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내 트위터 프로필에 넣은 문구가 있다.
기회는 공정하게, 과정은 정의롭게, 결과는 평등하게.
당연하게도,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듯한 말, 문재인 정권의 표어인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의 변용이다. 부정부패의 사회를 벗어나 능력주의를 지향하자는 정도로는 심히 부족함이 이미 노무현 정권 시절 드러났고, 두 텀 아니 한 텀 반 동안의 “보수” 정권 동안 뼈저리게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특히 박2 정권이 워낙 THE부패로 퇴화해버린지라,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도 우선 저 수준부터 다시 세워야 할 지경이었을 뿐. 허나 정작 오늘날의 사회구조 변화에서(예: 저성장 불평등 고착 위기, 온갖 방향에서의 “내가 무슨 기득권이라고” 항의, 격화되는 타 집단 차별 외) 필요한 진보는, 좀 더 나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우선 하나. 사회적 필요에 따른 적극적 조율에 입각한 기회 제공. 예를 들자면 발상 다양성이나 다양한 사회층 반영을 위한 적극적 쿼터 부여 같은 것. 또는 제도 어뷰징을 막기 위한 유연성. 또는 그간 체계적으로 피해받아왔던 계층이나 집단을 대등한 장으로 끌어오기 위한 보상적 조치. 그것이 바로 시민들이 사회의 대등한 성원이어야 한다는 민주제의 공정함, 공평하게 올바른 상태다.
또 하나. 과정 자체에서 지속적으로, 원칙적인 정의는 구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 기회니 과정이니 결과니 하지만, 현실은 순환과정인지라 하나의 결과가 다음 사안의 기회가 되곤 하다 보니 결국 사회적 경험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 바로 “과정” 그 자체다. 어떤 올바른 원칙이 실현되고 있다는 안정감, 그 안에서 각자와 서로의 존엄을 추구해도 되겠다는 동기부여는 바로 과정의 정의감에서 나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의 격차 줄이기. 결과의 격차가 하염없이 거대해지는 극단적 빈익빈부익부의 상태에서 사람들이 나아갈 유일한 합목적적 경로는 개미지옥밖에 없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게 하고, 큰돈에는 큰 세금이 따르게 하는 사회적 설계는 공정함에 대한 상상이나 정의의 느낌과도 직결된다.
‘사회가 한두 가지 최적화 성공 경로로 압축되어버리기에 발생하는 집단적 망함의 나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결과의 격차를 합리적인 선으로 줄이는 접근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의 결과적 평등. 그걸 압축한 게 바로 위의 문장이다. 너무 많이 압축한 것 같다. 물론 이런 이상한 표어로는, 대중의 사랑을 받아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원문: capcold님의 블로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