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처음이라 난 서툰 것투성이다. 혼자 자전거 타는 것에도 서툴고, 많은 사람 앞에서 말을 하는 것도 서툴고, 날생선을 먹는 일에도 서툴다. 서툰 것투성이인 내가 가장 서툰 건 말로 내 마음을 투명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난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내향적인 성향을 품고 태어났다. 사 남매의 틈바구니에서 자라오면서 욕심은 독이고, 양보는 미덕이라고 배웠다.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는 눈치가 생명이다. 부모의 지치고 고된 삶을 보고 자란 자식들은 또래보다 일찍 철이 든다. 먹고 살기에도 빠듯한 부모가 덜 신경 쓰게 하는 게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효도’였다. 갖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다 말하는 건 가진 것 없는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었다. 그 누구도 들춰 보지 않을 일기장에 쓰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진짜 내 마음을 말하는 방법,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을 잊어 갔다. 안 될 거야. 못할 거야. 싫어할 거야. 상대방의 반응을 앞서서 판단하고 단정했다. 부정(否定)의 단어를 자물쇠 삼아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입이 무거운 아이는 자라 마음이 불투명한 어른이 되었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몰랐다. 내가 얼마나 불투명한 사람인지.
너란 애는 참 속을 모르겠어.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마음을 터놓고 지낸 사람의 입에서 나온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난 몹시 당황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뭔가 나를 단단히 오해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아닌 다른 여러 사람 입을 통해서도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들었을 때 깨달았다. 내가 어떤 마음을 가졌건 상대방이 그렇게 느낀다면 난 어느 정도 그런 사람이구나. 인정해야 했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진짜 내 속마음은 숨긴 채 괜찮은 척, 마음이 넓은 척, 자비로운 척, 이해심이 충만한 척했다. 마음을 드러내는 게 상대방에게 짐을 떠넘기는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마음을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내 약점을 드러낸다고 단단히 오해하며 NN년을 살았다. 나의 불투명한 마음은 모호한 행동으로 이어졌고 불필요한 오해를 쌓았다. 그 여파는 내게서 여러 기회도 앗아갔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었다. 후회해 봐야 소용없었다. 다 내가 무심하게 뿌렸던 씨앗이었다.
적지 않은 인생의 수업료를 지불하고 그제야 조금씩 삶의 투명도를 올리는 중이다. 부단히 나를 드러내며 투명해지는 연습 중이다. ‘괜찮아요’라는 말 뒤에 숨기보다 내 마음이 하는 말을 세상에 가감 없이 뱉어낸다. 물론 처음에는 입을 떼기조차 어려웠다.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기적이라고 생각하면 어쩌지? 내 안의 개복치들이 던지는 여러 질문이 나를 거칠게 막아섰다.
하지만 나에겐 물러설 곳이 없었다. 또 수업료를 지불하고 싶진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눈을 질끈 감고 내 마음을 투명하게 말했다.
“난 초코음료를 먹으면 머리가 아파서 말이야. 대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좋겠어.”
“부장님! 말씀하신 사항은 다각도로 분석해 봤을 때 시간이나 여건상 진행하기 어렵다는 게 제 결론입니다. 대신 플랜 B로 이런 이런 방법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10번에 8번은 너희 집 가까운 곳으로 갔으니 이번엔 네가 와라. 우리 동네 근처로.”
“방금 그렇게 말한 건, 나에게 좀 충격이었어.”
“그때의 일이 남긴 상처가 아직 아무는 중이어서 말이야. 아직 그 사람 얼굴을 볼 마음의 준비가 덜 됐어.”
“알잖아? 나 개복치인 거. 그렇게 큰 소리로 버럭 화를 낼 때마다 나를 향한 말이 아니어도 내 심장은 쿵 내려앉아. 그러니 조금만 더 부드럽게 얘기해줄 수 있겠어?”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거나 또 누군가의 노력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과 일하긴 힘들겠어.”
“그동안 난 이런이런 상황 때문에 괴로웠어. 이렇게 마음 털어놓으니 한결 가볍다.”
나의 생각, 나의 취향, 나의 감정, 나의 성격을 투명하게 드러냈다. 입으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표정에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나라는 사람이 마음의 문을 천천히 열기 시작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결과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 말 대신 얼굴을 구기며 표정으로 한껏 감정을 드러내며 사무실이나 집안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상대에게 건네는 내 마음이 솔직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오해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불필요한 추측과 단정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었다. 내가 솔직하게 나를 드러내는 만큼, 상대방도 투명하게 다가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참고 양보하고 배려해 줬는데…’라는 그 누구도 바라지 않은 선의를 마음대로 내던지고, 혼자 서운해하고 혼자 실망하는 일은 더 이상 없다.
가벼운 마음은 가벼운 관계를 만드는 줄 알았다. 매사 신중하고 진지한 게 관계의 밀도를 높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가벼운 마음이 깊이 있는 관계를 만들었다. 숨구멍 하나 없이 빡빡하면 숨 막혀 둘 중 누구라도 마음이 떠나 돌아서는 건 시간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하루 나의 투명도를 높여간다. 서서히. 차근차근.
원문: 호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