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미국 전 국민이 코로나 바이러스보다 더 주목하는 사건이 있다. 바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다.
지난 5월 25일, 미국 미네소타 미니애폴리스시에서 위조지폐 사용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들이 흑인 용의자 조지 플로이드를 체포하던 중 아무 이유 없이 8분 동안 무릎으로 목을 눌러 질식사시킨 살인 사건이다. 현장에 있던 시민이 찍은 영상이 공개되자 시민들은 분노했고 이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추모하는 물결과 동시에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보며, 기억해야 할 책 4권을 소개해본다. 리뷰를 작성하다 보니 4권의 책에 공통점이 있다.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만큼 원작의 스토리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1. <브이 포 벤데타>
배경은 1997년 영국. 극우 독재 정당 노스파이어가 지배하는 암흑한 세상이다. 국가의 공권력으로 국민들을 탄압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 통제한다. 그래도 국민들은 순응하며 반항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져 버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국민들. 어느 날 기괴한 마스크를 낀 사내 브이가 등장하여 공권력에 정면으로 대항한다. 국민을 괴롭히는 경찰을 살해하고 방송국을 장악, 각성하라는 메시지가 담긴 방송을 내보내고 국민을 억압하는 법원을 폭파한다. 나라 전체를 흔드는 것이다.
브이가 이토록 과격하게 행동하는 이유는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목소리를 내자, 각성하자, 결국 나라를 움직이는 건 바로 국민이다”라고. 그리곤 브이는 이 말을 하며 떠난다. “신념은 총알로도 뚫을 수 없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을 보며 이 책(만화)이 떠올랐다. 그동안 인종차별로 인해 알게 모르게 죽어간 흑인이 얼마나 많았던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검문을 하다가 총을 쏜 경찰, 강도로 오인해 지나가던 흑인에게 총을 쏜 경찰. 이유 없이 죽인 경찰들은 불기소 처분을 받고 경찰로 복귀했다. 물론 그때마다 사람들은 항의하고 분노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양상이 달랐다. 미국 초유의 대규모 시위가 연일 벌어지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정의를 외치며 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국민’을 적으로 간주한 ‘정부’의 대응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국민을 지키고 적을 물리쳐야 할 군대가 국민을 겨누자 사람들은 인종차별에 희생당한 한 흑인이 아닌, 국민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정부의 태도에 흥분하기 시작했다. 조지 플로이드가 쏘아 올린 불씨는 인종을 떠나 미국을 이루고 있는 개개인에게 ‘정의’를 생각하게 한 건 아닐까?
미국 시위 현장에 이 책의 주인공인 브이가 쓴 가이 포크스 가면이 등장한 것이 그 방증일 것이다. 이번 시위 현장에서 이 책이 떠오른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 참여한 사람 모두가 브이였다.
2. <노예12년>
2014년 골든글러브와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화려하게 수상한 이력으로 개봉한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이 일이 ‘실화’라는 데 공포를 느꼈다. 한 나라 안에서 ‘노예’를 인정하는 곳과 인정하지 않는 곳을 단순히 남과 북으로 나누고 지역에 따라 인권에 앞서 피부색으로 노예를 가른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다가왔다. 충격과 공포를 느끼며 좀 더 알아보고자 원작을 읽었다.
<노예 12년>은 지은이 솔로몬 노섭이 실제 겪은 일이다. 워싱턴에서 ‘자유흑인’(이 말도 참 아이러니하지만) 신분으로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인신매매단에 의해 납치, 남부로 팔려 가게 된다. 하루아침에 자유와 신분을 빼앗기고 노예가 된 그는 자신의 입장을 피력해보지만 돌아오는 건 매질뿐이다.
남부에서 흑인이란 그저 가축과 같이 집안의 재산이자 일하는 노예, 말하는 가축으로 치부될 뿐이다. 좋은 주인을 만나면 그나마 잘 먹고 몸은 좀 편해지지만 좋은 주인이라고 해서 흑인의 인권을 존중한다거나 노예제를 반대하는 ‘인간’은 아니다. 가혹한 주인보다 육체적 고통을 덜어준다는 차이만 있을 뿐.
솔로몬은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며 자신의 신분으로 복권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회를 찾는다. 그는 애초에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누구도 다른 이의 자유를 억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백인이라고 해서 모두 흑인 노예제도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었다. 노섭 역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믿는 건축가 배스의 도움으로 자신의 신분을 찾게 된다. 12년만이었다. ‘
지옥에서 보낸 12년 끝에 그는 자신의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에게 남은 시간은 그저 가족과 함께하는 행복한 미래였을까. 극심한 트라우마와 공포가 도사리지 않았을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현대 사회의 기본 이념이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본다.
3. <헬프>
흑인 전용 화장실이 따로 있고 흑인은 버스에 탈 수조차 없었던 미국의 1960년대. 이 엄혹한 시절 흑인 여성 아이빌린이 목숨을 건 중대한 결정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겠다는 것이다. 이제껏 백인 집에 가정부로 살아오며 겪어야 했던 ‘차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말하겠다는 것. 아이러니한 것은 백인들이 자행한 폭행과 ‘차별’을 듣고 기록하는 주인공이 그 ‘차별’의 가해자인 백인 여성이라는 것이다.
<헬프>의 주인공 아이빌린도 인종차별로 분노가 쌓이고 반항하고 싶었지만 언제나, 익숙하게 스스로 억제해왔다. 자신이 인터뷰에 참여하고 ‘차별’의 현실을 고발하는 <가정부>라는 책을 쓰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스스로 떳떳하고자 참여했고 그 책은 버젓이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책 한 권으로 세상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9년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선출된 해다. 반세기 만에 역사가 바뀐 것이다. 그 변화의 과정엔 수많은 역사와 인물이 있었다. 종교적 지도자 마틴 루터 킹, 흑인 인권 운동의 대부 맬컴 엑스 등 큰 흐름으로 변화를 주도한 위인이 있었는가 하면 아이빌린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간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 역시 이들의 기록에 있지 않을까? 기억해야 한다.
4. <앵무새 죽이기>
이 책이 출간된 것이 1960년대, 책 속의 배경은 1930년대라는 사실만 놓고 보아도 2020년에 일어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내재된 비극이 얼마나 오랜 시간 이어져 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앵무새 죽이기>는 인종차별이 심했던 미국 앨라배마 주를 배경으로 주인공 스카웃이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을 회상하며 시작한다. 스카웃이 6살이던 해, 젊은 백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누명을 쓴 흑인 톰을 그녀의 아버지가 변호하게 된다. 재판을 통해 톰의 무죄가 입증되지만 배심원들은 톰에게 유죄를 선고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톰이 흑인이기 때문이다.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무고를 받아도 되고, 재판의 내용과는 상관없이 유죄를 받아도 된다는 무서운 논리인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흑인에게 재판이라는 과정을 부여한 것 자체만으로도 과분했다고.
스카웃의 가족은 흑인을 변호했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사람들에게 위협을 받게 된다. 톰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공포 때문에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6살 스카웃의 눈에는 이 모든 게 부조리일 뿐이다.
내가 이 책을 떠올리게 된 건 지금도 잊히지 않는 스카웃 아버지, 핀처 변호사의 신념 때문이다. 아빠에게 왜 사람들이 진실을 믿지 않는지 묻는 딸에게 그는 말한다.
누군가를 정말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야. 그 사람 살갗 안으로 들어가 그 사람이 되어서 걸어 다니는 거지.
피부색은 중요한 게 아니다. 결국 다른 피부색 밑에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사람 위를 덮고 있는 피부색이나 신분만을 본다면 지금의 시위는 영원히 계속될지도 모른다. 100년이 지난 후에도.
원문: 명랑 소년의 일상생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