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
나는 글을 쓸 때 ‘딴짓’을 많이 한다. 제목을 써놓고 멀뚱하게 앉아 있거나, 괜히 책상 주변을 정리한다. 때론 손톱을 물어뜯기도 하고, 음악을 틀거나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고 온다. 이런 딴짓을 하지 않고 온전히 집중하여 글쓰기를 완료하면 좋으련만, 삶은 그리 녹록지 않다.
다행스러운 건 어찌 되었든 간에 글쓰기는 완성된다는 것이다. 딴짓한 것에 후회를 하곤 하지만, 어쩌면 딴짓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이를 ‘욕구불만의 회피’로 설명한다. 다시 시작하는 재출발 방법의 일종으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게 해주는 방어기제다. 구글의 사무실에 탁구대가 있고, 일반 회사에도 믹스 커피 마실 공간이 있는 이유다.
‘사이드 프로젝트’
요즘은 딴짓이 ‘사이드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탈바꿈되고 있다. 같은 뜻으로 보이지만, 그 경중을 파고들면 느낌이 좀 다르다. 딴짓은 가벼워 보이지만, 사이드 프로젝트는 좀 무겁고 계획된 무언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공부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중요한 보고서를 만들다 잠시 쉬는 딴짓이 아니라, 내가 하고 있는 본업 외에 다른 일을 한다는 개념으로의 사이드 프로젝트는 그 범위가 좀 더 넓다. 더불어 경제적 상황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이를 더 종용하곤 한다.
저성장의 시대와 부의 양극화. 고착화돼버린 시대에 고만고만한 월급으론 부자가 되기 힘들고,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현실에서 평생직장이란 말은 사라졌다. 어서 빨리, 내가 잘하는 것을 찾거나 지금 하고 있는 ‘직업’을 ‘업’으로 바꾸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딴짓의 조건
딴짓은 도움이 된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에서,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그것은 한바탕 휴식이 되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
그러나 뭐든지 과하면 좋지 않다. 더더군다나 딴짓은 비효율적인 것으로 쉽사리 치부되기 쉬운데, 일정 선을 넘어버리면 정말로 비생산적인 아무것도 아닌 일, 혹은 오히려 현재의 나에게 마이너스를 안겨다 주는 치명적인 것이 된다. 모든 것이 빠르고 각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는 실상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게 그리 추천할만한 일이 아니다. 더 문제는 그것으로부터 오는 자괴감 때문에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도움이 되는 ‘생산적 딴짓’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어떠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생각하고 있다면 다음을 유념해야 한다.
1.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여행은 우리 삶의 가장 즐거운 딴짓이다. 무료한 일상을 떠나 만끽하는 다채롭고 새로운 경험은 그야말로 삶의 활력소가 된다.
그러나 여행이 지속되면 고단하다. 오죽하면 ‘여독(旅毒)’이란 말이 있을까. 여행을 하면 할수록 우리는 일상을 그리워하게 된다. 무료해서 떠났지만, 무료함이 주는 안정과 소중함을 우리는 깨닫는다. 어쩌면 그 단순한 걸 깨닫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지 모른다.
딴짓은 이처럼 돌아옴을 전제로 해야 한다. 돌아오지 않으면 일탈이자 방황이 된다. 내가 있는 곳에서 중심을 잡고 딴짓을 해야지, 중심 없이 이것저것 하는 게 딴짓이 아니다. 그러니 내가 원래 가고자 했던 방향과 원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항상 상기해야 한다.
2. 본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는 딴짓이 나의 직업을 ‘업’으로 만드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본업은 중요하다. 내 생활의 중심이다. 대부분은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것이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가능하게 해 줄 것이다. 먹고사는 것을 해결해야 하기 위해 하는 ‘해야 하는 일’들엔 셀 수 없는 배움들이 있다.
그러니 딴짓을 하려면 중심을 잡아야 한다. 딴짓이나 사이드 프로젝트가 ‘본업’이 되기 전까진,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더불어 지금 하는 딴짓은 본업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본업도 잘 돌아가고 딴짓도 잘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엔 본업인 ‘해외 영업 마케터’라는 직업에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생산자’ 프로젝트를 위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책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지만, 조건은 내 본업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 진행한다는 것이다. 내 글의 소재와 깨달음, 그리고 사람들 앞에 설 수 있는 자신감은 본업에 대한 자부심이다. 본업이 제대로 안 풀리면 나는 사람들 앞에 서면 안 된다.
그러나 어느 순간 본업이 일상처럼 느껴지고 무료해질 즈음, 글과 강연을 통한 여행을 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 그리고 직업과 업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본업과 딴짓의 선순환 구조인 것이다.
3.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딴짓은 나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누구를 위하거나, 돈만을 목적으로 한다거나 하면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지치기 때문이다. 딴짓이나 사이드 프로젝트가 당장 돈이 되느냐, 다른 사람을 어찌할 수 있느냐보다는 내가 만족하고 즐거워하는지를 먼저 봐야 한다.
즐겁지도 않고 보람도 없으며, 설레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에게 맞지 않는 여행이다. 스스로 움직이고 깨달음과 경험을 얻는 것이 나를 위한 진정한 ‘딴짓’이다. 남이 하니까,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조급한 마음에 많은 것을 시작하려는 불안을 없애야 한다.
내가 시작하려는 그 일에 내가 있는가? 내가 바라는 나와 만들어내고 싶은 생산물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끝에,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가?
나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어야 한다. 자칫 무언가 열심히 하려다 그 안에 내가 없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삶은 고달파지고, 몸은 혹사되며 마음은 멍든다. 내가 나를 위해 사는 건데 내가 없다니. 우스워 보이지만, 생각보다 자주 그런 삶을 살고 있다.
딴짓과 사이드 프로젝트는 거창할 필요 없다. 잠시 주위를 환기시키고, 결국 나에게로 돌아올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쉽게 말해 계속되는 상황에서의 휴식이며, 무료한 마음을 달래주는 새로운 다짐이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아는 힘. 그리고 나의 능력과 한계를 견주어도 볼 줄 아는 용기. 지혜로운 딴짓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나를 위한 도전이 될 것이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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