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는 ‘소원 수리함’, ‘병영신문고’, ‘병사의 소리’ 등 군인들이 복무 중 겪는 부조리나 가혹행위 등의 애로사항을 적어 내면 해결해주는 제도가 있습니다. 그런데 갓 전입 온 신병을 빼고는 모두들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임병들은 후임병들에게 소원 수리를 냈을 때 돌아오는 후폭풍을 더 많이 알려줍니다.
가령 소원 수리를 통해 선임병들이 욕설을 하거나 가혹 행위를 했다고 써서 제출하면 일단 당사자들을 불러 조사는 합니다. 조사가 끝난 뒤 가혹행위 사실이 드러나면 가해 선임병은 군기교육대 며칠 갔다 오면 끝입니다. 그러나 소원 수리를 한 후임병은 고참을 고발한 배신자로 찍혀 이전보다 더 심한 왕따나 가혹 행위를 당합니다.
지휘관들은 소원 수리를 통해 부대 비리가 밝혀지는 것을 감추려고 합니다. 진급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해 병사를 불러 무마시키거나 부대 외부로 이런 사실이 드러내지 않도록 철저히 입단속을 시킵니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요새 병사들은 ‘소원 수리’ 대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해 부대 내 비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비리 사실 고발해도 변하지 않는 군대, 청와대 국민청원은 다르다
6월 24일 법사위 군사법원 업무보고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군인들이 소원 수리 대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김 의원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린 공병여단 부조리에 대해서 이미 해당 부대가 1월에 감찰 조사를 벌였지만 간단한 경고 조치만 했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지휘관이 오히려 피해 병사를 공개하고 보복성 조치를 취했다며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군대 내 부조리를 용기 있게 고발하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보복이나 불이익을 당한다. 그래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김남국 의원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군대 내부에서 부조리를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다시 한번 살펴봐야 한다”라고 요구했고, 정 장관은 김 의원의 지적에 대해 “군대 내 20개 이상의 부조리 고발 시스템이 있지만, 청와대 국민청원 같은 외부 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현실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내부의 시스템이 공정하게 작동할 수 있도록 강조하겠다”고 덧붙였지만, 현재 시스템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상황이라 부모의 재력 등으로 인한 특혜는 없었다며 공군 ‘황제병사’ 감찰 결과를 신뢰하고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전에 중대장 확인?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군 장병들이 청와대 게시판이라든지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해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본 부분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백 의원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리기 전 중대장이나 대대장에게 먼저 보고하라는 교육이 이루어진다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사실인가”라며 정경두 국방장관에게 물었습니다. 정 장관은 “확인 중에 있다”며 “만약 그런 사실이 있다면 잘못된 점이라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정경두 국방장관의 답변을 현장에서 들었지만, 기자부터 그의 말을 신뢰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백 의원도 “공직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상관들은 모든 게 자유스럽고 투명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병들의 입장은 다르다. 열린 마음으로 보고 다양한 통로를 만들기 위해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기자가 92년에 군 복무를 할 때도 소원 수리를 해봤자 전혀 개선되지 않는다는 얘길 들었고 목격했습니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소원 수리를 해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지금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있다는 점입니다.
현역 장병들이 그나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을 이용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군대를 보면 답답하게만 보입니다.
원문: 아이엠피터 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