이 축적되면 서로 연결이 되어서 새로운 지식이나 인사이트를 만들어낸다(Connecting dots)’고 했던 부분은 적어도 제게는 ‘그거 정말 맞는 이야기야!’라고 할 수 있는 보석과 같은 진실입니다. 셀 수 없는 다양한 점(dot)이 지금까지 제 삶 속에 있었습니다.
입시 미술을 전혀 공부하지 않았던, 나름대로 미술과 디자인계에서는 ‘비주류’였던 제가 단지 그림 그리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개인적인 이유로 뒤도 안 돌아보고 디자인 학부를 선택할 수 있던 것(당시에 다른 대학교에는 경제학부나 신문방송학부 같은 곳을 지원했습니다), 당시에는 생소했던 UI/UX라는 분야를 접하고 공부할 수 있었던 기회가 생긴 것, 카투사(KATUSA)로 군 생활을 하면서 영어를 가깝게 익힐 수 있던 것, 60일 정도의 유럽 배낭여행을 통해서 기존에 가진 생각과 가치관이 뿌리부터 통째로 바뀔 수 있었던 경험, 첫 회사 입사 이후에 제품 디자인(Industrial Design) 교육 과정을 통해서 실제 여러 제품을 만든 기회, 회사 내에서 여러 팀을 옮겨 다니면서 디자인과 관련한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던 것, 석사 과정 동안에 얕은 수준의 코딩을 배운 뒤 기존의 디자인 지식 및 경험에 접목하며 다양한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수 있던 것 등…
이 각각의 경험이 당시에는 제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이후에는 기가 막히게 연결되어 여러 다양한 기회들을 운 좋게 잡을 수 있게 해 주었고, 그 과정 중에도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으니, 제게는 연결된 다양한 점이 보물인 셈입니다. 점을 만드는 원동력은 결국 호기심(curiosity)입니다. 저는 나이와 상관없이, 직급에 관계없이 끊임없이 여러 분야에 호기심을 갖고 배움을 지속하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기 원합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 가서 다시 더 높은 수준의 학문을 공부하듯이, 대학교 졸업 후에 직장 생활을 시작하면서는 더 높은 수준의 공부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입사 후에 연차만 쌓이는 소위 ‘짬’이 높은 직장인이 되지 마시고, 끊임없이 자신의 목표에 따라 자기 계발을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여러분의 배움에서 얻는 인사이트들로 인해서 미래에는 그 흩어져 보였던 점이 연결되어 보일 것입니다.
Discover Your Best Role
오래전 초등학교 시절 운동회 때 했던 이어달리기 경주를 생각해보면, 각각 역할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 선수들을 뽑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초반에 스타트가 좋은 친구, 중반에 스피드가 떨어지지 않는 지구력이 좋은 친구, 막판 폭발적인 스퍼트가 좋은 친구들을 고르면서 최고의 팀을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직장 생활도 긴 달리기 경주라고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은 회사라는 커다란 팀 안에서 어떤 역할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낼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제가 디자이너이다 보니까) 일반적으로 회사에서의 디자이너의 역할을 이어달리기 경주의 역할에 비유해서 적어봤습니다.
- First runner: 새로운 것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기 좋아하며, 다양한 시도와 그에 따른 다양한 실패에도 유연한 사람. Dreamer.
- Second runner: 비현실적인 여러 아이디어들을 구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만들 수 있으며, 여러 다양한 제품과 분야에 대한 연결을 잘 시키고 디자인 프로세스 및 프로젝트 계획에 능통한 사람. Maker & Builder.
- Third runner: 실제적인 제품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하며, 디테일에 강하고 프로젝트 매니저, 개발자 같은 다기능 팀원(cross-functional team member)과 끊임없이 토론하고 대화하면서 결국 시장에 제품을 선보이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 Deliverer.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역할이 없습니다. 본인 스스로 가장 빛낼 수 있는 자리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새로 시작하는 커리어 초반 몇 년 동안 여러 가지 역할들을 두루 경험해 보면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공은 결과가 아닌 과정
몇 년 전 영화배우 매슈 매코너헤이가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남긴 소감 중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가 15살 되었을 때 누군가 ‘너의 영웅, 혹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 누구니?’라고 물었고, 나는 ’10년 뒤 나의 모습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10년 뒤 다시 나에게 왔고 또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서 너는 이제 너의 영웅이 되었니?’. 하지만 나는 ‘아직 턱도 없는 것 같다'(Not even close. No, No.)라고 대답했다.
여러분들이 정의하는 성공이 어떤 것인지는 다 다르겠지만 언젠가 성공으로 정의한 것에 도달해 삶에 안주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음에 게으르지 않기를 마지막으로 조언 아닌 조언을 드립니다.
원문: SEH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