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의 회고록이 나왔을 때 나는 가능한 한 언급을 피하려 했다. 가장 큰 이유는—물론 모든 회고록이 전반적으로 그렇겠지만—미국에서 정치와 관련된 회고록들의 주된 내용이 “저자는 잘했다.” 혹은 “저자는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었기에 이렇게 했다.”와 같이 저자의 행위를 변호하는 내용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게 뭐가 문제일까. 자기 자랑하는 게 뭐가 나쁠까 싶지 않나. 그럼에도 그 변호행위에 한마디라도 얹는 것을 피하려 했던 이유를 한번 이야기해 보려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 존 볼턴은 단순히 미국 보수 정치계, 그중에서도 매파의 수장이다, 네오콘(neo-conservative)이다, 혹은 과격한 주전파다 뭐 이런 식으로 단순한 도식으로 범주화되어 알려져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실 볼턴과 그가 속한 정치 세력인 네오콘의 지지기반은 지역사회에 상당히 뿌리 깊이 자리 잡았다고 보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2년 전에 시카고 외곽의 그렌뷰(Glenview)라는 곳에 있는 호텔에서 1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와 공화당 보수 세력을 위한 모금행사를 하던 것을 아주 우연히 경험했다. 그뿐 아니라, 당장 내가 사는 도시의 길거리에서 공화당, 엄밀히 말하면 존 볼턴과 네오콘을 지지하는 행사들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었다.
볼턴의 회고록이 담은 내용은 내 예상—솔직히 이 정도 예상 못 할 사람이 있었을까—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를 변호했고, 네오콘을 대변했으며, 그의 스탠스야말로 미국을 위대하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는 것 정도로 축약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러니 당연히 책의 내용에서 트럼프는 ‘위대한 미국’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그런 방해 요소로 작동했던 것들이 무엇이었냐를 말하는 게 이 책의 내용일게 당연하다. 아주 극단적으로 그리고 한국식으로 말하면 “꼬리 자르기”다. 트럼프는 보수주의적 가치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존 볼턴이 이 책을 누구에게 팔기 위해 적었을까?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주된 소비자는 미국인, 그중에서도 보수주의자, 그중에서도 가장 극렬한 네오콘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나는 잘했어. 그런데 이러이러해서 못했어. 그게 누구누구 때문이고 무엇무엇 때문이야.’ 이게 전형적인 미국적 사고이고 논리 전개의 방식이다.
위대한 미국 만들고 싶었어. 근데 안 됐네? 나, 우리 네오콘의 방식은 옳단 말이지. 그렇다면 우리를 방해하는 건 무엇이었을까? 즉 철저히 미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논리다. 그리고 사실 그게 어찌 보면 진정한 보수주의이기도 하고. 그렇기에 그가 옳다고 생각하는 보수적 가치는 한마디로 미국이 방향타를 쥐고 흔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기에 그가 한반도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똑같다.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 모든 문제는 미국이 해결해야 하고 중심에는 미국이 있어야 한다는 거다. 그렇기에 그는 ‘문재인은 우리 미국의 외교에 훼방을 놓았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게 먹힐 수 있는 건 앞서 말했듯이 글은 철저히 네오콘을 변호하기 위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변호를 위해서라면 상대의 잘한 것을 우리에게 피해준 악랄한 행동으로 깎아내리는 것이 당연한 논리 전개 수순이다.
반대로 말하면, 이 책 내용은 한국이 얼마나 외교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력했는지 보여주는 반증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이 과도하게 해석될 경우 심각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는 소위 과도한 ‘국뽕’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고, 두 번째는 트럼프 비판에 동조하며 네오콘의 이런 논리에 수긍함으로 인한 미국식 극우주의에 대한 동정이 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극우 유튜버들과 일부 특정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두 번째 우려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것이 보인다. 본질적인 문제는 제대로 책도 읽지도 않았고, 거짓 내용으로 사람을 선동한다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이런 극우주의로 점철된 자기변호가 사람들에게 퍼지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참고로 유튜브 채널 ‘헬마우스’에서 이 사안을 다룬 영상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더 자세하게 다루어줬다. 너무 고마워서 공유. 아래 링크를 꼭 한번 보시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