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직장인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공채, 몇 기의 논리는 통용된다. 첫 직장이었던 중앙은행은 은행과 관료조직의 문화가 기묘하게 결합된 곳으로 은행들의 경직적 기수/공채 문화와 관료조직의 입사성적 순위가 이후에도 관철되는 그런 곳이었다. 경력직은 아무리 오래 일하더라도 기껏해야 외부인으로 남는다. 참고로 나는 그곳 공채 출신.
대체로 공기업이라면 주인이 없기 때문에 공채들은 자신들이 곧 주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자신은 험난한 길을 뚫고 여기에 도달했으니 금전적 보상은 응당 그러한 자에게만 주어져야 한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보상이 결국 국가가 보장한 독점권에서 나온다는 인식에는 이르지 못한다. 아니, 그것을 거부한다.
중앙은행이라면 화폐 발행의 독점권일 것이고, 인천공항공사라면 공항이라는 자본일 것이다. 독점의 형성에는 기여한 것이 하나도 없으나 결과는 전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공기업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고위 관료도 마찬가지고 독점적/과점적 권리를 부여받은 은행도 마찬가지다.
2년 해외연수, 국제기구 근무, 퇴직 이후의 낙하산, 로펌 취업(이라고 쓰고 로비스트라고 읽는다)은 고위 관료들의 교과서적인 커리어다. 은행은 몇억씩 명퇴금을 주고서라도 남는 인력을 내보내려고 애쓴다. 그래놓고 지점에서는 야근이 많다고 아우성친다(그나마 52시간제 이후에는 조용한 듯).
그러나 신분을 허용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시험 하나 통과했다고 평생을 해당 직장에 다니거나 높은 연봉에 호봉제까지 보장받을 수는 없다. 말 그대로 염치가 있어야지. 모두는 자기의 퍼포먼스에 따라 평가를 받아야 하지 조직의 퍼포먼스는 보조적이어야 한다. 공기업의 상대적 고소득과 정년보장을 방치하고 있는 정부도 사실상 공범이다. 부처의 손발로 써 먹기 편하고 나중에 낙하산으로도 갈 수 있기 때문이리라.
독점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라고 머스크가 일갈한 적은 있다. 그러나 그 독점이 고작 시험에서의 고득점에 근거한 것이라면 논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이래저래 취약하다. 물론 한국인은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에 입사 시험에 호소하는 것은 아주 훌륭한 전략이다. 그러나 공기업에 다니는 40대, 50대 사람들을 보라. 그들이 그만큼의 연봉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
게다가 작금에 문제가 되는 인천공항공사는 더욱 우스운데, 그 엄청난 이익이 공사직원의 퍼포먼스와는 거의 무관한 면세점 판매 이익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따이공과 관광객의 호주머니에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