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끝이 보일 때가 있다. 특별히 싸우거나 마음이 상한 일처럼 겉으로 드러난 물리적 문제가 있는 게 아닌데도. 서서히 관계가 식어가는 게 살갗으로 느껴진다. 그 낯선 온도가 느껴져도 나는 그 흐름을 바꾸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시간도 감정도 흘러가는 대로 지켜본다. 예전의 나였다면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라며 같이 쌓아온 그 시간이 아까워 악착같이 인연을 붙잡았다. 하지만 이제 더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이게 마음이 딱딱한 어른이 되는 과정인 걸까?
언젠가, 사수였던 선배를 오랜만에 만난 적 있다. 지금껏 내가 이 바닥에서 먹고살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사람. 나라는 천둥벌거숭이를 코 닦아주고, 엉덩이 토닥여서 사회인으로 다듬어준 선배. 늘 고마운 사람이다. 3년을 함께 일하다 익숙한 선배의 품을 떠나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하기 좋은 변명이지만 먹고살기 바빠, 한동안 연락 못 하고 지냈다.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들에 적응하느라 영혼의 단짝처럼 지냈던 선배를 만나지 못했다. 그 사이 선배는 장르가 다른 분야로 넘어갔고 얼마 후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가서 마음을 다해 축하를 건넸다. 동화 속 공주님 같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선배는 와줘서 고맙다고, 신혼여행에서 돌아와서 보자며 헤어졌다.
하지만 우리가 다시 만난 건 정확히 3년 후, 청계천 산책로에서였다. 우연한 만남이었다. 오랜만에 만나서였을까? 아니면 곁에 있는 사람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기 때문일까? 우린 서둘러 헤어졌다. 분명 반가웠지만 뜨거운 해후라는 마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기대하지 않은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놀라움이 더 컸다. 다시 연락하자며 헤어졌지만 진짜 우리가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다시 2년의 세월이 지난 후다.
홍대 뒷골목의 작은 닭 요릿집. 우리가 함께 몰려다니던 시절 자주 가던 곳이다. 인테리어도 닭요리 맛도 그대로였다.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난 선배와 나 사이에는 에어컨 강풍보다 차갑고 어색한 기운이 흘렀다.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그 사이 각자의 생각과 생활의 냄새가 진해졌다. 내밀한 만남이 없었던 그 시간 동안 꼬꼬마 막내였던 난 어느덧 한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자랐다. 선배 역시 메인스트림에서는 멀어졌지만, 본인이 선택한 그 분야에서 능력자로 인정받고 있었다.
술잔이 몇 번 오가고, 우리가 만나지 못했던 시간 속 이야기들을 하나둘 풀어냈다. 사실 그 부분의 이야기 맛은 싱거웠다. 이야기가 돌고 돌아 우리가 함께했던 3년간의 세월 속 사람들과 에피소드들을 얘기할 때만큼은 우리 눈은 다시 반짝였다.
기분 탓일까? 아니면 안 본 사이 주량이 줄어서일까? 내가 알고 있던 선배의 주량에 비해 별로 마시지 않았는데 금세 취했다. 분명 어느 자리에 가서든 흐트러짐 없이 끝까지 술을 마시던 선배였는데… 선배는 더 마시지 못하겠다며 형부에게 데리러 오라며 전화를 했다. 얼마 후 형부의 차가 도착했다. 선배의 몸을 부축해 차에 태우려는 순간, 선배는 나를 저지했다. 그리고 내 눈을 한참 봤다. 살짝 풀린 눈으로. 그리고 말했다.
호사야. 잘 살아…
술기운이 가득한 짧은 그 한 마디가 꽤 아프게 박혔다. 선배가 나를 꾸깃꾸깃하게 구겨 저 멀리로 던져버린 기분이다. 선배에게 차가운 거리감이 느껴졌다. 선배가 ‘더 이상 너는 내 사람이 아니야.’라고 탕탕탕 도장 찍는 것처럼 느껴졌다. 선배를 태우고 떠난 형부의 차가 골목을 빠져나가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지켜봤다.
우리 사이에 긴말이 오간 건 아니지만 우리는 꽤 오래 다시 못 만날 것 같다는 씁쓸한 예감이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 속은 괜찮으시냐고 톡을 보냈지만 선배는 답이 없었다. 1이 사라지지 않는 선배의 톡을 보고 사정이 있겠지, 바쁜 거 지나가면 연락하시겠지 하다가 다시 몇 년이 지났다.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서서히 식어갔다.
서운하지도 않았다.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저 우린 시간에, 그리고 각자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 것일 뿐. 이렇게 지나가는 인연, 지워지는 인연도 있어야 새 사람도 들어올 수 있는 구석이 생긴다. 우리가 정말 인연이라면 어떻게든 다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몇 년의 시간을 다시 보냈다.
얼마 전, 선배에게 불쑥 전화했다. 폴 킴의 노래 〈우리 만남이〉를 들은 후였다. 왜인지 그 노래를 처음 듣고 선배의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인생은 헤어지고 만나고 익숙해지고
또 그냥 그런대로 살아가고
인생은 무뎌지고 아파하며 익숙해져서
다시 그땔 그리워해우리 만남이 특별하진 않았지
이 나이에 뭐 있겠어
즐거웠다 또 만나자 어 연락해 말해도
한동안 또 안 볼 사이 umm 그리울 거야
- 폴 킴, 〈우리 만남이〉 중에서
혹시 나를 피하는 건 아닐까? 통화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 고심했다. 하지만 몇 번 신호음이 가지 않았는데 바로 선배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랜만에 들려온 목소리에는 당황한 기운이 흥건했다. 서로 잠시 안부를 묻고, 바쁜 시즌이 지나면 곧 다시 얼굴을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어쩌면 선배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얼떨결에 전화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다시 만나자는 그 말이 빈말일 수도 있다. 난 선배에게 지워진 사람이 됐을 수도 있다. 선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난 시간이 지나면 희한하게 원망도, 미움도 희미해져 간다. 대신 과거의 반짝이던 모습만 기억에 남는다. 마음대로인 내 기억력 때문에 철판을 깔고 연락을 하게 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인연의 유효기한’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래서 난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모를 선배와의 만남을 기다린다.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