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란 말 대신 오렌지주스”
반가운 손님에게 델몬트 오렌지 주스를 내어주는 것.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배운 나름의 ‘음료 예절’이었다. 덕분에 평소에도 길에서 반가운 친구를 만나면 오렌지주스를 건네준다. 근데 델몬트 유리병을 줄 수는 없잖아. 그럼 무슨 오렌지 주스를 줘야 하지…?
겉보기엔 똑같아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엄청 다르다. 그래서 준비했다. ‘천하제일 오렌지주스 월드컵!’ 오늘 마시즘은 병의 입구부터 맛과 향, 그리고 마신 후의 처리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겠다. 과거가 델몬트 유리병이라면 새 시대의 오렌지주스의 왕은 누구일까?
A. 디자인 : 얼마나 오렌지 한가?
- 콜드 : 오렌지 복붙의 향연
- 따옴 : 하나 반쪽만 따옴
보기에 좋은 오렌지 주스가 마시기도 좋다. 디자인의 기준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오렌지주스에서는 명확하다. ‘얼마나 오렌지가 잘 드러나는가?’이다. 과거 해외에서 ‘트로피카나 오렌지’의 포장 디자인을 심플하고 세련되게 바꿨다가 판매량이 20%가 떨어진 적이 있거든(소비자들은 그냥 오렌지에 빨대 꽂힌 디자인을 원했다).
때문에 궁금했다. 과연 오렌지의 개수가 많이 그려진 녀석은 누굴까? 이 분야에서 포장에 가장 많은 오렌지를 그린 음료는 ‘콜드(17개)’였다. 그 뒤를 이어 ‘썬업(12개)’이 있었다. 둘 다 페트병이 아닌 테트라팩(종이팩)이어서 가능했다. 페트병 중에서는 ‘채움(6개)’이 이름마냥 오렌지를 가득 채웠다.
반면에 오렌지를 가장 적게 그린 제품은 ‘따옴 (1.5개)’이다. 야박해 보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딱 이만큼만 짜서 넣었다는 리얼리즘을 보여준 게 아닐까?
B. 그립감 : 들고 다니기 좋은 음료가 마시기 좋다
- 아침에 주스 : 한 손에 잡히는 컴팩트함
- 카프리썬 : 빨대가 없으면 넌…
눈으로 즐긴 후에는 촉감으로 즐길 차례! 어떤 오렌지주스가 들고 다니기 편하며 마시기에 좋은지를 판단해 보았다. 들고 다니거나 보관하기에 좋은 녀석은 ‘아침에 주스’였다. 작은 용량도 용량이지만 네모 모양으로 생긴 디자인은 보관하기도 짚기도 좋다는 평이 가득했다. 물론 뚜껑의 크기가 커져서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가는 게 단점.
반면 ‘카프리썬’은 어릴 때는 참 좋아했는데, 들고 다니기에 여러모로 불편해진 녀석이 되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면 뭔가 터질 것 같고, 마시자니 빨대를 꼭 꽂아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C. 자연 보존력 : 오렌지 100으로는 부족해!
- 아임리얼 : 리얼하게 본연을 담았다
- 채움 : 너가 담으면 나도 그대로 채운다!
선물용으로는 크게 고려하지 않지만(?), 내가 마시는 것이라면 물도 건강을 따라가는 것이 요즘 시대의 숙명이다. ‘마셔봤자 얼마나 좋아지겠어’라는 건강 비관론도 있지만, 티끌 모아서 체력이라도 올려놔야 하루를 견딜 수 있는 것이 현대인 아니겠는가. 특히 건강을 기대하는 오렌지주스에서는 얼마나 더 본연의 성질을 잘 보존했는가가 평가의 기준이기도 한다.
보통 이럴 때는 ‘100%’라는 글씨로 건강을 판단하곤 한다. 사실 나머지의 개념들은 너무 어려워서 우리는 100만 보고 달려가곤 한다. 더 꼼꼼한 사람들은 ‘착즙인가 아닌가’로 나누곤 한다. 요즘에 떠오르는 개념은 ‘가열과 비가열’이다. 비가열로 만든 주스들이 영양소의 파괴나 향미의 손실을 막는다고 한다.
10개의 후보군 중 이를 만족하는 녀석은 ‘채움’과 ‘아임리얼’뿐이었다. 나머지는 낫 리얼…은 아니고 나름의 풍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녀석들이라고 할까.
D. 맛 : 새콤달콤을 방송으로 표현한다면?
- 따옴 / 채움 : 로맨틱 드라마와 예능
- 아임리얼 : 진중한 다큐멘터리
- 카프리썬 : 아이취향 저격 투니버스
드디어 오렌지주스를 마실 차례다. 새콤달콤함을 기준으로 첫맛과 중간 맛, 끝 맛을 나눠 보았다. 개인적인 평가도 진행했지만, 점심시간에 동료 3명에게도 블라인드 테스트를 맡겼다. 덕분에 보다 전체적인 평가가 나올 수 있었다. 물론 얼떨결에 오렌지주스 10잔을 마시게 된 동료들은 점심을 건너뛰었지만.
맛은 취향이 갈리는 녀석이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생각해보면 좋다. ‘따옴’의 경우는 전체적으로 담백하면서도 달달한 느낌이 가득한 녀석이었다. 부담 없이 스윗하게 보는 드라마랄까? 반면 ‘채움’은 달콤한 첫맛과 새콤한 끝맛 등 구분되어 여러 요소를 섞은 예능 같았다.
반전은 ‘아임리얼’이었다. 리얼하게 단맛이 연했다. 블라인드 테스트 때는 연하다는 평이 주로 있었는데 이름을 공개하니 다들 리얼하게 놀란 게 함정. ‘카프리썬’은 어릴 때 한정으로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료 중 하나였다.
E. 목 넘김 : 얼마나 가볍게 넘어가나?
- 미닛메이드 : 가볍고 부담 없는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들어간다
- 썬업 : 묵직하고 진중하게 들어가는 맛
다음으로 목으로 넘어갈 때의 무게감이다. 가장 넘길 때 가벼웠던 것은 ‘미닛메이드’였다. 오렌지주스 하면 생각나는 맛의 기준이기도 하다. 다른 녀석들에 비해 용량도 많았기 때문에 두고두고 마실 때 부담이 없어야 하는 점을 잘 살린 듯하다. 다음은 ‘아임리얼’, 과육이 많이 들어있지만 막상 마실 때는 가볍게 넘어가는 부분이 좋았다.
반대로 무거웠던 녀석은 ‘썬업’이었다. 굉장히 느리고 진한 박자로 목을 타고 넘어가는 느낌이랄까? 진하고 꾸덕하게 넘어가는 것을 좋아한다면 이쪽을 추천한다.
F. 번외 : 분리수거, 남은 자리가 깨끗해야 한다
- 채움 : 라벨을 쉽게 뜯을 수 있게 만들어짐
- 카프리썬 : 비닐 팩은 아무래도 힘들어
보기에 좋은 음료도 좋고 맛있는 음료도 좋지만, 요즘 시대에 중요한 덕목은 마신 후의 자리가 어떻게 되는가이다. 재활용 이슈를 생각해봤을 때 가장 좋은 음료는 ‘채움’이었다. 유일하게 라벨을 쉽게 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녀석이었다. 테트라팩으로 된 ‘콜드’나 ‘썬업’도 재활용에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제품들이 라벨 포장이 스티커로 붙어있어서 아쉬웠던 점은 아쉬웠다. ‘카프리썬’도 정말 좋아하는 디자인인데… 요즘에는 재활용 이슈로 보기가 힘들다는 게 약간의 씁쓸함을 남긴달까?
오렌지주스 매칭! 어떤 오렌지주스를 마셔야 하는가?
100%라고만 쓰여있으면 다 똑같을 것이라 생각했던 오렌지 주스. 하지만 동시에 마셔보니 색깔부터 시작해서 맛이나 향 등 여러 가지 개성이 보였다. 모두 다 잘 만든 녀석이지만 취향과 용도에 따라 4가지를 골라볼 수 있었다.
1. 기동력이 필요할 때는 ‘아침에 주스’
등굣길이나 출근길 아침에 오렌지주스를 하나 사서 하루 종일 들고 다녀야 한다면 ‘아침에 주스’를 추천한다. 작은 용량은 물론 네모나게 각이진 디자인 덕분에 가방에 벽돌처럼(?) 쌓아도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맛 역시 가볍기 때문에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물론 가벼운 게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2. 내 몸의 건강을 원한다면 채움
자신의 건강을 원한다면 ‘채움’을 추천한다. 무향료, 비가열로 아임리얼과 더불어 많은 가공을 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장점이다. 가성비도 좋은 편이라 내 몸 건강 뿐만 아니라, 지갑건강도 챙길 수 있다는 게 큰 이득. 하지만 인지도는 아쉽다. 야채 채움은 알지만… 오렌지 채움은 사면서 알게 되었으니까.
3. 처음 만난 사람 선물용의 따옴
앞선 ‘채움’이 나를 위한 오렌지주스라면 ‘따옴’은 너를 위해 따온 느낌의 주스다. 디자인이 세련된 점. 또한 맛이 적당히 달달해서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점 등이 장점이랄까? 약간 ‘오다가 따왔다’ 느낌으로 선물을 주기에 좋았다. 하지만 나를 위한 선물을 할 때는 다른 부분들을 따진다는 게 함정.
4. 아임리얼의 적은 아임리얼
구구절절 말이 아까운 과일주스계의 탑티어. 주스의 ‘깡’. 하지만 ‘아임리얼 오렌지’는 구하기가 힘들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잘나서 다른 아임리얼들에게 인지도가 밀린다는 게… 아쉬운 점. 아임리얼 오렌지를 마시고 싶다가 아임리얼 키위를 만나면… 혹은 아임리얼 딸기를 만나게 되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우리의 하루를 열어줄 오렌지 주스는?
건강의 상징으로 혹은 손님을 맞이하는 음료로 많은 사랑을 받는 오렌지주스. 비록 직접 오렌지주스를 따서 주스를 만들어 마시기에는 여유가 부족한 나날들이다. 하지만 마트와 편의점에 있는 오렌지주스를 챙기는 것만으로도 나의 하루를 상큼하게 바꿔줄 수 있다.
과연 여러분의 아침을, 혹은 만나는 사람들의 기분을 바꿔줄 오늘의 오렌지주스는 무엇일까?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