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이 글은 고려 말, 조선 초 혁명과 문명 전환을 다룬 “건국의 정치” 저자 김영수 교수님의 강의를 정리한 것입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6월 7일 토요일 신촌 미플에서 정도전과 세종을 주제로 한 차례 강의가 더 열리니, 많은 참석 부탁 드립니다.
국가 리더는 자신이 총대를 메야 한다
재능이 많은 사람은 성과를 빨리 바란다. 자질이 훌륭해도 인품이 강인하지 못하면 시간이 경과하며 문제가 생기는데, 공민왕이 그런 케이스이다. 어찌 보면 의자왕도 그렇다. 공민왕은 아내인 노국공주가 죽으며 자기 붕괴가 시작됐고, 국가 붕괴로 이어졌다.
왕위에 있으며 신하에게 알아서 해보라는 것은 안 된다. 정치는 실질적 권력 가진 사람이 해야 한다. 신돈처럼 대리인을 내세워서는 개혁하기 힘들다. 잘못 되면 대리인이 책임져야 하고, 생명이 위험해진다. 그래서 점점 불안해지고, 반역까지 생각한다. 신돈도 그렇게 되었고, 그때 공민왕이 신돈을 제거했다. 이렇게 해서는 개혁이 애초에 불가능하다.
기존 역사 연구에서는 신돈의 개혁에 초점을 맞추어 공민왕을 개혁적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신돈 집권기의 정치는 그렇게 평가하기 어렵다. 결국, 그렇게 만든 건 공민왕 본인 잘못이다.
오늘날 정치도 대통령이 5년 동안 초심으로 계속 하기가 쉽지 않다. 업무가 과중하여 2-3년 되면 많이 지친다. 세종은 34년간 정치했지만 죽는 날까지 노력했다. 이런 경우는 예외적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치가의 능력 중 뛰어남만 강조하는데, 견디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본다. 인내력, 강인함을 잘 봐야 한다. 공민왕은 뛰어난 왕이었지만 버티는 힘이 부족했다.
공민왕의 초기 개혁 의지는 진짜였다. 그렇게 5~6년까지 노력했으나, 홍건적의 침입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홍건적이 원나라 군대에 쫓겨 고려 국경인 두만강, 압록강까지 왔을 때는 거의 탈진된 상태였다. 이곳은 험준한 산악지대라 몇 곳만 잘 막으면 된다. 그런데도 두 번째 침입 때는 막지 못하고 수도 개성까지 빼앗겼다. 결과적으로 공민왕의 개혁이 별 효과가 없었음을 보여줬다.
수도를 빼앗긴 것도 문제이지만, 수도를 버린 방식이 더 큰 문제였다. 최영은 최전선에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왕이 떠나면 안 된다고 했지만, 성곽도 약하고 농성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도성을 지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무질서하게 도성을 탈출했기 때문에, 수습할 수 있는 군대조차 다 무너졌다. 공민왕이 도망가는 날의 묘사를 보면 수십만 명의 백성들이 울부짖으며 엎어지고 그 참상이 말이 아니었다.
왕이 강인하지 못하면 장군의 시대가 열리고, 왕권의 위협이 다가온다
정세운이 총사령관이 되어서 반격에 성공, 개성을 수복했다. 이 과정에서 이성계, 최영도 활약했다. 장군의 승리는 왕권을 위협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허용된다. 세계 역사가 다 그렇다. 시저가 게르마니아를 정복할 때 원로원에서 시저 죽일 궁리만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 밖에서 전쟁하고 승리하면 민심이 그리 가니 왕권에게는 위험하다. 이순신장군처럼 백전백승하면 더 위험하다.
한국은 특이한 게 오랫동안 문관지배 체제였다. 당시 이런 나라는 한국과 중국밖에 없었다. 봉건시대까지는 보통 기본적으로 칼 든 사람이 지배자다. 기본적으로 힘으로 지배하는 것이다. 정치를 지식인이 지배하는 시스템은 한국, 중국이 앞선 편이다. 무관은 생존을 위해 군사뿐 아니라 정치도 잘 알아야 했다.
결국 정세운은 홍건적에게 승리했음에도, 안동에 있는 왕에게 큰 위협의 대상이었다. 결국 공민왕은 음모를 꾸며서 여러 장군들을 다 죽인다. 이때 함께 죽음을 당한 김득배 장군은 원래 문관 출신이다. 정몽주가 과거를 볼 때 좌주(시험관)였다. 당시 좌주-문생 관계는 부자관계 같았다. 반역자라 김득배의 시신이 거리에 버려져 있었는데, 정몽주는 왕에게 시신의 수습을 간청한다. 공민왕은 이를 허락하고 정몽주는 직접 제문을 쓴다. 26세 때 쓴 이 제문이 매우 명문이다.
전쟁으로 개혁이 무산되면서 공민왕은 좌절했다. 거기다 정신적으로 의존하던 아내인 노국공주마저 명을 다한다. 노국공주는 단순히 아내라기보다 정신적으로 어머니 역할을 했다.
공민왕은 성격이 매우 예민하고 격정적이었는데, 노국공주란 끈이 끊어지니까 정치에 대한 환멸감이 더 커졌다. 특히나 공주가 아이를 낳다 죽었으니 충격이 더 심했다. 왕정에서는 후계자가 중요한데 난산으로 죽으니 마지막으로 지탱하던 정신적 끈마저 끊어졌다. 이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정치에 실망하고 이색 등 신하와 장군들을 원망했다.
더 이상 추진력 있는 개혁을 실행하기 힘든 대한민국 정부
오늘날 대한민국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1987년 헌법에서 대통령 임기를 5년제로 만든 것은 당시 3김(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의 나이를 고려한 측면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5년 임기는 국가적 사업을 마치기에는 짧다. 박근혜 대통령도 그런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항상 준비된 상태로 집권하는 게 중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3개년 경제계획을 내놨다. 하지만 3년 만에 결실을 거두는 것은 지난한 일이다. 과거보다 우리 경제의 사이즈가 너무 커졌고, 또 기업의 능력이 정부보다 못하지 않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지도하기보다 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개발시대에 급속한 경제발전이 가능했던 이유는 정부의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원래 전쟁에는 종합 관리 능력, 최신 기술이 필요한데, 우리 군은 6.25도 겪었고, 50년대에 수천 명의 장교들이 미국 유학도 갔다. 당시 군대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유능하고 글로벌한 집단이었다. 어디를 갔다 놔도 통용되는 인재가 모였고, 국가권력이 군을 중심으로 재편됐다. 박태준 같은 사람은 기업가로 포항제철을 만들었다.
그런데 1980년대 오게 되면서 기업 능력이 우수해지기 시작했다. 기업에 뛰어난 인재가 모이고, 힘을 발휘하게 된다. 정주영 당시 전경련회장이 자유경제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오늘날 기업에서도 국가 전체를 리뷰한 보고서를 만든다. 정부가 그것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없다.
왜 그럴까? 정부와 기업은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고객이 국민과 대통령이다. 국민과 대통령이 정책 전반을 잘 알기는 어렵다. 국민은 생업에 바쁘고, 대통령 또한 너무 할 일이 많다. 또 나라가 있는 한 정부는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기업은 잘못하면 바로 죽는다. 그러니 기업은 부단히 혁신한다. 정부는 그 정도는 아니고, 고객도 시장만큼 까다롭지 않다.
대통령 임기는 5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법안 하나 만들어 실제로 집행하는 데까지, 평균 2년 7개월 쯤 걸린다. 쉽게 이야기하면 설사 대통령이 개혁 의지가 있어도 임기 내에 끝내기 어렵다는 뜻이다. 행정수도 이전이나 큰 정책적인 문제가 자꾸 대법원이나 헌재 판결로 가는 것도 문제다. 그거 판단하라고 국회, 대통령이 있는 거 아닌가.
필요할 때 국가를 전체적으로 딱 쥐고서 끌고 갈 사령탑이 있어야 한다. MB가 4대강을 했다고 비난을 많이 하는데, 정책의 옳고 그름을 떠나 대통령에게는 그런 추진력이 필요하다. 반대는 필요하다. 하지만 뭔가를 강하게 추진하고 이뤄낼 능력 자체가 없다는 건 정말 문제이다.
시간이 빠르다. 임기 끝내고 뭘 남길지 대통령도 불안하다. 그러다 보면 무리한 발표도 하게 된다. 하지만 여론이 안 좋으면 공무원들이 밤새 만든 정책이 하루 만에 뒤집힌다. 공무원들이 일 할 맛이 나겠나? 결국 다 손 놓고 아무 일 안 하게 되는 악순환만 생긴다.
계속되는 민주주의의 실패,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렇게 현대 민주주의는 정치실패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결국, 미국 정치권이 월스트리트를 통제 못 한 거다. 미국 재정적자 문제도 마찬가지다. 전쟁을 그만두고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이게 안 되고 있다.
이건 정치의 실패다. 민주주의는 혁명을 하지 않고 내부 개혁을 가능하게 만든 인류가 만든 가장 좋은 제도이다. 하지만 만능이 아니라, 매우 불안정한 시스템이다. 미국 사례를 봐도 그렇고, 유럽 재정위기를 보면 독일 정도 제외하고 유럽도 마찬가지다. 일본도 그렇다.
우리도 87년 민주화 이후 독재 없이 잘 하고 있지만, 뭔가 결정할 수 있는 개혁 추진을 못하고 있다. 대통령에게 그런 개혁을 원하지만 실제 청와대 가보면 무력감이 든다. 제왕적 대통령제라 하지만 장관 임용 하나도 쉽지 않다. 법 하나 발의하면 한참 뒤에 효과를 본다. 그렇기에 너무 이론적으로 대통령 비판하면 안 된다. 개혁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고 그 과정을 비판해야 한다. 이상에만 매몰되면 민주주의 하에서의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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