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보는 만화들에서는 크게 세 종류의 엄마가 나온다.
- 아이들이 무슨 사고를 치건 무한한 자애로움으로 그것을 이해하며, 설명해주고 감싸 안아주는 자애의 화신 같은 엄마다.
- 매화마다 아이와 좌충우돌하면서 짜증도 내고, 화도 내고, 미워했다가 좋아했다가, 깔깔대고 실수도 하는 조금은 아이 같고 조금은 어른 같은 엄마다.
- 대체로 첫 번째의 자애로운 엄마에 가깝지만, 화낼 일에는 화도 내고, 실망하거나 힘들어하기도 하는 중간 정도의 엄마가 있다.
아이가 세 만화를 골고루 보기에 나도 곁에서 만화를 보게 될 때가 많은데, 그때마다 ‘두 번째 엄마’야말로 진짜 엄마에 가깝다고 늘 생각하곤 한다. 사실 첫 번째 엄마는 아내도 ‘극혐’할 정도로 현존하는 엄마랑은 너무나 다르고, 세 번째 엄마만 하더라도 일본 만화여서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엄마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아내와 나는 거의 처음부터 그렇게 엄마들의 캐릭터랄 것을 나름대로 분석하면서 보곤 했는데(그게 우리가 같이 무언가를 볼 때의 재미 같은 것이다), 주변 사람들만 하더라도 ‘첫 번째 엄마’의 이상함을 거의 못 느꼈다. 이렇게 말해주고 나서야 그 엄마가 이상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말하곤 했다.
사실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몰라도 엄마에 대한 그 전형적인 형상은 우리에게 무척 깊이 각인되어 있다. 무한한 자애로움을 가진 엄마라는 캐릭터는 웬만해서는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세상에 그런 엄마가 있는가 하면 아마 한 명을 찾기 힘들 것이다.
거의 모든 엄마는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매일 속에서 수많은 감정을 겪으면서 수많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거의 모든 엄마가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 자기 정체성에 관해 인생 내내 사춘기, 오춘기, 팔춘기를 겪어가면서 고민하고 엄마를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며 ‘내 인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 우울이나 슬픔에 빠지기도 한다. 우리가 알아 왔던 엄마라는 존재에는 이상하게 그런 모습들이 많이 생략되어 있다.
두 번째 엄마만 하더라도, 한 여성의 존재를 꽤 현실성 있게 담아내긴 했지만 그 여성이 자기 인생 자체를 고민하는 과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들 보는 만화에 당연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겠으나 그 만화에서 아빠는 나름대로 자기실현이라는 걸 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자기만의 재능으로 디자인을 한다든지 일을 한다든지 하면서 아빠 역할도 담당한다. 그러나 엄마는 한 인간으로서의 자기 영역에 관한 모습이 생략되어 있다.
첫 번째 만화에서 엄마는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수준이고, 세 번째 만화에서도 아빠가 ‘멋지게 사회생활’하는 모습은 보여주어도, 엄마는 ‘중요한 집안일을 하는 사람’ 이상으로까지 그 정체성이 확장되지 않는다. 결국 이런 만화든 동화든 하는 것들이 한 명의 아이, 혹은 사람이 부모라는 존재를 그려내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갈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요즘 면접관들이 자기소개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은 ‘자애로운 어머니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로 시작하는 자기소개서라고 한다. 어쩌면 이런 식의 부모상이 통용되던 시대가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와서 이런 ‘부모상’은 거의 완전한 거짓에 가깝다는 게 여러모로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가 초자아의 위치에서 엄격함을 담당하고, 어머니가 자애로운 대지의 성격으로 묘사되며 다루어지는 일련의 상징성은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것이다.
그것은 여성 차별적인 관점 이전에도 우리가 한 인간을, 한 사람인 어머니나 아버지를 제대로 보지 못하도록 가려놓는 벽돌벽에 가깝거나, 왜곡시키는 난반사와 같은 문제를 만들어 놓는다. 나아가 이상한 부모에 대한 ‘이상’을 설정해둠으로써 나의 부모는 그렇지 않고, 심지어 나 또한 부모로서 그렇지 못하다는 피해 의식이나 열등감 같은 감정을 만들어 스스로를 괴롭힌다.
나 또한 부모가, 특히 어머니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걸 제대로 알아가고 인정하는 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내는 주변 사람들이 ‘엄마라서 당연한 것들’을 자기에게 강요하는 것들 때문에 힘들 때가 자주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말은 어머니가 늘 ‘엄마라서 당연한 건 없다’ ‘엄마는 엄마가 그만하고 싶다’ 처럼 해오던 말이기도 했다.
사실 그런 엄마는 없다. 그래야만 하는 엄마는 없다. 그저 인생의 많은 감정과 욕망, 꿈과 걱정 속에서 인생의 매 단계 고민하며 하루하루 이겨내고, 하루하루에 의미를 부여하며, 자기의 존재를 찾아가고, 그렇게 삶이라는 여정을 늘 걷는 한 명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아이가 커나가면서 아이에게 부모이기 때문에 당연한 어떤 이미지를 주입하고 그 이미지에 스스로 부합하고자 애쓰며 자기 자신과 아이를 배반하는 그런 부모가 되기보다는, 아이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다. 엄마라서 당연하고, 아빠라서 당연한 어떤 모습만을 아이가 알기를 바라진 않는다.
그보다는 아이와 함께 서로를 이해해가면서, 다른 모든 사람도 이해해갈 수 있는 그런 관계로 성숙해가고 싶다. 세상에 널려 있는 무수한 가짜 이미지들에 관해, 아이가 적절히 경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성숙해갔으면 싶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