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그 후
경기가 어렵습니다. 이미 주변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존의 소득을 얻지 못하는 소식을 많이 듣고 있습니다. 자영업자뿐 아니라 직장을 다니는 분들도 그렇죠.
이렇게 회사 실적이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습니다. 넉넉했던 복지 기준도 달라지고 한동안은 신입 사원 얼굴 보기도 어렵게 됩니다. 물론 그게 당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 실적이 회복되면 일시적 비용 통제는 회복될까요?
테트리스를 하다 보면 블록이 많이 쌓일수록 더 안 좋은 결정을 많이 하게 됩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블록을 둘 수 있는 시간이 짧아지면서 가장 적합한 결정을 하는 대신, 본능에 의해 결정하거나 역량 부족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게임을 잘하는 사람을 보면 그런 상황에서도 다음 블록을 놓아서 한 줄 이상을 채울 공간을 생각합니다.
최근 경영 전략을 주도하고 있는 기업 역량의 개념이 이와 유사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미리 준비해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는 능력과 준비가 역량을 만들고 위기를 벗어났을 때 다음 성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이 그릇된 경영 철학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사람의 능력이 차별화의 원천임을 모르는 것이죠. 대부분 몇 명의 머리로 결정을 내리는 습관을 가진 기업들이 대부분의 직원, 특히 실무자들을 비용으로 보는 경향이 짙습니다. 노동 집약적이나 자본 집약적이냐 등 산업의 특성과 관계 없이 지금은 모든 산업에서 사람은 그 자체로 다른 기업보다 더 나은 고객 가치를 줄 수 있는 역량의 원천이 된다는 것을 잊은 채 말이죠.
인력 시장이 되고 만 SI 기업들
개발자들이 많이 일하는 SI(System Integration) 기업은 ‘인력 시장’으로 불립니다. 자체적으로 시스템 개발 역량이 없는 비 IT 기업이나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설계와 구축을 담당하는 SI 기업은 일단 클라이언트사의 큰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것이 그들이 하는 업무의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일단 프로젝트를 수주해야 매출이 생기게 되므로, 역량과는 별도로 여러 난이도의 다양한 분야의 시스템 구축 프로젝트에 입찰을 합니다.
그런데 막상 수주를 하게 되면 SI 기업에서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분야가 있고 최근 기술 중에서 내부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없거나 부족해서 재 하청을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이렇게 다시 외부 업체에 아웃소싱을 주는 비중이 늘어나면 사실상 SI 기업은 계약 및 프로젝트 관리를 주로 하는 인력 관리 회사가 되는 것이죠.
매년 시장이 원하는 프로젝트의 난이도는 달라지고, 최신 기술을 이해하는 일반적인 기업의 눈높이도 올라가고 있는데 왜 더 앞선 기술을 다루는 IT 기업인 일부 SI 기업들은 최신 기술을 아웃소싱할 수밖에 없을까요?
이런 기업들은 프로젝트 단위의 이익구조가 어느 순간 악화되어 비용에 민감해지면서 투입되는 사람에 대한 매출 대비 비용에 민감해지는 상황을 맞았을 것입니다. 시장이 원하는 기술을 갖고 있는 인재에 대한 대우가 부족해서 여기서 기술을 익히고 레퍼런스를 일정 부분 쌓으면 보상이 더 좋은 기업으로 인재가 유출이 되는 것이죠.
이렇게 인재 유출이 일어나면 수주한 프로젝트의 난이도를 맞출 수 없고 다시 외부에 아웃소싱을 돌리는 구조가 되면서 예전의 높은 수준의 이익 구조는 차츰 무너지게 됩니다. SI 회사에 남아 있는 직원들은 한 명 한 명이 월급대비 얼마나 매출을 내고 있는지 강화된 관리를 받게 되고 그러면서 업무시간에 일을 하면서 역량을 쌓을 ‘여유’가 사라지게 되는 것이죠.
당장 이 일을 위해 소모되면서 현재 태동하고 있는 기술을 준비 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가 직장 내부에서 사라지게 됩니다. 시장에서 가치있는 인재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주말이나 퇴근 후 스터디 하는 게 전부가 되고 그러면서 아직 그런 문화가 있고 고부가가치를 통해 더 좋은 대우를 해 줄 수 있는 기업으로 자연스럽게 이직이 반복됩니다.
현재 이익 구조가 좋고 실적이 좋을 때 다음 기술을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모든 조직에 다 똑같은 미용 대비 매출 비율 기준을 들이대면서 ‘여유’가 ‘역량’을 만드는 구조를 못 만든다면, 앞으로는 매일 인건비만 걱정하는 회사가 된다는 말이죠.
모든 조직에 ‘인건비의 1.5배의 매출을 벌어야 해’라고 말하는 것은 기술을 모르는데 관리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무능을 보여주는 것에 불과합니다. 아쉽게도 역량을 준비하지 않은 기업은 여전히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역발상, ‘여유’
역량을 쌓는 ‘여유’에 대한 사례는 SI 회사만의 문제가 아님을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잘 알 거라고 생각합니다. 신규 브랜드를 런칭하는 소비재 기업이나 다음 기술을 미리 준비하는 R&D 조직에 황당한 KPI를 들이대는, 새로 바뀐 경영자가 있는 기업들도 몇 개 단어만 바꾼다면 같은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니까요.
고부가가치로 나아가지 못해 사회적으로 ‘넛 크래커 현상 (Nut Cracker)’을 걱정하면서도 현재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여유’는 찾지 못한 셈이죠. 대신 그 자리에 꼰대들의 근면, 성실, 노력이 주 52시간과 파열음을 내며 여전이 실험 없는 기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직원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저는 브런치에서 여러 아티클을 통해 말해왔습니다. 이전에 쓴 계속 다닐만한 직장을 찾 다든지, 기업 내에 불신 비용의 증가로 비효율을 초래하는 문제 등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위기에서 더 크게 생각해 본다면 그 정도는 문제가 아닙니다. 위기 때 일시적인 다운사이징은 있을 수 있지만 이후에 어떤 행동을 하느냐, 어떻게 직원들을 대하고 역량에 대한 고민을 하느냐가 ‘새로운 표준’ 시대를 판가름할 것입니다.
이전에도 계속 위기 후 그대로 정체되어 ‘인건비’에 대한 고민만 한 기업이라면 아주 희박하겠지만, 이번에라도 ‘여유’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두고 역발상을 해 보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원문: Peter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