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부쩍 관심이 가는 방송인이 있습니다. 바로 ‘동엽신’으로 잘 알려져있는 MC 신동엽입니다. 집에 있다 보니 TV를 보는 시간이 유독 많아지게 되었는데,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꽤’ 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는 수년간 대한민국 대표 MC로 꼽혀오는 유재석과 강호동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예능의 흐름이 ‘야외’와 ‘리얼 버라이어티’로 바뀌면서 신동엽이 설 수 있는 무대가 많이 좁아진 느낌이었죠.
하지만 그는 어느덧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남자 MC가 됐습니다. 무려 7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화려한 방송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황금 요일로 불리는 토요일과 일요일에 각각 2개씩 프로그램을 이끄는 MC는 신동엽이 유일합니다. 주말에만 무려 4개의 프로그램을 맡고 있는 것입니다.
- 불후의 명곡 (토요일)
- 놀라운 토요일-도레미 마켓(토요일)
- 미운 우리 새끼 (일요일)
- TV 동물농장 (일요일)
- 실화탐사대(수요일)
- 공부가 머니(금요일)
- 사랑의 재개발(목요일 예정)
그의 행보에 더 의미가 있는 건 그의 진행 프로그램이 ‘다변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MC는 예능에 치우쳐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신동엽은 예능뿐 아니라 ‘TV 동물농장’과 같은 가족 프로그램, ‘실화 탐사대’와 같은 시사교양 프로그램까지 진행하며 다양한 영역에서 최고의 진행 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스튜디오 방송만 고집하는 걸로 유명해 ‘대세’에 뒤쳐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어떻게 다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명MC가 되었는지 말이죠. 제 주관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신동엽의 의미 있는 고집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는다
예능 프로그램은 ‘1박 2일’과 ‘무한도전’의 등장으로 인해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두 프로그램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실 실내 스튜디오가 예능 프로그램의 주 무대였습니다. 정해진 대본을 토대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았죠. 그만큼 철저히 통제 가능한 환경 속에서 촬영이 진행되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1박 2일’과 ‘무한도전’이 큰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예능 판도가 순식간에 바꼈습니다. 야외에서 진행하는 예능이 많아졌습니다. 실내 스튜디오가 채우지 못했던 다양함이 야외의 변화무쌍하며 다채로운 장면으로 채워졌죠. 또한 대본 대신 리얼한 상황에서 애드립으로 진행하는 ‘리얼 버라이어티’가 예능 대세 장르로 떠올랐습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도 꿋꿋하게 스튜디오 방송을 지켜낸 MC가 바로 신동엽입니다. 강호동이 <1박 2일>로, 유재석이 <무한도전>과 <런닝맨>으로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 예능의 전성기를 이끌 때, 신동엽은 그 흐름에 합류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그런 신동엽을 보고 대세에 뒤처졌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대세 중 대세인데, 왜 그런 흐름에 편승하지 않느냐고 말이죠. 바뀌는 예능 흐름을 쫒아가지 못한다고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쩌면 신동엽 스스로도 불안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예능 프로그램이 ‘야외’와 ‘리얼’로 가고 있는데, 자신에게도 새로운 도전이 필요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죠.
하지만 신동엽은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은 채,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자신의 프로그램을 묵묵히 오랜 기간 이끌어 왔습니다. 그 결과 그는 유독 장수 프로그램을 많이 가지게 되었습니다. SBS <TV 동물농장>을 20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KBS <불후의 명곡>은 2011년 이후 10년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년에 폐지된 KBS의 장수 프로그램 <안녕하세요>도 9년이나 이끌었죠.
물론 그가 진행했던 프로그램 중 <무한도전><1박 2일>과 같이 신드롬을 일으키는 수준의 프로그램이 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리얼 버라이어티 외 다른 장르의 TV 프로그램을 원하는 시청자를 위해 매주 최선을 다해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는 동안 점차 내공이 쌓였고, 그는 스튜디오 프로그램 진행의 명불허전 1인자가 됐습니다. 신규로 기획되는 스튜디오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 진행자로 신동엽은 방송가에서 늘 섭외 1순위로 꼽혔습니다. 모든 MC가 야외로, 그리고 리얼 버라이어티로 떠날 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한 덕분에 오히려 신동엽은 ‘스튜디오’ 방송 전문 진행자라는 경쟁력을 가지게 된 거죠.
신동엽을 보면서 한 가지 느낀 점이 있습니다. 모두가 가는 길에 꼭 나도 합류 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대중과 시대가 원하는 것은 분명 있고, 그것에 영합하는 것이 연예인 그리고 창작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잘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 없이 그저 대세를 따르기 위해 길을 나서는 것은 어찌 보면 불필요한 곳에 힘을 쏟게 되고 시간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냉철하게 파악하다
신동엽은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연예인입니다. 그의 장점은 조목조목 말하며, 느린 호흡으로 끌어가는 입담입니다. 다수의 PD도 이 능력만큼은 신동엽을 따라올 수 있는 자가 없다고 말합니다.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게 아니라 천천히 이해하기 쉽게, 그러면서도 마지막에는 늘 유머 포인트를 넣어 유쾌하게 멘트를 마무리하는 능력. 신동엽이 가장 잘하는 일입니다.
그는 못 하는 것에 대해서도 스스로 냉철하게 평가를 내립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의 치명적인 단점은 ‘목소리’라고 밝혔습니다. 목이 빨리 피로해지고 상하기 때문에 큰 목소리를 장시간 외쳐야 하는 야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은 자신과 맞지 않다는 판단을 빠르게 내렸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신을 계속 쫓아오는 카메라에 대한 부담감도 존재한다고 털어놓기도 했죠.
제가 목이 약해서 야외 버라이어티를 하지 못 한다. 유재석이나 강호동씨처럼 야외에서 힘있게 하는 것을 못 한다. 목소리뿐만 아니라 다른 것도 많이 부족하지만 목 때문에 실내에서 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 영화 <앵그리버드 더 무비> 인터뷰 중
이처럼 자신이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명확하게 파악한 뒤, 단점을 최소화하고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튜디오’ 방송에 올인하게 됐습니다. 자신이 못하는 것을 무리해서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잘하는 것을 최고의 경쟁력으로 키우기 위한 똑똑한 선택을 한 것이죠.
그 덕분에 그는 지금 스튜디오 방송 진행의 1인자가 됐습니다. 그는 어떤 스튜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해도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MC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MC가 야외 리얼 버라이어티에 집중하며 예능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방송 포트폴리오를 쌓을 때 그는 예능, 교양, 음악, 가족 프로그램 등을 아우르며 스튜디오에서 진행하는 모든 방송에 최적화된 MC로 성장하게 됐습니다.
적은 리소스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다
야외 방송은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이 들어갑니다. 특히 리얼 버라이어티의 경우는 정해진 대본이 없기 때문에, 방송 분량이 충분해질 때까지 촬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장시간 촬영이 이어지게 되고, 이 과정에서 큰 체력적 소모가 발생하면서 촬영이 끝난 뒤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진행자 입장에서는 맡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 제한되기 마련이죠.
이에 비해 스튜디오 방송은 리소스가 야외 방송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어느 정도의 진행 대본이 존재하고, VCR 화면이 미리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방송 분량은 어느 정도 확보가 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VCR 화면을 서로 잘 이어주는 매개자 역할에 충실하고, 게스트와 다른 패널이 잘 얘기할 수 있도록 해주면 MC로서의 역할은 다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체력적 소모도 야외 방송에 비해 적은 편이고요.
그 덕분에 신동엽은 일주일에 7개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진행자로서 최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적은 리소스로 최대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는거죠. 그렇다고 과소비되는 느낌도 아닙니다. 이는 예능뿐만 아니라 시사교양, 음악, 가족 프로그램 등 프로그램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해둔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참 똑똑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의도한 것은 아닐 테지만, 자신의 리소스로 최대의 퍼포먼스를 낼 줄 아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있다는 것이니까요.
마치며
저는 요즘 신동엽을 보며, 자신이 잘하는 일을 꿋꿋하게 오래 지켜온 사람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빠르게 바뀌는 예능 트렌드 속에서 자신의 단점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도전에 대한 압박을 받으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장점을 더 극대화하여 스튜디오 방송 진행의 1인자가 된 사람입니다. 대세를 따라야 할 때도 분명 있지만, 그 대세가 내 옷이 아니라면 몸을 욱여넣어 옷에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방송에서 느껴지는 ‘지겹지’ 않은 느낌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만의 호흡, 자신만의 문법으로, 자신의 장점을 극대화한 것이 신동엽이 스튜디오 방송의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