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원하지 않은 지는 꽤 됐다.
첫 번째 이유는 너무도 벌어진 경제적 격차다. 남한 대 북한보다 차이가 적었던 서독과 동독의 사례에서조차 통일 독일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서독보다 경제력이 좋은지 의문인 남한이 동독보다 한참 뒤처진 북한을 끌어안고도 경제 침체를 면할 수 있을 거란 기대는 하기 어렵다.
북한과 경제 권역이 합쳐지면 내수 시장이 커진다며 낙관하는 이들도 있지만, 북한의 낙후된 경제로 인해 최소 2,000만의 난민이 생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최정상의 복지국가도 난민 수용의 역작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복지후진국인 한국이 북한 국민을 포용하고 성장의 동력으로 삼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민족주의 뽕을 과하게 맞았거나, 현 정부가 대북 화해 모드를 추진한 바 있으니 그에 논리를 맞추려는 이들의 판타지에 다름 아니다.
임종석 같은 이들은 북한과 만주 벌판을 통과하여 유럽 한복판까지 내리뻗는 철도를 꿈꾸며 가슴이 설렌다지만, 나로서는 중국은 물론 베트남보다도 인건비가 싼 북한의 노동인구가 남한의 경제권에 편입될 때, 당연히 불거질 노동시장의 황폐화가 두렵다.
두 번째 이유는 양 국가가 너무 오랫동안 단절되었을 뿐 아니라 적대 행위를 지속해 왔다는 점이다. 동독과 서독은 왕래를 하던 사이였다. 이웃사촌처럼 지낸 것은 아닐지라도 반세기도 넘게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이산가족은 없었다. 서로 간에 적대 행위와 긴장 고조도 있었지만, 통일까지의 통과 의례로 이해하던 여론도 강고했다.
남북한은 동서독과 많이 다르다. 사실상 완전히 단절된 채, 최근까지도 사상자가 발생하는 군사적 충돌을 겪어 왔다. 이런 대립이 종식되고 통일까지 갈 것이라 기대하기엔 북한은 미개하고, 남한은 역량이 부족하다. 동독 주변엔 그에 심하게 적대적이지 않은 비사회주의 국가들이 포진해 있었지만, 북한 주변엔 중국과 러시아가 있고 적대 관계인 일본과 미국도 있다. 서독마저도 천신만고 끝에 도달한 통일을 남한이 이루기엔 너무 많은 차이점이 있다.
가능하다면 1민족 2국가 체제로 가는 것을 그나마 바란다. 비슷한 예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일 텐데 그것과도 다르다. 단지 적대 행위는 하지 말고 관광이나 이산가족의 왕래 정도는 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특수성 때문에 이것도 잘될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통일을 목표로 삼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나 싶다.
북한과의 통일을 염두에 두면서 정부 부채를 엄격히 제약하거나, 간접세 증세를 해서는 안 된다는 시각도 많다. 통일 시에 국채도 발행하고 부가가치세도 올려서 북한에 쓰자는 것이다. 주로 보수 야당파에서 많이 나오는 의견이다. 정부부채를 지금처럼 OECD 최저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간접세를 올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유가 통일 대비라면 좀 웃기는 이야기다.
남한이 지금보다 경제적으로든 복지적으로든 훨씬 발전해야 통일을 실현하는 데 도움도 되고, 후유증도 빨리 극복할 수 있다. 재정적자나 간접세 증세는 그 재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경제성장도, 복지 발전도 촉진할 수 있다. 통일을 정말 대비하고자 한다면 재원을 늘려서 잘 쓰자고 할 것이지 국가부채 확대는 나라 망하는 것이고, 간접세는 통일 때까지 가만두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계제가 아니다.
한 입으로 정부의 빚이 늘면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면서, 다른 한 입으로는 남북통일 때 정부의 빚을 늘려야 한다는 이들은 자신들의 억지를 깨달았으면 좋겠다.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나랏빚 걱정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들이 통일을 떠올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런 걱정이 사라진다니,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이중성이다.
박근혜에게 ‘통일은 대박’을 연설문으로 써주었던 최순실과, 통일이 되면 경제성장의 기회가 열린다는 현 정부의 낭만적 민족주의자들과, 지금은 나라 망하니 안 되지만 통일 때는 정부의 빚을 늘리자는 이들은 모두 한통속인 듯한데 북한에 대한 태도 문제를 놓고 서로 싸우는 것도 우습다.
현 정부가 국내 경제는 등한시하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그를 통한 경제 활로 뚫기에 올인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과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특히 문 대통령은 이제라도 환상에서 깨어나면 좋겠다.
북한과 남한은 너무 오랫동안, 너무 다른 길을 걸어왔다. 순식간에 한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어떤 정부든 통일의 초석조차 놓기 힘들다. 남북한의 경제 통합과 이를 통한 남한의 도약은 신기루일 뿐이다. 남한 하층이 입게 될 타격을 우려하는 게 현실적이다.
어떤 정권이든 북한은 그냥 내버려 둔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유화책이든, 강경책이든 그 북한이 변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보수강경파들은 북한이 빨리 망해서 남한에 흡수되기를 바란다는데, 이놈들아 너네 그런 생각은 자유지만, 그러면서 남한의 저소득층이 어떻고, 비정규직이 어떻고 그딴 얘기는 하지 마라. 북한이 급작스레 붕괴해 수천 만의 난민이 생겨나면 최소 수백만을 남한이 받아줘야 한다. 남한의 하층민에겐 악몽이 펼쳐지는 것이다.
남한의 세계 경제 경쟁력이나 복지 체제가 지금보다 월등해지고, 북한이 점진 개방을 수용하면서 남북한 격차를 좁히는 것이 최적의 상황 전개다. 이를 실현하지 못한 채 벌어지는 북한 붕괴는 특히 남한의 아래쪽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 하나 없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 국민에게 환호를 받고, 김정은과 비무장지대에서 산보를 하며 독대하는 장면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깊다. 대북 관계가 어그러진다고 해서 깎아내려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북한과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면서도 한국 국민이 잘되는 길을 찾아야 한다. 평화와 협력의 길을 계속 모색하되, 그것이 불가한 상황을 상정하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북한이란 변수가 누구에게도 정치적 유불리를 가져오지 않는, 그런 무심한 상황으로 가야 한다. 차라리 이때 북한을 양지로 끌어냄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이해 당사국들을 제어하고, 남북한이 교류와 협력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원문: 장제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