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t Me Think의 「«Plato struggled with distraction 2500 years before the iPhone.» A talk with Nir Eyal」을 번역한 글입니다.
LMT: 만나서 반갑습니다. 당신은 『방해받지 않기(Indistractable)』에서 바로 이 기술이야말로 21세기 개인이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방해받지 않기’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그리고 이 능력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Nir: 만약 우리가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자신의 관심을 어디에 집중할지를 결정할 수 없다면, 우리 삶은 무의미할 것입니다. 이들을 결정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딴짓(distraction)’은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은 이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세상 사람을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남의 선택에 맡기는 사람과 ‘아니, 나는 나를 방해하는 요소들에 휘둘리지 않아. 나는 내 시간과 관심, 내 삶을 어떻게 보낼지 스스로 결정하겠어’라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 책 『방해받지 않기』를 쓴 이유는 나 또한 그 문제로 고생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쓴 다음 내 삶의 모든 면이 나아졌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건강해졌고, 마흔두 살인 현재 그 어느 때보다도 체력적으로도 자신감을 느낍니다. 결혼 생활 또한 나아졌습니다. 나는 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생산성 또한 높아졌습니다. 즉 이 능력은 인생의 모든 면에 영향을 줍니다.
LMT: 당신의 전작인 『훅(Hooked)』은 사람들이 습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에 관한 책입니다. 기업가들은 고객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하며, 이는 누구나 자신의 삶의 일부가 되는 제품을 쉽게 사용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스마트폰 중독’을 이야기합니다. 중독(addicted)과 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Nir: 그 질문을 해줘서 고맙습니다. 내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은 늘 내게 이렇게 말하죠. ‘아, 당신이 그 사람들을 어떻게 중독시키는지에 관해 쓴 사람이고만.’ 나는 책 속에 이 책의 제목이 왜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가 아닌지 분명하게 썼습니다. 내 책의 제목은 ‘어떻게 습관을 형성하는 제품을 만들 것인가’입니다. 이는 중독은 말 그대로 질병이기 때문입니다. 곧 누군가가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행동이나 물질에 지속적이고 충동적인 의존성을 가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는 제품을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건 비윤리적인 일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중독시켜야 한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을 중독시키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와 일한 적도 없습니다. 즉 주류회사, 마리화나 회사, 도박 회사, 포르노 회사와는 일하지 않습니다. 내게 자문을 구했지만 내가 응하지 않은 수많은 회사가 있습니다. 게임 회사 중에도 비윤리적인 중독을 유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회사와는 일하지 않습니다. 중독은 무서운 병입니다.
내 책은 습관과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들 좋은 습관을 가지는 방법에 관한 것입니다. 누구도 기업용 SaaS 소프트웨어, 숙제 프로그램, 교육용 앱에 중독되지 않지요. 이건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 그 반대지요. 문제는 사람들이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나 정부가 중소 상인들에게 제공하는 소프트웨어를 써보면 많은 문제를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를 중독시키기는커녕 다시는 쓰고 싶지 않게 만들죠.
내 목표는 게임 회사나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사용자를 끌기 위해 사용하는 기술들을 누구나 좋은 목적을 위해 쓸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습관을 가지게 만들 제품을 개발하는 사람들이 이 기술을 이용하고,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의무감으로 그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해서 그 제품을 사용하게 만들자는 것이지요.
반면 새 책 『방해받지 않기』는 제품 개발자들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책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모두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사람은 중독되어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중독되었기를 원합니다. 사실 그 말을 간절히 듣고 싶어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중독이 있다면, 그 중독을 일으킨 나쁜 사람들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쁜 기술 대기업이 당신을 중독시킨다는 말은 당신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뜻이 됩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말도 되지요. 물론 트리스탄 해리스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이들이 사람들의 뇌를 강탈(hijack)한다고요. 하이잭은 9/11 때 테러리스트들이 한 일이지요.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왔을 때도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게임 ‘캔디 크러쉬(Candy Crush)’가 나를 하이잭했다고 말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보세요. 누구나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는 일에 그런 용어를 쓰는 것은 너무 심한 표현입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를 약하다고 믿는다면, 실제로 약해질 겁니다. 반대로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하면 역시 강해질 수 있습니다.
LMT: 어떤 앱은 특히 많은 비판을 받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의 시간을 뺏습니다. 당신은 소셜 미디어에 어떤 입장을 가졌나요? 우리는 소셜 미디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Nir: 『방해받지 않기』에서 나는 딴짓과 딴짓의 반대를 이야기했습니다. 사람들은 이 딴짓의 반대를 집중(focus)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딴짓의 반대는 집중이 아닙니다. 바로 ‘계획된 행동(traction)’입니다. 계획된 행동과 딴짓은 ‘당기다’는 뜻의 라틴의 ‘trahere’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고 이 두 단어에는 같은 단어, 곧 행동(action)이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즉 당신이 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당신을 끌어당기는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딴짓(distraction)이란 당신을 당신의 계획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당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삶과 당신이 되고 싶어 하는 모습에 도움이 되지 않는 모든 것이 다 딴짓입니다. 즉 어떤 행동이 딴짓이 될지, 계획된 행동이 될지는 당신의 의도에 달린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나는 컴퓨터 게임이 사람들의 뇌를 망친다는 말이 우습다고 생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 이전에는 사람들에게 게임 중독이 질병이라고 말했습니다. ‘자 모두 조심하십시오. 당신의 아이들이 게임 중독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이제 코로나로 외출이 금지되자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게임은 유익한 행동입니다. 모두 게임을 즐기세요.’
이런 우스운 일이 벌어진 이유는 우리가 어떤 기술을 악마화할 때 결국 그 피해를 우리가 입기 때문입니다. 또 진짜 중독에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진짜 알코올 중독에 걸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녁 식사 때 한 잔의 와인을 마시는 사람을 알코올 중독이라 할 수 있을까요? 과거 금주법의 시대로 돌아가 술을 금지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술은 적절하게 사용할 경우 훌륭한 음료가 될 수 있습니다.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 게임과 소셜 미디어를 악마화하기보다는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사악한 거대 기술기업’이 우리의 뇌를 강탈하고 우리를 중독시킨다고 비난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질문은 ‘우리는 이 제품을 나의 계획대로 사용하는가? 아니면 이들 기술 기업이 원하는 대로 사용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들의 제품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다(역주: 이 인터뷰가 실린 Let Me Think는 스마트폰을 더 생산적으로 사용하게 만드는 제품을 팝니다). 소셜 미디어를 확인하는 일이 잘못된 일은 아닙니다. 컴퓨터 게임을 즐기는 것도 마찬가지죠. 나는 자신은 소셜 미디어를 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남들에게도 하지 말라고 말하는 그런 전문가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 전문가들은 오히려 무책임한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기 일을 위해, 생활을 위해 소셜 미디어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니 이 거대 기술 기업이 모든 악의 원조이며 이 기술이 우리에게 해를 끼친다는 두루뭉술한 말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언제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소셜 미디어를 할지를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은 일정을 짤 때 적당한 시간을 여기에 배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이 되면 소셜 미디어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문제도 없습니다. 이는 거대 기술 기업이 내게 이를 강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계획한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코로나바이러스가 만약 30년 전에 발생했다면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우리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정도의 기술을 가지게 된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것이죠. 우리는 이 기술들 덕에 수천 마일 떨어진 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즉 기술은 답이 될 수 있습니다. 무언가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게임을 멈추고 이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LMT: 사람들은 자신이 스마트폰의 몇몇 앱에 대해 나쁜 사용 습관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그들의 그런 습관 중 어느 정도가 실제로 그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러니까 사람들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잘 아는 이들이 우리의 관심을 끌려는 목적으로 만든 앱을 사람들이 사용하면서 감정적으로, 혹은 중독에 의해 고통받는 경우에 말이지요.
Nir: 제가 그 문제에 답을 드리죠. 두 분은 프랑스인이시죠? 지금 프랑스에 살지는 않지만, 어쨌든 프랑스 분으로 압니다.
LMT: 맞아요. 우리 둘 다 프랑스 출신입니다. 🥖
Nir: 나는 프랑스에 불만이 많아요. 그러니까 맛있는 패스추리를 너무 많이 만든단 말이죠 (웃음) 나는 진지합니다. 나는 크루아상을 좋아합니다. 크루아상에 푹 빠져 있죠. 프랑스에 갈 때마다 거리에서 디저트와 패스추리, 그리고 크루아상의 냄새를 맡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빵집에 들어가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지 말아 주세요. 도저히 거부할 수 없군요.’라고 말할 수는 없겠죠.
이걸 제빵사의 잘못으로 몰아서는 안 되겠죠. 그보다는 이를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드는 비용이라고 봐야 할 겁니다. 나는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들을 바로 집 앞에서 살 수 있는 그런 놀라운 세상에 사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즉 그들이 우리를 이용하게 만드는 대신 우리가 그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바로 세상의 발전에 대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비용인 것입니다.
내가 식욕을 참지 못하고 크루아상을 마구 먹어버린다면, 나는 그 대가를 치러야 하겠죠. 기술이나 소셜 미디어를 과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없는 세상을 내가 원해야 할까요? 당연히 아니죠. 좋은 소식은 세상에는 두 분과 같이 기술을 올바르게 사용하려는 기업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나쁜 기술에 대한 해법은 좋은 기술입니다. 이에 대한 폴 비릴리오의 멋진 말이 있지요.
배를 발명한다는 것은 배가 난파하는 비극 또한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아주 적절한 말입니다. 배가 난파한 사건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거의 없을 겁니다. 오늘날 배는 거의 침몰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배를 더 이상 만들지 않기 때문인가요? 아니죠. 우리는 점점 더 많은 배를 만듭니다. 단지 배를 점점 더 잘 만들지요. 물론 처음 등장하는 기술은 배가 난파하는 것과 같은 사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인터넷처럼 광대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부정적인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들처럼 이전 세대의 기술이 가진 문제점을 해결하려는 기업가가 나타나야 합니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늘 해왔던 바로 그 일입니다. 적응하고 또 적응하는 것이죠. 우리는 새로운 위협이 나타날 때마다 적응해왔습니다. 지난 세대의 기술이 가진 문제점을 새로운 세대의 기술로 개선해왔지요. 지금의 문제들 또한 그렇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LMT: 『방해받지 않기』에서 당신은 세상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곧, 평범한 사람과 방해받지 않는 사람 말이지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점점 더 강력한 도구를 가지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이런 구분이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기술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지요.
Nir: 앞으로 우리는 새로운 ‘사회적 항체의 전파(spreading of social antibodies)’ 현상을 보게 될 겁니다. 이는 사회가 어떤 부정적인, 반사회적인 행동을 발견했을 때 이에 대한 일종의 예방접종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그런 불건전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기술에 대해서도 같은 대응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태어난 1970년대, 그리고 1980년대까지 우리 집에는 재떨이가 있었습니다. 거실에 재떨이를 두었지요. 1980년대는 대다수 사람이 담배를 피웠습니다. 남의 집에 가서도 바로 담배에 불을 붙였죠. 남의 집 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유럽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오늘날 미국에서는 누군가 남의 집 거실에서 담배를 피운다면 바로 쫓겨날 겁니다. 그런 행동은 이제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되었지요.
왜 그렇게 바뀌었을까요? 다른 사람의 집에서는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된다는 법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개인적 공간에서 담배를 피워도 됩니다. 바뀐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며, 어떤 행동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가 하는 사회적 기준입니다. 오늘날 이 새로운 기술에 대해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미 이런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방해받지 않는 사무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알려달라며 여러 회사의 초청을 받습니다. 강연장에 들어가면, 제일 뒤쪽에 앉아 자신의 노트북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일까요? 그들은 젊은 사원이 아닙니다. 회사에서 가장 높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너무나 중요한 이메일이 많아서 지금 당장 이를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이들이지요. 젊은 사원들은 이런 행동이 무례하다는 것을 압니다. 서로에게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나이 든 이들은 아직 그런 분위기를 모르지요.
LMT: 오늘날은 감정의 시대입니다. 모든 곳에 감정이 있고, 모든 제품이 우리의 감정을 이용하려 합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일의 중요성과 열정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수많은 철학책이 있습니다. 당신이 『방해받지 않기』를 쓸 때 그런 책들의 영향을 받았나요?
Nir: 내가 딴짓의 심리학을 연구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아이폰이 등장하기 무려 2500년 전인 플라톤 역시 이 문제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리스어로 그는 이를 ‘아크라시아(akrasia)’라 불렀습니다. 바로 자신에게 이롭지 않은 일을 하려는 경향을 말합니다. 즉 플라톤이 페이스북, 컴퓨터 게임, 아이폰이 등장하기 2,500년 전에 이 문제로 고생했다면, 적어도 이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는 이 문제가 최근 등장한 기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인간이 타고난 조건의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아크라시아’를 이기기 위해서는 무엇이 이런 상태를 만들어내는지, 곧 내가 ‘내적 자극(internal triggers)’이라 부르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대다수 딴짓은 외부 자극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핸드폰의 메시지나 벨 소리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자극 때문입니다. 지루함, 불확실성, 공포, 피로, 외로움 등이 그 원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뉴스를 찾고, 술을 마시고, 페이스북을 하고, 축구 경기를 봅니다. 이것은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이야기한 고대의 지혜와 연결됩니다. 바로 불교의 가르침이지요. 괴로움을 깨닫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바로 인간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에서는, 특히 자기 계발 분야의 사람들은 만약 당신이 항상 행복하지 못하고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당신에게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상태를 벗어날 방법을 찾게 만듭니다. 지루할 때 우리는 레딧을 들어가고, 유튜브를 보며, 뉴스를 읽습니다. 외로움을 느낄 때 페이스북에 들어갑니다. 불안할 때 구글에서 무언가를 찾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이들을 사용함으로써 위안을 얻는 어떤 습관을 만듭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런 습관적 행동을 하면서, 과연 우리가 이들을 이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우리를 이용하는 것인지 묻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사실 이들이 당신을 이용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며, 따라서 이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도를 가지고 이들을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충동이나 감정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나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뉴스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재채기를 하고 싶은 기분과 비슷한 것입니다. 재채기가 나올 때 이를 억지로 참을 수 없습니다. 그 기분은 당신의 머리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그 충동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때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재채기가 나올 때 당신은 모든 사람 앞에서 크게 재채기를 하나요? 아니면 휴지로 코를 막나요?
즉, 우리는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결정할 수 없습니다. 그 감정에 어떻게 대응할지만 결정할 수 있습니다. 지루할 때, 어려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가족 모임이 별로 재미가 없을 때 바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바로 스마트폰을 열어서 기분을 좋게 만들어야 할까요? 아니면 이런 충동을 남에게 상처를 주는 방식이 아니라 긍정적인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할까요?
이것이 ‘방해받지 않는 사람’이 되는 첫 번째 단계입니다. 곧, 내적 자극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계발을 위한 조언이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내적 자극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어떤 시간 관리 비법으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할 겁니다.
LMT: 『훅』과 『방해받지 않기』에서 당신은 복잡한 심리학적 원칙들을 단순하게 이론화했습니다. 오늘날 제품 개발자와 마케팅 전문가들은 우리의 뇌에 직접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뇌를 공부합니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어떻게 발전하게 될까요?
Nir: 그 문제는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나도 답을 모르겠네요. 아직은 모두 과학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오늘날, 어떤 증강현실이나 가상현실을 이용한 기술도 우리를 지배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진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무언가를 설득하며, 어떤 것을 밀어붙일 수는 있지만, 우리가 충분히 준비 했을 때도 극복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방해받지 않는 방법을 한 마디로 줄이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충동은 준비성(forethought)으로 이길 수 있다.
딴짓과 미루기는 충동 제어의 문제일 뿐 성격적 결함이라 할 수 없습니다. 딴짓을 하는 그 사람의 문제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그는 그저 이런 충동에 건전하게 대처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지지 못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앞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구상의 다른 어떤 생명체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출처: Cami Dobrin
우리는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린다면 우리는 대부분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게 됩니다. 초콜릿 케이크를 포크로 찍어 입으로 가져간다면, 분명히 당신은 그 케잌을 먹을 겁니다. 담배에 불을 붙인다면, 분명히 그 담배를 피우게 되겠지요. 당신이 스마트폰을 침대 옆에 둔다면,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하는 일은 스마트폰을 확인하는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미리 준비함으로써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딴짓을 못하도록 미리 이를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지난 5년 동안 내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방해받지 않는 사람들 또한 그렇게 많은 의지력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사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렇게 잘 제어하는 이들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위한 시스템을 가졌습니다. 미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곧, 자신이 방해받지 않도록 만드는 단순한 조치를 미리 취함으로써, 어떤 충동이 생겼을 때도 여기에 쉽게 대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과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딴짓을 하지 못하게 막는 시스템을 이미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나 또한 앞으로 어떤 기술이 더 등장할지는 알지 못합니다. 누가 알까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 딴짓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방해받지 않는 이들을 굴복시킬만한 기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LMT: 니르, 오늘 좋은 이야기를 들려줘서 감사합니다. 특히 우리가 하는 일에 당신의 이야기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