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인간수업〉이 워낙 재밌다는 소문이 자자하길래 뭔가 싶어서 한번 봤더니 어느새 마지막 회를 보는 저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매화마다 몰입도 높은 스토리와 연출로, 나가기를 누를 수 없이 다음 화를 연속으로 보게 되더군요. 학원물을 좋아하는 제 취향도 한 몫 했겠지만 다 보고 나니 왜 이렇게 이 작품이 재미있는지 궁금해 찬찬히 작품을 살펴봤습니다. 그러다가 〈인간수업〉이 재밌는 근본적인 이유 3가지를 발견했습니다.
첫 번째는 학원물의 전형적인 클리셰를 깼다는 점입니다. 보통 학원물 세계관에서 찐따 주인공은 남들이 알지 못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찐따처럼 보이지만 싸움을 잘하거나, 밝힐 수 없는 초능력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이 힘을 사용합니다. 옛날에는 이 힘을 정의를 위해 사용했지만 요즘에는 그걸 비틀어서 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복수를 위해 사용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늘 봐온 학원물의 클리셰입니다.
〈인간수업〉의 설정은 조금 색달랐습니다. 지수가 모범생이고 찐따인 점은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숨기고 있는 힘의 속성이 달랐습니다. 지수는 싸움을 잘하거나 초능력이 있거나 하는 물리적인 힘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는 방과 후, 어둠의 세계를 관리하는 포주입니다.
그가 숨긴 힘은 평범한 10대가 경험하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에 발을 들인, 그것도 자신이 그 시스템을 만드는 창조자라는 점에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찐따지만 방과 후, 어둠의 세계에서는 모두 지수의 역량에 따라 밥을 굶을 수 있습니다. 지수가 숨기는 힘은 한 마디로 학교 일진도 경험하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를 매니지먼트하는 소셜 능력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러니적 요소입니다. 좋은 스토리는 아이러니합니다. 아이러니는 스토리를 더 드라마틱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화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는 주인공 남자가 큰 사업 프로젝트를 따서 축배를 든 날,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며 집을 나갑니다. 또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에서 주인공은 단기 만남을 추구하는 작업남입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하는 여자를 발견했을 때, 그 여자는 단 하루만 기억할 수 있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입니다. 이런 아이러니한 요소는 극에 박력과 페이소스를 제공합니다.
〈인간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민희는 학교에서 지수를 찐따 취급하지만 정작 방과 후에는 지수의 관리를 받습니다. 지수는 민희에게 ‘사장님의 사장님’이라고 할 정도로 서열상으로 상위에 있습니다. 또 배규리는 학교에서는 핵인싸지만 가정에서 겉돌며 부모님에게 순종하는 캐릭터입니다. 반면 지수는 학교에서 모범생 찐따지만 학교 밖에서는 자기 손으로 어둠의 세계를 관장하며 수천만 원을 모으는 포주입니다. 이렇게 서로 자신만의 아이러니가 있는 두 캐릭터가 만났을 때 일으키는 극적인 시너지 케미스트리가 극에 몰입감을 더 부여합니다.
세 번째는 안티 히어로 설정으로 인한 윤리적 딜레마의 체험입니다. 주인공 지수는 악일까요? 선일까요? 그는 사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악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그를 보면 왠지 동정하고 싶어집니다. ‘부모 없이 빚을 갚으려고 하는 건데.’ ‘포주여도 자기만의 도덕적 원칙이 있잖아.’ ‘위기에 빠진 친구를 구해주려고 하잖아,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뿐이야.’처럼 말이죠.
극이 진행될수록 그의 행각이 발각되지 않길 바랍니다. 악인을 보면서 동정하고 어떨 때는 지수를 선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 작품은 시청자에게 윤리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너에게 지수는 악이니 선이니?’ 이 작품은 이렇게 풀리지 않는 윤리적 질문에 관한 줄타기를 탁월하게 합니다.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 작품을 끝까지 보게 됩니다.
그 외에 〈인간수업〉이 재밌는 이유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력과 고급스러운 연출,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요소들은 부가적이며 근본적인 이유는 아니라고 봅니다. 오랜만에 넷플릭스에서 작품다운 한국 작품을 본듯해서 콘텐츠 게이지가 충만해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다소 자극적인 소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름 수위 조절을 잘한 듯해서 불편함은 생각보다 적기도 했습니다. 학원물이 취향이신 분들이라면 적극 추천합니다.
원문: 고로케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