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 알바를 다 해보았다. 스물한 살 때였을까, 나는 학교를 잠시 휴학하고 알바를 구했다. 나름 틈틈이 공부도 해야겠단 생각에 고른 곳은 ‘보안 근무’였다. 그가 2004년쯤이었는데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대략 140 정도의 월급을 손에 쥐여준 것 같다. 당시로 치면 많이 쳐준 액수였지만 따지고 보면 많지는 않았다. 일하는 시간이 워낙 길었기 때문이다.
당시 근무는 ‘주주야야휴’로 돌아갔다. 5일에 한 번씩 쉬니까 많이 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오전 8시까지의 야간 근무를 마치고 9시쯤 몸을 누이고 일어나면 보통 4~5시가 되었다. 다음 날 아침 8시 근무를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사실 쉬는 날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따금 ‘주주야야휴휴’같은 날이 돌아온 적도 있었는데 그것도 고참들에게 우선 배정되었고 신입 알바생에겐 꿈 같은 거였다. 휴가도 쉽게 쓸 수 없었다. 빽빽한 스케줄 속에서 내 일정을 맘대로 바꾸면 다른 근무자들도 다 조정해야 한다. 신참이 용기를 내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국공(그냥 인천공항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 줄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안 근무자들의 정규직 전환 문제로 시끄럽더라. 일에 치여 관심을 두지 않다가 찾아보니 연봉 3,800 정도 된다더라. 많으면 많다고 볼 수 있는데 아까 말했든 보안 근무자는 절대 근무시간이 길다. 야간 근무도 전체 근무의 절반 가까이는 할 거다.
야간 수당에 주말근무 수당 이런 거 저런 거, 요새의 최저임금까지 다 고민하면 아마 저게 ‘최저선’이긴 할 거다. 저 이하로 주게 되면 법에 뭔가 걸릴 거다. 인천공항 보안 근무자들이 ‘노력도 안 하고 저 돈을 받는다'(는 말이 옳은지는 차치하고)고 하기에는 그들이 대단히 큰돈을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안전망 구축을 전제로 한 고용 유연화를 지지한다. 소위 한국에서 통용되는 ‘진보적 가치’, 모두가 정규직이 되고 모두가 동일 임금을 받는 것 같은 이야기들은 별로 솔깃해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비정규직으로 만들고 기업에게 언제든 해고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하는 건 아니다. 안전 관련 업무는 계약을 어느 정도 강제하고 책임 소재를 회사 측에 두게 하자는 주장에도 역시 동의한다. ‘하도급 업체에 모든 책임을 전가해서 발생하는 사고들’이 구조적 문제라는 주장에도 동의한다. 그래서 안전 관련 업무들을 직고용으로 전환한 게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20대들의 ‘공정론’을 마냥 질타할 생각은 없다. ‘저들이 내 신분와 같아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마냥 천박하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진짜 천박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저들이 ‘대학 가고 공부하고 시험 치고 들어 온, 혹은 그러려고 하는 당신’과 같은가. 아마 저들은 평생 ‘보안 및 안전’ 직렬을 벗어날 수 없을 거다.
공채로 당당히 입사한 누군가는 고객관리 직렬에 있다가 갑자기 인사직렬로 가는 게 가능하겠지만 저들이 갑자기 인사 부서로 발령 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누군가는 ‘저들이 내 신분와 같아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화를 내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과 당신은 ‘고용이 보장되었다’는 측면만 제외하면 같은 회사에서 꽤 다른 삶을 살 것이다. 무엇을 서운해 하는지 알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렇게 서운해할 일도 아니란 이야기다.
나는 몇 해 전부터 공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과거 시험처럼, 신분 결정 시험처럼 대기업 입사자와 중소기업 입사자가 한번 결정되면 거의 그대로 가는 건 한국 사회 전체의 측면에서도, 기업의 측면에서도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 측면에서도 대부분 좋지 못하다고 생각했다(물론 대기업 입사자들에겐 좋을 수 있지만…).
수직 이동, 그러니까 중소기업서 대기업으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루트를 만들어주면 당장 대기업을 가지 않아도 될 유인이 생긴다. 대기업 선호도는 여전하겠지만 지금 거길 못 들어간다고 남은 인생 20–30년이 폭망하는 건 아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활력이 생긴다. 맥 없이 신세 한탄하는 중소기업 평생 직원 말고, 똘똘하게 업무 수행하고 성과지표 개선하고 그거 자기 포트폴리오로 삼고 나갈 직원들을 통해 성장 동력을 만들 수 있다. 대기업은 높은 급여로 시장에서 검증된 인력들 유인해서 활용할 수 있다. 공채로 뽑아서 리스크 관리를 하는 것보다 이 편이 회사 입장에서는 더 나을 수도 있다(여기에 관한 문제는 이 글에 간단히 담았다).
그러니까 이 난리가 난 건 아마 ‘공사 직원’이라는 신분 때문일 거다. 어떻게 저들이 힘들게 쟁취할 수 있는 ‘공사 직원’이라는 신분을 쉽게 딸 수 있냐는 항의일 것이다. 근데 사실 그 ‘신분’을 한 꺼풀 벗겨놓고 보면 대단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보안 업무의 숙련도를 높인 사람들이 보안 업계에서 받는 일반적인 임금보다 조금 더 나은 임금을 받고 좋은 직장에서 일한다면 그게 무슨 큰 문제일까. 실력 없는 자들이 누군가의 청탁으로 움직였다면 모를까. 심지어 급여도 직무마다 다르다. 이 정부는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직무급제를 도입하려 한다. 나는 이 직무급제에 대해서도 찬성한다.
뭐가 공정인지 좀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볼 필요는 있다는 거다. 정말 공정이 필요하다는 내 생각에는 19살 때의 수능 점수로, 직무와 무관하게 쌓은 20대 중후반의 스펙으로 모든 신분이 결정되는 게 썩 그리 공정해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아무리 관련 실력을 쌓았어도, 맨 처음에 입사했던 게 중소기업이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인천공항공사 입사’는 꿈도 꿀 수 없다는 그 고착된 신분이 더 불공정해 보인다. 대기업 다니는 당신의 무능한 동료를 과연 어디다 갖다 꽂아야 그나마 ‘돈 값’ 할까 고민하는 회사의 걱정이 더 불공정해 보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보안 업무를 하다가 우연히 정규직 된 안전 업무 종사자가 정규직이 되었단 이유로 근무를 매우 불성실하게 해도 해고되지 않는 게 더 불공정해 보인다.
신분이 아니라 실력에 가치를 매기는 게 진짜 공정 아닐까. 그게 아니라면 할 수 없고 뭐.
원문: 백승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