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 그가 그의 소설 작품을 통해 은근하게 ‘샤라웃’을 보낸 독일 출신의 미국 일러스트레이터, 그리고 그가 그린 〈더 애로우 칼라 맨(The Arrow Collar Man)〉 사이에 얽힌 묘한 연결고리를 한번 풀어보려고 합니다. 저의 억측도 몇 숟가락 겁 없이 섞어서 말이죠.
스콧 피츠제럴드와 레이엔데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영화 〈위대한 개츠비〉(2013)의 초반부, 주인공 ‘닉 캐러웨이’로 분한 토비 맥과이어가 1922년의 여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뉴욕의 타임스퀘어가 슬쩍 비칩니다.
그때 저 멀리 보이는 타임스퀘어 광고판의 꼭대기에는 아래와 같은 광고 카피가 쓰여있습니다. 셔츠를 입은 한 백인 남성의 옆모습을 화살표 모양으로 내리꽂으며 말이죠.
FOLLOW THE
ARROW AND
YOU FOLLOW
THE STYLE
ARROW
COLLARS애로우를 쫓으면
스타일은 덤으로
애로우
칼라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 속 주인공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는 제7장, 개츠비와 데이지의 눈이 서로 마주치는 장면에서 데이지는 그녀의 남편 톰 뷰캐넌을 옆에 두고 그의 옛 애인 개츠비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아아! 당신 정말 멋져 보여요. 당신은 언제나 멋져 보여요. 광고에 나오는 남자를 닮았어요. 광고에 나오는 그 남자 아시죠?
1929년에 발표한 스콧 피츠제럴드의 단편소설 속에서는 여자 주인공이 사망한 그녀의 형제 사진을 남자 주인공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당 장면에서 그녀의 형제는 다음과 같이 묘사됩니다.
레이엔데커의 앞머리를 한 잘생기고 진지한 얼굴
‘레이엔데커의 앞머리’라는 표현 속 ‘레이엔데커’란 인물은 바로 영화 〈위대한 개츠비〉에 등장하는 타임스퀘어 광고 속 ‘셔츠 입은 백인 남성’, 소설 『위대한 개츠비』(1925)에서 데이지가 개츠비를 두고 언급한 ‘광고에 나오는 그 남자’를 실제로 그려낸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조지프 크리스천 레이엔데커(Joseph Christian Leyendecker)입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그 광고’란 〈더 애로우 칼라 맨 캠페인입니다.
레이엔데커 그리고 〈더 애로우 칼라 맨
레이엔데커는 1874년에 독일의 몬타바우어(Montabour)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가족과 함께 1882년에 미국 시카고에 이민을 갑니다. 16살의 그는 시카고의 한 판화 회사에서 도제로 수련을 받기도 하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해부학적 드로잉 파트타임 클래스를 듣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돈을 모아 그의 남동생 프랭크(Frank)와 함께 프랑스 파리로 건너갑니다. 둘 다 미술에 감각이 있었던 겁니다. 파리 줄리안느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다시 시카고로 돌아와 스튜디오를 차립니다. 이후 당시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잡지 중 하나였던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의 커버 이미지를 그리며 실력 있는 아티스트로 전국적인 명성을 쌓게 됩니다.
그는 인간의 몸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인상주의 화가처럼 빛과 색을 가지고 놀고, 판화 회사의 도제 경력을 살려 그로스 해치 테크닉 등을 적용하며 아주 매력적인 커버 작품들을 선보였습니다. 당시 그의 작풍은 수많은 카피캣을 낳기도 했죠.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커버 이미지에 더해 일러스트레이터로서의 레이엔데커의 명성을 더욱 진하게 각인한 건 다름 아닌 ‘광고 이미지’ 작업이었습니다. 그는 켈로그 콘플레이크, 아이보리 비누 등 다양한 브랜드의 광고 이미지를 도맡아 그렸습니다.
특히 그가 참여한 클루엣 피바디 & 컴퍼니(Cluett Peabody & Company)의 〈더 애로우 칼라 맨 광고 캠페인(1903–1931) 속 남성의 이미지는 1900년대 초반의 미국인들에게 아주 이상적이고 멋진 남성상으로 기능했습니다. 심지어 정신적인 이미지를 지배하는, 그야말로 거국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힘이 있었습니다.
애로우 칼라와 〈더 애로우 칼라 맨〉 광고 캠페인(1905–1931)
애로우 칼라란 뉴욕의 클루엣 피바디 & 컴퍼니에서 만든 면으로 된 탈부착식 셔츠 칼라를 말하는데, 과거 아버지 세대의 포멀한 감각(풀 먹인 빳빳한 깃)을 충족시키면서 20세기 초반 신세대의 스타일 취향에도 잘 부합해 선풍적 인기를 끌었습니다.
〈더 애로우 칼라 맨 캠페인은 클루엣 피바디 & 컴퍼니의 셔츠와 탈부착식 셔츠 칼라의 판매를 진작시키기 위해 1905년부터 1931년까지 진행된 광고 캠페인으로 뉴욕의 광고대행사 ‘Calkin and Holden’과 전설적인 일러스트레이터 조지프 크리스챤 레이엔데커가 참여했습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시카고에서 약 2년간 스튜디오를 운영하다가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 레이엔데커에게 어느 날 키 크고 잘생긴 캐나다 온타리오주 출신의 찰스 비치(Charles Beach)라는 인물이 그의 일러스트레이션 ‘모델’이 되기 위해 찾아옵니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집니다. 아니, 죽을 때까지 함께 삽니다.
찰스 비치는 레이엔데커의 연인이자 동숙 비서이자 비즈니스 매니저이자 뮤즈였고 ‘애로우 칼라 맨’의 실제(최초)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세기의 게이 커플이 당대의 남성과 여성이 모두 열광하는 미국의 이상적인 남성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당시 ‘애로우 칼라 맨’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느냐 하면 수천 장의 러브레터가 애로우 칼라 맨을 향해 쏟아졌는데, 그 숫자가 그즈음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남자 배우 루돌프 발렌티노(Rudolf Valentino)가 받았던 팬 메일의 숫자를 훨씬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그 수많은 팬레터 중에는 결혼 프러포즈 편지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피츠제럴드도 〈더 애로우 칼라 맨〉이라는 광고 이미지 속 이상적인 ‘남성상’을 공유하며 끄덕이던 당대의 소설가였습니다. 〈더 애로우 칼라 맨〉 광고 캠페인은 소설 『위대한 개츠비』보다 무려 20여 년이나 앞서 세상에 나와 이미 미국 사회의 이상적인 남성 이미지의 기준을 정립했습니다. 그러하니 보여주기식 삶에 집착했던 멋쟁이 소설가 피츠제럴드도 결코 예외일 순 없었겠죠.
여기에서 잠깐. 1905년부터 1931년까지 〈더 애로우 칼라 맨〉 광고 캠페인이 진행되던 시기의 미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시는 영화, 사진, 포스터,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비주얼 콘텐츠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더욱이 일반인들이 개인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해 내면과 외면의 매력을 분리하고 외형을 꾸미는 일의 중요성에 크게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메이크업이나 의복 스타일링 등의 기술이 발전했습니다.
광고의 경우만 놓고 보더라도 제품 속성이나 효능을 구구절절 설명하던 기존의 ‘카피’ 위주의 광고는 저물고, ‘이미지’ 위주의 광고가 떠올랐습니다. 매스 미디어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선 이미지 총공격이 제격이었던 거죠. 그야말로 ‘비주얼’과 ‘이미지’가 ‘통’하는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한 겁니다.
『위대한 개츠비』 그리고 레이엔데커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제4장에는 제이 개츠비가 소설의 화자 닉 캐러웨이를 처음으로 찾아와 점심을 함께하자며 ‘뉴욕’으로의 난데없는 드라이브를 진행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해당 장면에서 자기의 과거를 미화해 구구절절 설명하는 개츠비를 코웃음 치며 지켜보던 닉 캐러웨이가 어느 순간 불신을 거두고 개츠비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되는데, 그때 닉은 개츠비를 두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마치 여러 권의 잡지를 한꺼번에 훑어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개인의 매력(개성적 면모)을 이러한 이미지적인(?)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것, 스콧 피츠제럴드가 말한 (1920년대의) 여러 권의 잡지를 가장 ‘잡지’답게 만들어 준 당대의 일러스트레이션 작가 대다수는 조지프 레이엔데커 작풍의 영향 아래에 놓인 인물들이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의 시그니처 이미지는 역시나 개츠비가 선보인 화려한 파티 장면일 겁니다. 그런데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적 배경이 되기도 하는 1920년대의 조지프 레이엔데커와 그의 뮤즈 찰스 비치 또한 그들의 사치스러운 라이프스타일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들은 뉴욕 북동쪽, 롱아일랜드 해협에 접해 있는 뉴로셸(New Rochelle)의 자기 저택에 유명 사업가, 뉴욕 연극계의 A급 스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을 초대해 성대한 파티를 즐겼고, 이미 충분히 큰 집을 가졌음에도 그것을 넓히는 데 열중했으며, 운전기사를 따로 두고 링컨 리무진을 타고 맨해튼을 드나들었습니다.
〈더 애로우 칼라 맨〉의 실제 모델이었던 찰스 비치는 뉴욕의 길거리를 싸돌아다닐 때마다 사람들이 ‘광고 속 그 사람 맞죠?’라고 물어보는 바람에 요즘 표현으로 ‘연예인-병’에 걸리기도 했고, 그러한 위상에 걸맞게 화려한 패션 센스를 선보이며 ‘셀럽’으로서의 삶을 즐겼다고도 전해집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 제4장의 시작 부분, 소설의 화자 닉 캐러웨이는 개츠비의 환대를 받고 개츠비 맨션에 들른 사람들의 이름을 주저리주저리 나열합니다. 해당 문단에는 ‘이런저런 방식으로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 ‘연극계 사람들’ ‘어느 나라의 왕족’ 등이 등장하는데, 어쩐지 위에서 언급한 레이엔데커의 파티에 들른 사람들의 직업이 겹쳐 보이네요.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일러스트레이터 조지프 크리스천 레이엔데커의 인생 사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연결고리는 물론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의 한 시대를 뜨겁게 관통한 레이엔데커가 만들어낸 광고 이미지의 영향력이 동시대 소설가 피츠제럴드만 몰래 비껴갈 수는 없었을 거란 이야기입니다.
세기의 동성 커플이 합심해 만들어낸 광고 일러스트레이션 모델이 1900년대 초반 미국의 남성들과 여성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은 꽤 재미있습니다(그 잘난 소설가의 머릿속까지 비집고 들어가며 말이죠). 조지프 레이엔데커와 찰스 비치는 죽을 때까지 같이 지지고 볶으며 잘 살았다고 합니다. 레이엔데커가 죽고 난 1년 후에 비치 또한 목숨을 잃었다고 하는군요. 다만 비치 때문에 레이엔데커는 가족들과 갈등을 겪고 결국 서로 등을 지기까지 했다네요.
먼 훗날 사람들은 2020년대를 회상하며 시대를 관통한 이미지와 비주얼을 궁금해할 지도 모릅니다.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이란 무지하게 구체적이고 다양한 까닭에 어떤 하나의 핵심적인 이미지를 뽑아낼 수는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대답은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거라 예상해봅니다. 태초에 구글이 있었고, 구글은 유튜브를 인수했으며, 유튜브는 2020년대를 살벌하게 장악했다고. 2020년대는 유튜브의 시대이자 영상의 시대였고 당시의 인간들은 빨갛고 하얀 로고에 환장들을 했다고요. 미세먼지도 없고 기분이 째질 듯이 좋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바깥엔 안 나가고 자꾸만 그 조그만 로고 속으로 꾸역꾸역 들어가 노느라 정신들을 못 차렸다고요. 쩝.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
참고 자료
- 『Fashioning the American Man: The Arrow Collar Man, 1907-1931』, Carole Turbin
- 『Stories from the Archives: Arrow Collar Man』
- 『Fashion in the Time of the Great Gatsby』, LaLonnie Lehman
- 『Outlaw Marriages: The Hidden Histories of Fifteen Extraordinary Same-Sex Couples』, Rodger Streitmatter
- 『Art Deco Chicago: Designing Modern America』, Robert Bruegmann
- 『The Sexual Perspective: Homosexuality and Art in the Last 100 Years in the West』, Emmanuel Cooper
- 『American Mirror: The Life and Art of Norman Rockwell』, Deborah Solomon
참고 사이트
- The Secret Life of the Arrow Collar Man, an Early 20th-Century Sex Symbol
- The Subversive Gay Secret Behind The “Arrow Collar Man”
- The Arrow Collar Man, Mister Crew
- New trailer for The Great Gatsby: What’s behind the collar?, The Bowery Boys: New York City History
- Hollywood in “The House Of Leyendecker”
- J.C. Leyendecker-Love on the Front Page, Artists As People
- J.C. Leyendecker Archives, The Saturday Evening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