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터넷에서 가장 화제가 되기도 하고, 흥미로운 현상 두 가지를 꼽으라면 ‘펀쿨섹좌’와 비의 ‘깡’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펀쿨섹좌는 일본의 정치인 고이즈미 신지로를 가리키는 말인데, 환경부 장관 취임 당시 기자의 기후변화 대처에 대한 질문에 “FUN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하면 된다.”라고 대답한 데서 유래한다. 그 뒤로 이 정치인은 무수한 어록을 생산하게 되는데, 질문에 전혀 엉뚱한 대답을 하거나, 동어반복을 하고, 자기만의 세계가 있는 듯한 기이한 대답을 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다.
비의 ‘깡’도 비슷한 맥락이 있는데, 이미 수년 전 출시된 그의 뮤직비디오가 너무 촌스럽다면서 네티즌들이 몰려가서 이 노래와 뮤직비디오를 조롱해왔다. 그런데 이게 해가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단순한 조롱을 넘어서, 일종의 기이한 유행을 일으키게 된다. 수많은 사람이 그 뮤직비디오가 촌스럽고 별로라고 하면서도, 보면 볼수록 중독되면서 요즘에는 ‘1일1깡’을 안 하면 안 된다든지, 나는 ‘1일12깡’까지 한다든지 하면서, 오히려 이 뮤직비디오의 조회 수가 급상승하고 수많은 사람이 즐겨보는 무언가가 된 것이다.
펀쿨섹좌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계속 그저 조롱의 대상으로 활용되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수많은 사람이 그가 너무 친숙해졌다든지, 너무 자주 봐서 정들었다든지, 이제는 단순한 조롱을 넘어서서 그에게 친근감을 느낀다면서 그의 존재 자체를 일종의 유머로 소비한다. 아마 고이즈미 신지로가 한국에 와서 어느 예능에라도 출연하면 정말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다.
고이즈미 신지로야 외국의 정치인이니 국내의 이런 현상에 별다른 반응은 없는 듯하지만, 비의 경우에는 이런 조롱에서 시작해 묘하게 뒤틀린 유행, 열광에 그 나름대로는 쿨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 실제로 최근 예능에 출연해서 ‘1일1깡으로 되겠느냐 그보다 더 자주 봐야지’라는 등 이런 현상을 그다지 싫어하지 않고 오히려 다소 여유롭게 즐기는 듯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이런 일련의 현상들은 요즘 세대를 지칭하며 쓰였던 ‘무민세대’라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무민세대란, 더 이상 거창한 의미 같은 건 추구하지 않고, 그저 아무 의미 없는 것들을 즐긴다는 뜻으로 쓰인 말인데, ‘쓸모없는 선물 교환식’ 같은 게 대표적이다. 연말에 모여 누가 가장 쓸모없는 선물을 가져오는가 같은 놀이인데, 부서진 보도블록을 가져오거나, 작년 달력을 가져오는 식이다.
그 외에도 웃을 수만 있다면 그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그런 웃음의 문화, 무의미의 문화가 대화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 여러모로 새로운 세대 사이에서 자리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어느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그 뮤직비디오의 세련됨, 작품성, 깊은 의미성 같은 것을 보고 감동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 영상의 촌스러움, 독특함, 불협화음이나 부담스러움을 보고 즐기고 웃을 수도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콘텐츠를 사랑할 수도 있다.
실제로 유튜브 등에서 ‘어이없는 것들’이 많은 인기를 누린다. “얘 좀 봐, 진짜 어이없어. 뭐 하는 애야.” 같은 게 가장 흥미로운 대상이고, 웹툰으로 따지자면 “병맛”이 가장 인기 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야, 병맛이라고 하면 ‘이말년시리즈’ 정도가 있었지만 요즘 웹툰의 절반 가까이는 병맛 웹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상의 세계도 사실은 이미 ‘병맛’ 시리즈가 점령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건 역시 마미손의 ‘소년점프’다. 장도연의 스와로브스키 CF도 떠오른다.
이런 현상 자체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잘 판단이 되지 않는데, 그보다 확실한 건, 최근의 트렌드 혹은 요즘 세대의 특성이랄 게 있다면, 무척 적극적으로 ‘무의미’를 수용한다는 점이다. 점점 문화라는 것도 무의미가 춤추는 무대가 된달까. 이 시대에 중요한 것은 이 순간의 웃음이고, 즐거움이고, 한순간 모든 걸 잊을 수 있는 자유로운 어떤 상태일 뿐 그 배후에서 문화를 지탱하는 대단하고 진중한 의미 같은 건 아니다.
그런 현상은 확실히 우리가 대하는 삶의 어떤 순간을 더 가벼이 여기게 해주고, 웃어넘길 수도 있게 해주는 듯하다. 여러모로 절망과 우울, 불안의 시대라는 진단이 어울리는 시대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웃음의 시대라는 것이 어울리는 일들이 일어난다.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웃긴 게’ 많고 대세인 시대가 또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일단, 웃을 수 있으면 성공이다. 웃으면 그것은 친근한 것이 되고, 유행이 되고, 사람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생각해보면 삶이라는 것이 한바탕 웃고 떠나보내는 그 무엇 외에 대단한 무엇은 아닐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삶이란 많이 웃은 사람이 이기는 것이고, 오늘 하루를 웃으며 대할 수 있는 사람의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