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시대니 만큼 누구나 할 법한 질문 하나.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면서, 왜 ***은 국민의 말을 듣지 않을까?”
그런데 그 질문은 사실 정반대로 해야 한다.
“도대체 왜 ***가 국민의 말을 듣겠나?” 라고 말이다.
사실 이 글은 4년 전 쓴 글인데 ***를 ***로 바꿔 읽어도 무관하다(…)
우리는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자를 좇는다
!@#… 어떤 명분상의 대단한 이상향과 상식을 내세운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조직화된 분야라면 그 속의 대다수 참여자는 결국 한 가지 행동 원칙을 취하기 쉽다. 바로 조직 내의 권력 관계가 그 분야에서 만들어지는 여러 결과에 가장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
예를 들어 조직 내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업무성향을 자발적으로 따라가는 경향이 생긴다든지 말이다. 금전적 성공 또는 해당 분야에서의 업무 지위를 좌우하는 자들에게 잘 보여야 성공을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도태된다.
이를 짧게 요약하자면 “먹이를 주는 손은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먹이를 주는 손이 되는 것이야말로 모든 제도적 영향력 확보를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럼 먹이를 주는 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뻔하다. 먹이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먹이를 확보하는 것. 그리고 언제 어떤 식으로 먹이를 주는 것인지 상대에게 학습시키는 것. 너무나 뻔한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통속적인 질감 때문인지 애써 잊혀지고 있는 원칙이기도 하다.
국민이 먹이를 주지 못하는 이들의 횡포
!@#… 검찰의 친정권, 친기득권세력 위주의 수사가 불만이라고 하자. 그래, 검찰은 어떤 것을 수사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 수사의 범위와 방법을 정하는 것 등을 포괄하며 좀 사회적 영향력과 함의가 막강한 기관이다. 따라서 민주주의 사회라면 그 사회의 주인인 국민들의 의지를 제대로 반영하는게 바람직하겠지.
그런데 여기서 문제. “왜” 검사들이 국민의 말을 들어야할까? 채용도 승진도 정부가 하는데.
법원의 구식 판결이 문제라고 하자. 왜 법관들이 새 시대의 여러 상황들을 습득하고 진취적 판결을 내려야할까? 채용은 고시로 하고, 승진임용은 구닥다리 할아버지들이 하는데.
경찰의 민생치안은 부족하면서 집회 과잉진압 등 권력의 눈에 들어가기 위해 나서서 오버하는 것이 불만이라고 하자. 왜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아야 하는데? 검찰, 법관은 짤리고 나면 변호사라도 하지. 경찰은 출세길 막히고 결국 내보내지면 그 뒤 자신의 전문 경력을 살린 어떤 업종 진출을 보장 받을 수 있나.
기성 제도권 언론사의 기자들과 편집진이 쏟아내는 기사들의 품질이 형편없고 허접한 논리의 정치색이 난무해서 불만이라고 하자. 왜 언론사가 우수한 뉴스를 생산해야 하는데? 사주가 원하는 기사를 쓰고, 그 사주의 자리를 좌우하는 더 큰 정치세력이 있다면 그 쪽을 유리하게 해주는 뉴스를 만드는 것이 출세에 도움이 된다.
저널리스트로서의 프로페셔널리즘이 해당 개인에게 개별적으로 물질과 명성으로서 주어지는 방식이 아니라면, 즉 잘해도 알아주는 건 사주, 못하면 깨지는 건 자신 뿐이라면 독자들에게 평가받아봤자 뭐해.
먹이를 주는 손이 되어야 한다
우와, 암울해라. 그러니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다면, 제대로 대변받고 싶다면, 먹이를 주는 손이 되어야지 그냥 먹이가 되면 안된다.
만약 지역검찰청장들을 직선제 투표로 뽑는다면 주민들의 사정을 무시할 수 있을까.
정기적으로 전문가 공청회를 하고 그 결과가 인사에 반영된다면 판사들이 공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치안 산업을 발전시키고 경찰 인사들의 재교육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경찰들이 단방향적 출세에 목숨 걸어야만 할까.
조잡한 수준의 저널리즘을 구사하는 언론은 자전거를 돌리든 누가 벗었다는 제목으로 낚시질을 하든 어쩌든 구독도 끊고 인터넷상에서도 관심의 씨를 말려서 광고가치를 떨어트리고 마이너화시켜버린다면,
그리고 반대급부로 훌륭한 품질의 기획특집을 연재하면 마이너한 신문이라도 구독율이 2배로 늘어난다면 언론사가 저널리즘 품질을 계속 외면할 수 있을까.
먹이를 줄 수 있는 선거도 마찬가지인 이유
국회/지자체 의원이 국민/주민들 일반보다 특정 기득권 세력만 유리한 정책들을 밀어붙여서 불만이라고 하자.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
컨트롤도 안되는 일반 국민/주민들 수십만에게 어필하기보다 한 줌의 핵심 유지들을 공략하는 쪽이 당장의 활동자금 조성에도 정책 통과에도 더 수월하다면, 그쪽을 선택하지 말아야할 이유가 도대체 있는가.
국민/주민 일반의 지지가 필요한 선거야 뭐 “도와주세요” 한방이면 끝.
대통령이 시민 일반이든 관련 전문가들이든 뭐든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뻑장막 속에서 귀를 막고 있어 불만이라고 하자. 왜 말을 듣고 반영해줘야 하는데? 중간에 업무수행을 평가해서 권력의 일부를 박탈하는 제도가 없는 한, 임기 중에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아도 타격이 없다.
의회나 지자체장 선거에서 여당의 지지율을 날려먹음으로써 타격을 가하는 것도 대통령이 여당의 말을 들을 때나 가능한 것이고, 여당이 대통령을 먹이를 주는 손으로 숭배하지 않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툭하면 위기감을 느끼고 결집하는 35%의 “보수가 뭔지는 몰라도 보수를 자처하는” 이들의 조건반사 지지를 챙겨먹는 정당의 대통령이라면 뭐 위기의식 그런거 필요없다.
의원 선거에서 정말로 유권자들이 행적과 실적을 평가하고 평소의 의정 활동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 혹은 거부를 일삼는다면, 시민들에게 신경쓰지 않고 베길 수 있을까. 쉬크한 패배주의 무관심파 말고, 문제가 생기면 반드시 반대하고 더 나은 세력을 지지해주고야 마는 철밥통 분쇄 세력이 50% 이상 존재한다면 과연 대통령이 정신줄을 놓고 있을 수 있을까.
선거를 확실히 활용하되, 그 이상을 제도로 정착시키자
모든 정치적 함의를 지닌 정치활동이든 시민운동이든 그저 온라인 상의 사고실험이든 캠페인 선언이든, 추구해야할 핵심은 시민들이 보다 뚜렷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먹이를 주는 손“이 되기 위한 노력이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제도로서 확보를 하는 것, 개인들의 의식 각성을 유도하는 것 모두 필요하다. 출마를 하든, 제도적으로 압박하든, 방법을 궁리하든, 그저 널리 알리든 말이다.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면, 진보든 보수든 그 중간 어디쯤이든 누구라도 그 정도는 동의하고 동참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선거가 더욱 중요하다. 당장은 이것 외에 어떠한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국민에게 “먹이를 줄 권한을 만들고자 하는” 후보가 누구인지, 정당이 어디인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원문: capcold님의 블로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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