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GI의 시대,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독자 영역을 확보할 것인가?
2019년은 유난히 인상에 깊게 남는 애니메이션이 많았던 해였다. 특히 아래 네 작품은 그 자체로는 서로 공통점이나 관계가 거의 없지만, 좀 더 거시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공통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틈틈이 메모를 남겨 놨었다. 이 글은 그 메모를 정리해서 쓴 글이다.
우선 여기서 애니메이션이라 함은 TV 아니메를 제외하고 극장 개봉을 위해 만들어진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에 한함을 미리 언급해 두겠다.
〈슈렉〉과 〈치킨 리틀〉을 거치며 애니메이션 영화라고 하면 당연히 3D 애니메이션을 지칭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2010년 초반에 이르기까지도 3D 애니메이션의 최대 목표는 존재하지 않는 환상적 대상을 실사에 가깝게 구현하는 것이었고, 그에 따르는 시각효과 역시 실사영화의 범위를 굳이 넘으려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배우를 액터(actor)에서 마이머(mimer)로 바꿔버릴 정도로 CGI가 영화의 보편적인 기법으로 자리 잡고, CG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구분이 무의미한 상황이 오자 애니메이션의 시각효과들이 실사의 한계를 완전히 떨쳐버린 듯하다.
코믹스의 연출 기법을 활용한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배트맨 닌자〉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와 〈배트맨 닌자〉에서 이런 연출은 코믹스의 복권으로 나타났다. 〈토이 스토리〉 이후 그간 3D 애니메이션은 코믹스와 별개의 영역을 구축한 줄 알았는데(특히 디즈니의 작품들), 실사의 한계를 넘자 코믹스의 연출과 효과를 적극적으로 구현하는 것으로 통합을 이루어낸 것이다. 물론 여기서 코믹스는 본질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에 가깝다.
〈배트맨 닌자〉는 카툰 렌더링으로 3D로 2D를 흉내 냈지만, 한편으론 그 자신이 3D임을 숨기기는커녕 때로는 위화감을 줄 정도로 3D 효과를 노골적으로 내세운다. 때로는 일본 전통화 기법을 효과로 삼는가 하면, 특정 순간에는 아예 완전한 2D로 전환하기도 한다. 분명 과거의 어느 시기였다면 위화감을 이유로 쓰이지 않았을 기법들이 점차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작품은 애초에 코믹스를 원작으로 한 실험적인 작품이었단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막상 2019년 하반기에 다른 두 작품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다. 〈겨울왕국 2〉와 〈날씨의 아이〉는 어떤 식으로 보나 앞의 두 작품과 그리고 서로서로도 완전히 다른 성격의 작품이다. 특히 〈겨울왕국 2〉는 그간 디즈니, 픽사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며 특별한 기교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3D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날씨의 아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2D 작품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지만 또 한편으로는 공통점이 있다.
〈겨울왕국 2〉는 이전의 정적이고 실사의 물리법칙을 가능하면 따르려고 했던 디즈니와 픽사의 전통적인 시각효과에 비하면 확연히 화려하고 인공적이다. 특히 얼음 결정이나 나뭇잎이 흩날리는 장면을 〈주토피아〉, 〈모아나〉, 〈토이 스토리 4〉와 대조한다면 훨씬 이해가 쉬울 듯하다. 사실 이는 〈겨울왕국〉(2013)에서도 이미 나타났던 바이긴 한데, 이제 점차 이런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주류가 되어 간다는 흔적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핵심은 실사 CGI와 구분되는 특유의 연출
〈겨울왕국 2〉는 이전의 정적이고 실사의 물리법칙을 가능하면 따르려고 했던 디즈니와 픽사의 전통적인 시각효과에 비하면 확연히 화려하고 인공적이다. 특히 얼음 결정이나 나뭇잎이 흩날리는 장면을 〈주토피아〉, 〈모아나〉, 〈토이 스토리 4〉와 대조한다면 훨씬 이해가 쉬울 듯하다. 사실 이는 〈겨울왕국〉(2013)에서도 이미 나타났던 바이긴 한데, 이제 점차 이런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주류가 되어 간다는 흔적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이런 경향은 이미 신카이 마코토에게서는 사실 2010년부터도 충분히 나타났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강점은 빛을 사용한 화려하고도 다채로운 풍경과 배경 묘사인데, 사실 이 효과의 대부분은 고전적인 2D 애니메이션이 아닌 CG로 구현된 것이다. 〈너의 이름은.〉을 거치며 신카이 마코토식 연출이 일본에서도 점차 주류가 된다는 점은 한편으로는 이런 ‘특유 연출’의 중요성과 보편성을 보여준다.
긴 이야기였지만 결국은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스크린숏이 바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을 만큼 화려하고도 특이한 연출이 늘어났다. 그 연출은 주로 시각효과 차원인데, 과거에는 위화감을 이유로 잘 사용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위화감을 하나의 장치로 사용한다. 사실 〈아바타〉에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르기까지, 이미 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기술적으로는 실사영화에서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은 기존 실사의 한계를 떨치고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특별한 연출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그렇지 않으면 애니메이션이 이제 별개의 장르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조금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2019년 TV 아니메의 최대 히트작인 〈귀멸의 칼날〉 역시 비슷한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겠다.
애니메이션과 애니메이션 산업의 미래
이들 네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프랜차이즈라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물론 프랜차이즈화는 애니메이션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장편 영화뿐만 아니라 미디어 산업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영화에서 CGI의 비중이 커지는 건 한편으론 프랜차이즈화를 가속화하기도 했다. 왜냐면 CGI는 비싸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웬만한 장면을 CG로 만드는 것보다 그냥 직접 찍는 게 더 싸다고 하겠는가.
특히 3D로 오면서 오브젝트의 정밀성과 필요한 렌더링이 추가될 때마다 그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애초에 애니메이션 산업 자체가 사람을 연료로 움직였지만, 앞으로는 필요한 최소 연료의 양은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사실 사람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디·독립 3D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점점 어려워지지 않을까.
히어로 영화의 기록적인 성공 이후 애니메이션이 주류가 되는 세상이 올 거란 예측도 있었다. 마블과 디즈니, 그리고 지브리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기법과 매체로서의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비주류로 머문다. 역으로 CGI가 보편화하며 애니메이션의 독자적인 정체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 왔다. 그렇다면 CGI의 시대,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독자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까?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본다.
대공황 즈음해서 애니메이션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 그 원동력은 무엇보다 실사 촬영으로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장면을 보여주었다는 데 있었다. 이후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로봇물이 큰 인기를 끈 것도 이렇듯 현실의 제약을 벗어난 덕택이 컸다. 하지만 〈트랜스포머〉에 과거의 구현은 그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렇기에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표현이 아닌 환상과 상상 그 자체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실사 촬영이 할 수 없는, 하지 않는, 또는 할 필요가 없는 영역을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서사와 연출에 관한 내적인 완성도는 당연한 기본 전제다.) 그리고 위 네 작품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과연 앞으로의 애니메이션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다시금 확보해낼 수 있을까?
원문: 김고기의 영화 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