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유력인사들의 안희정 모친상 조문을 둘러싼 논란에서, ‘어쨌든 사람 된 도리로 모친상에 조문을 가는 게 당연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제법 많다. 내 생각에 그런 반응은 비판론의 핵심 논리를 읽지 못했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판론에서 가장 중요한 논지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정권 유력인사들의 안희정 모친상 조문이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그들 간의 ‘사적인’ 인간관계의 차원에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정치적 대표들의 ‘공식적인’ 행사로 치러졌고 또 그렇게 연출/보도되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쉬운 말로 풀어보자. 조문객들이 사적인 친분관계에 의거해 개인 자격으로 조용히 오갔다면, 더불어 언론 보도를 사절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밝혔다면 많은 사람이 달가워하지는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화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름이 박힌 조문 화환을 포함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정권의 주요 인사·공직자로서 조문을 행하고 있음을 전혀 감추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조문객들 스스로가 이 자리에 정치적이고 공적인 성격을 부여해버린 것이다.
망자에 대한 애도가 그 자체로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도의 마음과 별개로, 조문은 어떤 의복을 입고 어떤 자세를 취하느냐와 같은 형식적인 차원이 무척이나 중요한 고도로 사회적인 행위다. 예컨대 우리는 총천연색의 화려한 옷을 입고 크게 떠드는 조문객을 보면서, 그가 설령 진심으로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다 할지라도, 무척이나 부적절한 모습이라고 판단한다—진정성 못지않게 어떤 형식이냐가 중요한 행위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조문이다.
조문객들이 자신들의 공인·유력자로서의 자아를 전혀 감추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런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들은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자신들의 조문을 공적이고 정치적인 행위로,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안희정에 대한 공식적인 지지·연대의 뜻을 품은 것처럼 오해될 수 있도록 만들어버렸다. 이러한 측면을 보지 않은 채로 ‘조문이 잘못되었다니, 그럼 인간적인 도리도 뭉개버리라는 거냐’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사태의 핵심을 외면한 채로 논란을 더 키울 뿐인 어리석은 선택에 불과하다.
더불어 이 상황에는 조문 옹호자들의 ‘인간의 도리’론으로는 전혀 해소되지 않는 좀 더 복잡한 정치적인 난점이 잠재하고 있다. 무엇보다 안희정의 존재는 현 정권의 ‘페미니즘적’ 기조 및 젊은 여성층의 지지에 불안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위험으로 남아 있다. (2030 남성들의 낮은 정권 지지율을 벌충하는 것이 2030 여성들의 높은 지지율임을 고려하면, 후자의 여론이 정권에 갖는 중요성은 절대로 과소평가될 수 없다.)
정권에는 다행스럽게도, 안희정은 성폭행 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독자적인 노선을 천명한 정치인으로 분류되었고, 그가 최종적으로 성폭행 유죄판결을 받으면서 정권은 페미니스트들, 혹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더라도 성폭력에 무척이나 민감한 여성 지지자들과의 갈등을 키우지 않을 수 있었다.
종종 정권 지지자 중에 ‘안희정이 무죄를 받았다면 민주당의 정치적 자원이 더욱 풍부했을 것’이라고 믿는 분들이 눈에 띄는데, 안희정 무죄판결이 여성 지지층에 얼마나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왔을지, 정권이 그것이 초래했을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얼마나 머리를 싸매야 했을지를 고려하면 그런 망상은 정치적으로 저능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우리가 이후 다음/카카오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볼 수 있듯, (안희정 관련 기사 댓글 창에서 의사를 표현하는) 다수의 정권 지지자들, 혹은 안희정 지지자들은 지금도 성폭행 판결을 부인하면서 안희정을 ‘꽃뱀에 물렸을 뿐인 불운한 희생자’로 추켜올리는 행태를 반복한다. 물론 누군가가 끝까지 안희정의 성폭행 유죄판결이 충분한 증거를 결여한 부당한 판단이라고 믿는다면, 어차피 현재 주어진 근거만으로는 서로를 설득하기가 어려운 만큼 더 논의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역시나 충분한 근거가 없는 채로—혹은 일방의 근거만을 채택한 채로—성폭행 피해자가 안희정에게 죄를 덮어씌운 ‘가해자’라고 공개된 영역에서 모욕을 퍼붓는 것은, 그리고 다수의 사람이 이 모욕에 동참하는 것은 매우 다른 이야기다. 안희정이 유죄판결을 받고 복역 중인 상황과 별개로, (정권 지지층으로 추정되는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여전히 안희정은 불륜을 저질렀을 뿐이라며 성폭행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이 반복되는 한, 정권과 (성범죄와 2차 피해 문제에 매우 민감한) 여성 지지층의 관계가 악화할 불씨는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 유력인사들의 조문은 어떻게 해석될 수 있을까? 자신들과 안희정이 여전히 ‘인간적인 관계’임을 한 명의 정치적·공적 행위자로서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데 어떠한 거리낌도 없는 태도가 정치적인 해석을 피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실제 조문객들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이번 조문의 형식은 안희정이 여전히 ‘우리 동지’의 한 구성원이며 그런 동지애의 관계가 어느 여성의 성폭행 이슈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는 이야기처럼 읽힐 수 있다. 다른 자리에서 여성과 페미니즘이 중요하다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여전히 그런 것보다는 ‘동지애’를 공식적으로 과시하는 일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물론 나는 조문객들이 실제로 여기까지 의도하여 안희정을 공공연하게 응원하고 복권시키고자 한다고까지 해석할 이유는 특별히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진짜 잘못은 그저 자신들의 특정한 행위가 어떠한 정치적인 의미를 지니는지 질문해보지 않았다는 것, 혹은 (586과 그 후계자들이 종종 그런데) 자신들보다 노회하고 교활했던 선배들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에 여전히 둔감하다는 데 있다.
마지막으로, 안희정 조문 건을 둘러싼 비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정권 옹호자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선택지는 무엇일까? 가장 쉽고 실용적인 길은 그냥 논쟁이 발생지지 않도록 침묵하여 아예 논란의 불씨를 잠재우는 방법이다. 논란은 아직 몇몇 사람의 분노를 자아내는 수준일 뿐이니만큼 별다른 충돌이 없다면 머잖아 사그라들 것이다.
여성층의 정권지지율이 흔들릴 가능성은 다행히도 아직은 크지 않다. 미래통합당은 여전히 퇴물정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며, 정의당은 안티 페미니스트들이 당내의 영향력 있는 공식적인 그룹으로 남아 있다. 그에 비해 가끔 어설플지라도 확실하게 여성 친화적 정책 노선을 천명하고 있으며, 여초 카페 여론주도층의 막강한 지지를 받는 더불어민주당이 젊은 여성층의 지지를 독식하는 현황은 쉽게 바뀌지 않을 듯하다.
그 선의와 성실성에도 현 정권에 한 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부동산 정책에서처럼 건드려 봐야 손해만 보는 영역에 반복적으로 뛰어들어 애초에 시도하지 않으니만 못한 결과를 굳이 초래하고야 마는 때가 있다. 정권의 안위를 걱정하는 지지자들이 그런 어리석음까지 모방할 이유는 없다.
다른 한 가지 길은 모친상을 조용하고 엄숙한 비정치적인 자리가 아니라 마치 정치인과 정치인이 회동하여 위세를 떨치는 장으로 만든 안희정을 비판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그가 철저하게 사적인 조문만을 받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면 (풍부한 경험을 갖춘 정치인인 그가 이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이 모든 논란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의 사태가 아직 일부 사람들의 불편한 마음의 표명 정도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까닭은, ‘성폭행범’이 정치인으로서 복권되지 않으리라는 합의와 믿음이 지지층 전반에 공유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만큼은 기억해야 한다. 안희정이 민주당에서 정치인으로 재기하는 순간, 우리는 다양한 입장으로 쪼개진 민주당 지지층들이 서로를 원수처럼 물어뜯고 함께 파멸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광경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능동적인 지지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런 끔찍한 미래가 도래하지 않도록 미리 싹을 쳐 두는 일일 것이다
한 가지 사소한 부탁을 더하자면, 여전히 안희정에 미련을 못 버린 주변의 아저씨들이 피해자를 공공연히 모욕할 때 그분들께 그냥 좀 닥치고 있으라고 말해주면 무척 고맙겠다.
원문: 이우창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