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7년 전, 말레이시아의 대학 부설 어학연수 클래스에서 우연히 라이를 만났다. 라이는 나보다 5살은 어린 녀석으로,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고 무작정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로 와서 영어 공부 중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었다.
친해진 계기도 웃겼다. 내 한국인 친구를 짝사랑해서 쫓아다니다(!) 나와 안면을 텄다. 그때의 그는 무척 평범하고 순진한 틴에이저였다.
뭐야! 그럼 넌 고등학교도 졸업 안 하고 가족도 없이 영어 배우러 혼자 온 거야?”
응. 아빠가 고등학교에서 똑같은 교육 받으면서 시간 낭비할 바에야 차라리 빨리 여기로 올라와서 영어 배우며 새로운 세상을 보라셔서. 어차피 난 좋은 대학교 갈 생각이 없어. 사업을 할 거거든.”
“사업? 무슨 사업? 이렇게 어린 네가?”
그는 중국어와 말레이시아어는 수준급으로 구사했지만 영어는 못했다. 성장기의 평범하고 수줍음 많은 소년이었다. 그래서 밥 먹다 국 뜨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업을 벌일 거라 말하는 라이가 이상해 보였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특이한 애네. 창업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 아닌가? 사업보다 영어 공부나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게 라이와 그의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자연스럽게 라이의 누나인 페이도 만나게 되었다. 페이 역시 영어보다는 중국어와 말레이어가 훨씬 편한 화교로, 자기 몫의 비즈니스를 준비 중이라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한 치의 주저함이나 불확실함은 그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남매의 아버지 역시 사업을 하신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남매의 아버지가 말레이 건설업계의 큰손이자 전형적인 화교 부자였던 것을.
2.
한국으로 돌아온 뒤 7년이 흘렀다. 나도 우연히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되면서 오랜만에 연이 닿았다. 그동안 연락도 안 되던 라이 남매를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남매는 내가 성숙했으며 영어도 나아졌다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훨씬 더 충격받은 건 나였다. 기억 속의 수줍은 십 대의 소년·소녀는 없었다. 대신 말레이시아의 야심만만한 젊은 사업가들이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명문은 아닌 말레이 소재의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업을 시작했다. 페이는 명품 아이템 중개업을, 라이는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시작했다. 운과 실력을 밀어붙여 전력투구한 끝에 사업이 순항 중이라고 했다. 첫 사업은 어느 정도 기틀이 잡혔기 때문에, 각자 2번째 사업을 시작하려고 사업자 등록을 마쳤다고 했다.
남매는 다시금 쿠알라룸푸르에 체류하기 시작한 나를 챙겨주었다. 본인 사업 파트너와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 나를 대동하기도 했고, ‘한국에서 온 가까운 친구’라며 지인들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고마운 마음에 점심을 사자, 손님으로 말레이시아에 온 건데 그러지 말라며 고급 레스토랑과 와인 바를 순회하며 저녁을 대접했다.
그렇게 1주일 넘게 함께 있다 보니 어느 정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왜 화교들이 동남아시아에서 그렇게 부를 몰고 다니는지. 왜 사업이 성공할 확률이 실패할 확률보다 극도로 높은지.
중국의 전통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들에게는 특유의 ‘체면’ 차리는 호탕함이 있었다. ‘손님’을 마땅히 ‘대접’해야 하는 마인드셋. 사람들 앞에서 상황의 유불리를 재지 않는 모습. 계산서를 받아서 오늘 내가 다 살게, 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메뉴판의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하는’ 여유 가득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실제로 라이의 사업 파트너이자 사적으로도 절친인 화교 말레이시아인과 화교 인도네이사인도, 너무나 당연하게 라이의 계산을 지켜보고 있었다. ‘왜 라이가 저녁값을 다 내지? 오늘 마신 와인만 해도 엄청 많은데… 얼마 나왔냐고 물어보고 각자 음식값을 치러야 하는 거 아닐까…?’
내가 당황하는 기색을 숨기지 못하자, 화교 인도네시아 친구가 이렇게 말하며 걱정을 덜어 주었다.
오늘은 라이가 내고 싶은 날인 것 같아. 우리 사이에 뭐 어때? 걱정 말고 일단 내버려 둬.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식으로 자신의 바운더리 안에 들어온 가까운 이들에게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은 그들만의 숨겨진 룰이었다. 받은 사람들은 나중에라도 보은하거나 대접할 것임을 의심치 않고 베푸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그들이 극진하게 잘해준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돈을 받지 않고 라이와 페이 남매의 비즈니스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들은 베품의 선순환을 믿는다.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밀어주는 암묵적 게임 안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화교의 부의 근원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드넓은 네트워크일 것이다. 한 달도 되지 않는 체류 기간 동안, 나는 그들이 소개해 주는 수많은 여행·건설·디자인 업계의 큰손들과 창업가, 정부 고위직을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놀랍게도 99%가 동남아시아 화교였다. 깜짝 놀라 어떻게 네 나이에 이런 사람들을 다 아냐고 물어봤다. 라이가 대답해준 바는 이러했다.
인맥의 첫 시작은 역시 가족이다. 아버지가 사업가로서 뿌려 놓은 인맥의 씨앗들이 그의 아들딸에게까지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의 친구, 아버지의 사업 파트너, 어머니의 친척 등 소개를 해주고 소개를 받는 그들만의 리그가 펼쳐진다. 이런 구조 속에서는 실패하기가 오히려 더 어렵다.
마찬가지로 라이와 페이도 인맥 형성에 적극적이다. 망설이지 않는다. 일단 만난다. 이러이러한 사람을 찾고 있는데 아는 사람 있냐고 거침없이 묻는다. 약속을 했으면 지킨다. 그러니 평판이 좋아지고 절로 신뢰도 쌓인다. 사업상 중요한 거래처, 예비 고객, 이해 관계자와 사이가 틀어지도록 두지 않는다. 한 뼘 한 뼘 계속 좋은 인맥과 네트워크만을 쌓아간다. 그럼 거래처나 비즈니스 단에서 매력적인 기회가 안 오려야 안 올 수가 없다.
이들은 도움을 받으면 갚는다.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생기면 그 사람에게 어떤 시련이 와도 끌고 가려고 한다. 나에게도 그랬다. 정작 7년 전 라이의 짝사랑은 내가 아니라 내 친구였고, 페이와는 다섯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나를 무슨 귀빈 모시듯 하는 게 얼떨떨해서 술김에 말을 꺼냈다.
너희 가족은 왜 이렇게 나한테 잘해줘? 정작 예전에는 우리 그다지 친하지 않았잖아. 연락 끊긴 게 4년은 됐겠다.”
그러자 라이는 정말 뜻밖의 이야기를 꺼냈다.
2015년 기억나? 원래 우리 누나랑 같이 한국에 가려고 했었는데 누나에게 일이 생겨서 나 혼자만 갔잖아. 그때 너도 학교니 아르바이트니 바빴는데 짬을 내서 서울 구경도 시켜주고 그랬잖아.”
“아니, 외국인 친구가 왔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고. 그게 뭐 별거라고 그래.”
“그런데 내 여행 마지막 날에 너랑 네 친구가 날 공항에 바래다주겠다고 왔잖아?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극구 말렸는데. 그런데 내가 엄청 뛰었는데도 5분 차이로 비행기를 놓쳤지. 그때 당황하는 내 앞에서 너랑 네 친구가 비행기 재예약도 도와주고, 다른 호텔도 다 찾아주면서 모든 일이 해결될 때까지 약속을 미루고 함께 있어 줬던 것 기억나? 우리 가족은 지금도 기억하는데.”
이 사건 때문에 라이는 우리 사이의 친분이 두텁든 얇든, 무조건 잘해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심지어 나는 그런 사건이 있었는지도 잊고 있었는데.
그 뒤로 라이는 짝사랑했던 내 친구보다도 나와 더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우린 꽤 친하다는 생각도 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앞으로 말레이시아에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추후 사업을 할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야기해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을 정말 열심히 했다. 얘네는 도대체 언제 쉬는 건가, 싶을 정도로. 7년 전 공부하기 싫다고 몰래 수영장으로 놀러 나가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린 나이인데도 끊임없이 일했다.
물론 주말에는 술도 마시고 맛있는 것도 먹는다. 하지만 그것조차 본인의 사업 파트너들과 함께 사업 얘기를 하며 술을 마시거나, 가족과 비즈니스 이야기를 나누며 비싼 저녁을 먹는 정도인 것 같았다. 스쳐 지나가는 많은 기회들을 사업의 성공과 연결시키기 위한 태도가 습관이 된 것처럼 보였다.
그 밖에도 술을 잘 마셔서 어딜 가도 대화를 편안하게 오래 할 수 있다는 점, 어렸을 때부터 사업과 돈에 관련된 교육을 집안 어른들에게 듣고 자란 점, 사람을 대접하는 것에는 인색하지 않지만 가격 조정, 계약 흥정 시에는 가까운 사이여도 철두철미하게 분리하는 태도를 볼 수 있었다.
물론 화교라고 다 같은 건 아니다. 나라마다 화교의 특성도 다르다. 가정 교육도 크게 작용한다. 내 친구인 라이와 페이는 그중에서도 유달리 의리 있고 검소하게 성장한 케이스이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살면서 만난 사업가 출신 인도네시아 화교, 태국 화교들도 비슷한 성향을 보여서 추후 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리해 봤다.
흔히 성공의 7요소인 끼, 깡, 꼴, 꾼, 꿈, 끈, 꾀를 꼽는다. 화교들에게서는 최소한 끈과 꿈, 깡은 공통 요소로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원문: 가름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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