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남성 하나가 자신의 Fiat 500 차량의 운전석에 홀로 앉아 노래를 부른다. 안전벨트도 확실하게 맸으니 벌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가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2018년 힙합 씬을 강타한 미국의 랩 트리오 Migos의 <Walk It Take It>.
노래 초반의 훅은 그럴듯하게 잘 따라 하던 이 아저씨, 빠른 템포의 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그대로 무너진다. 와르르르르! 처참하다. 그러니까 랩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고!
하지만 이 아저씨, 끝까지 기를 쓰며 노래를 따라 부른다. 힐끔힐끔 가사를 띄어놓은 대시보드 위 스마트폰 보랴, 한 소절 한 소절 노래도 따라 부르랴 고생이 많다. 그런데 이 어색하고 서투르며 부족하지만 사뭇 진지한 외국인 중년 아재의 열창에 괜스레 웃음이 난다. 아, 하수도 아니고 이런 걸로 웃으면 안 되는데.
몇 개월 전에 팔로잉하고는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며칠 전 인스타그램 피드를 쭉쭉 내리다가 ‘턱’하고 아재의 가라오케 노래 영상이 걸리더니 자기 마음대로 재생된다. 갑작스러운 청각 테러에 당황한 것도 잠시, 어느 순간 아재의 게시물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이런저런 노래 영상을 차례대로 완주하고 있는 나와 마주한다. 아! 이것이 아프리카TV BJ 선생님들께 별풍선을 쏘아 올리는 풍선 부자 선생님들의 최초의 의지였던가. 모든 행동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이 허튼 말은 아니구나.
이것은 2018년 9월부터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그저 재미로’ 노래 커버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독일 바크낭 출신의 중년 남성 Uwe Baltner의 이야기다. 외향적인 성격 덕에 이렇게 자기의 모습을 알리고 피드백받는 걸 즐긴단다.
약 400명으로부터 시작한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현재 약 156만 명이다. 심지어 그의 팔로워 중에는 약 7,833만 명의 팔로워를 자랑하는 팝스타 리아나도 있으며, 크리스 브라운, 저스틴 비버, 드레이크, 프렌치 몬타나 등도 있다. 도합 2억 5천 명의 팔로워를 지닌 스타들이 몸소 그의 게시물에 관심을 가지고 좋아요를 누른다.
Uwe Baltner는 광고대행사 Baumann & Baltner의 공동 대표이자 전무다. 소셜 미디어를 전문으로 하는 광고 대행사를 설립해 운영하며 자신의 콘텐츠로 마케팅 도달률 실험을 몸소 하기도 한다는데, 가히 덕업일치의 경지라고 부를 만하다.
그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통근용 소형 해치백(Fiat 500), 안전벨트, 진지하고 열정적이지만 엉뚱하고 한참 모자란 노래 실력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꾸준함이라는 무기로 인스타그램 스타가 되었다.
30년 전부터 차 안에서 노래 부르기를 즐겨 왔다는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고 스스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노래’를 따라 부르고 영상에 담아 인스타그램 위에 공유한다. 어떤 곡은 영상 촬영 전에 삼사십 번의 자체 리허설을 갖기도 한다고. 항상 느끼지만 순수하고 꾸밈없는 동기와 꾸준한 노력이 합일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하다.
제 생각에 바이럴의 핵심은 연속성(계속성) 같아요. 사람들이 콘셉트를 이해할 때까지 계속 무언가를 하는 거죠.
-명색이 광고대행사 대표 우베(Uwe) 좌
시대를 전망한다는 트렌드센터의 분석 결과에 가끔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조금은 뒤늦은 이야기들이 많다고 느껴져서), 대체로는 고개를 무척이나 주억거리게 되는데, 2020년의 대표 소비 트렌드라고 발표한 ‘멀티 페르소나’가 내겐 그랬다. 개인적으로 현대인들은 각기 다른 가면 서너 개씩을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그때그때 마음 내키는 대로 또는 상황이 부르는 대로 꺼내 쓰며 살고 있지 않나 싶은데, Uwe Baltner 아재의 노래 영상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아재, 본인 입으로 아무리 자신이 외향적이라고 말한다 해도 나이도 쉰여덟에다가 대행사의 중역이니까 어느 정도 분위기도 잔뜩 잡는 사람일 테고(편견과 어림짐작, 죄송합니다), 인스타그램 위에서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건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우베 센세, 가면이 몇 개세요?
예순을 바라보는 기자 출신의 광고회사 대표. 일반적인 관점에서 그는 꽤나 성공한 위치에 올라선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한다는 일이 조금은 머뭇거려지고 ‘나잇값’에 대한 압박으로 점잔도 빼야 하는 상태에 닿았다고 할까.
하지만 그는 꾸밈없는 모습으로 자기 얼굴을 잔뜩 망가트려가며 열창하고 또 열창한다. 자신의 고향인 독일 노래는 물론이고 미국의 빌보드 인기 차트곡부터 아프리카, 러시아, 중동의 노래까지 국적과 장르를 가르지 않고 무엇이든 흡수하여 불러 제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의 목적이 무려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따뜻한 마음인가!
현실 세계와 스마트폰 세계, 두 가지 세계를 종횡무진 누비며 상황에 맞는 ‘가면’을 꺼내 쓰는 요즘이다. 평소 투박한 언행과 추레한 옷차림으로 당신에게 잔소리나 줄줄 늘어놓는 직장 상사가 알고 보면 인스타그램 속에서 감성글 폭탄을 터뜨리며 뭇 여성들의 ‘좋아요’를 자동으로 부르는 초-인기 계정의 주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멀티 페르소나’의 시대라는 것을. 우스꽝스럽고 진지하며 엉뚱하게 노래하는 독일 아재 Uwe Baltner 선생님도 쉰여덟의 회사 대표라지 않는가!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